[PRESS] 그윈플렌이 쏘아 올린 공, 조시아나가 완성하다 - 뮤지컬 '웃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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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영국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 이어 한국에서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뮤지컬화했다. EMK 제작 작품인 만큼, 본 제작사와 함께 많은 작업을 해 온 로버트 요한슨이 연출과 극작을, 젝 머피가 작사를, 프랭크 와일드혼이 극작을 맡았다. 2018년 초연되었으며, 초연 당시부터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이번 사연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2019년에는 일본에서 초연되었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본 작품은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적인 괴물로 만들어 귀족들의 놀잇감으로 팔던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기이하게 찢긴 입을 갖게 된 어린 그윈플렌이 매서운 눈보라 속 홀로 버려지며 펼쳐지는 여정을 다룬다. 그윈플렌은 얼어 죽은 여자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를 발견하고, '데아'라 이름 붙이며 눈 속을 떠돌다 우연히 약장수 우르수스를 만나게 된다. 우르수스는 데아와 그윈플렌을 딸과 아들처럼 키우며, 세 사람은 유랑극단을 꾸린다. 그윈플렌과 데아는 서로의 결함을 보완해 주는 관계이자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 그러나 그윈플렌의 무대를 보고 그에게 매혹된 조시아나 여공작의 구애로 그는 흔들리게 된다. 그러던 중 그윈플렌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천 페이지에 달하는 긴 분량의 원작이 뮤지컬화되면서 인물의 축소 및 변형이 일어났으며, 뮤지컬 <웃는 남자>는 원작 소설의 흐름보다는 2012년 개봉한 장 피에르 아메리스가 감독을 맡은 영화 <웃는 남자>의 서사 전개에 가깝다. 원작에서 우르수스와 함께하는 늑대 호모는 본 극에 등장하지 않으며, 복합적인 성격이 부여된 인물인 우르수스는 쇼맨이라는 단편적인 이미지가 강조된다. 데이빗 더리모어 경은 원작에서는 굉장히 정치적이며, 하나의 단어로 설명될 수 없는 인물이지만, 본 극에서 그는 사생아이지만, 자신이 작위를 계승하기 위해서 어린 그윈플렌을 콤프라치코스에게 넘기는 인물이며, 데아를 겁탈하는 파렴치한으로 그러진다. 페드로 또한 돈과 권력 욕심에 가득 찬 교활한 하인으로 평면화된다. 그리고 위고의 작품을 관통하는 미감인 그로테스크함이 무대 위의 방랑하는 악사, 바이올리니스트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개된다. 한편으로 이런 연출은 당대의 부조리했던 사회를 고발하는 뮤지컬 <지붕 위의 뮤지컬>의 연출을 떠올리게 한다.
원작에서 그윈플렌이 어린 시절 콤프라치코스에게 넘겨진 계기에는 당시 영국 사회의 민감한 정치적 문제와 선조의 정치적 태도에 의해 유발된 것으로, 본질적으로 앤 여왕의 정치적 작업이었으나, 뮤지컬 <웃는 남자>에서는 모두 삭제되었다. 또한, 빈자와 부자 모두 ‘웃음’을 원하는 공통의 본질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본 작품은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표어를 극 전반으로 내세우는 부자와 빈자는 전형적인 선악 구조로 나눈다. 그렇기에, 뮤지컬 <웃는 남자>는 그윈플렌, 데아, 우르수스와 앤 여왕과 데이빗 더리모어 경을 필두로 한 귀족들 간의 대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윈플렌과 데아의 플라토닉 러브에 집중한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그런데, 뮤지컬 <웃는 남자>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조시아나 여공작이다. 조시아나 여공작의 캐릭터에 변화를 주면서, 극은 조시아나-그윈플렌-데아의 삼각관계를 더욱 강조한다. 그윈플렌의 순수한 영혼은 데아와 연결되고, 흉측한 외모는 조시아나에게로 향한다. 이에, 그윈플렌과 데아의 라이트 모티프는 넘버 ‘나무 위의 천사’가, 그윈플렌과 조시아나 여공작의 라이트 모티프는 ‘내 안의 괴물’이 된다. 그윈플렌은 추위 속에서 얼어 죽어가는 데아를 구함으로써, 그의 눈이 되어 주었고 데아는 그윈플렌의 얼굴이 되어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였다. 조시아나는 그윈플렌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인물이자, 극 중 유일하게 그윈플렌에 의해 변화하게 되는 인물이다. 극의 하이라이트 넘버 ‘그 눈을 떠’에서 ‘웃는 남자’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윈플렌의 연설을 듣고, 이후 모든 권리와 명예를 한 치의 고민 없이 버리는 그윈플렌의 모습을 보며 조시아나는 지금까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넘버 ‘내 삶을 살아가’를 통해 전개되며 조시아나의 각성이 강조된다. “평생 난 갈 수 없던, 용기조차 낼 수 없었던 길을 가 … 날 찾고 싶어. 내가 되고픈 나. 내가 바라는 행복, 그가 남겨준 답을 찾아. 이제 나 다른 삶을 살아가”
대개 뮤지컬에서는 ‘변화 혹은 성장해 가는 누군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뮤지컬 <웃는 남자>의 그윈플렌의 경우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인물’인 만큼 그에게서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뮤지컬 <웃는 남자>는 그윈플렌을 갈망했고, 자신의 삶에 회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던 조시아나에게 정체성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에 주인공으로부터 촉발된 변화의 기제가 조시아나에게 스며들어, 그가 변화하게 된다. 이를 통해 본 작품은 그윈플렌의 연설은 실패로 끝났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이 작은 희망의 불씨가 사회를 바꿀 것임을 암시한다. 그윈플렌이 쏘아 올린 사회 변혁을 위한 공은 앤 여왕 다음의 위치에 있는 조시아나 여공작에게로 이어졌고, 그는 ‘제2의 그윈플렌’이 되어 그윈플렌보다 현명하고, 더 나은 방법으로 사회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 나갈 것이다. 즉,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조시아나 여공작이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 남자>는 이미 넘버 ‘웃는 남자’, ‘그 눈을 떠’, ‘나무 위의 천사’, ‘모두의 세상’ 등 여러 킬링넘버를 배출하며 관객에게 작품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시켰다. 더불어 화려하면서도 한 편의 동화 같은 무대 연출은 관객의 눈을 즐겁게 사로잡으며, 한국 뮤지컬 무대와 영상 기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 다만, 뮤지컬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이 평면화되었고, 동시에 그윈플렌과 데아의 상징성이 흐려졌다. 작품은 그윈플렌과 데아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으며, 그윈플렌의 ‘웃는 얼굴’, 즉 ‘웃음’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관해 답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김소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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