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또 버리고. 아무리 버려도 줄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묵은 이삿짐이 아닐까.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내 방 하나를 정리하는데만 75리터짜리 일반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를 만큼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가 나왔다. 참고로 말하자면 75리터 쓰레기봉투는 사람도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크기이다.
이번의 비움에서는 이전에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에는 두었던 물건들이 많이 포함되었다. 거의 목숨만은 살려두었던 격이다. 이렇게 버릴 거면 그때 그렇게 고민하지 말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이만큼의 유예기간을 두었으니 그나마 쉽게 결정할 수 있었겠지 하는 결과론적 생각에도 이르렀다.
정리가 끝난 방에 남은 물건들, 그리고 떠나보낸 물건을 돌아보며 스스로에 대한 성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 싶다.
방 정리 때마다 언제나 살아남는 물건이 있다면 그간 내가 받은 편지, 그리고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다. 내가 어릴 때라고 해봐야 15년 전쯤이지만 그땐 편지를 꽤나 자주 주고받았다. 크기도, 색도 다양한 편지지에 담긴 옛 친구들의 편지만큼이나 그때의 향기를 간직한 물건이 없다. 또 길거리마다 사진부스가 유행한 이후로 생각 날 때마다 찍곤 했던 네 컷 사진들, 인화한 필름 카메라 사진들도 두고두고 들여다봐야 할 물건에 포함된다.
또 한 가지는 영어 관련 서적들이다. 영어를 잘하고픈 마음에 하나씩 사 모았던 두꺼운 회화 책, 영단어 사전, 심지어 토익 단어장까지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언제나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나. 그러나 그것을 꿋꿋이 외면하고 다른 놀거리에 현혹되곤 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올해도 책들을 위한 공간은 남겨두었다.
반면 다시 생각 않고 과감히 버린 것들도 있다. 저번 정리 때 보류해 두었던 애매한 옷들이다. ‘입을까’ 싶어 남겨두었던 것인데 결국 한 번도 입지 않고 자리만 차지했던 옷들에게도 이제는 작별을 고한다. 옷을 살 때의 첫 마음만 간직하고 있다면 더 오래 입을 수 있을 텐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또, 철 지난 공책과 노트들이다. 고 삼때 쓰던 공부 플래너, 단어 공부장으로 쓰던 다 쓴 공책들. 분명 쓸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꽤 오랜 시간 방에 남겨두었던 것들인데. 막상 공간을 차지하고 들어올, 이제는 내게 더 소중한 가치를 지닌 다른 것들을 생각하니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로 쉽게 버린 물건들에는 과거의 내가 잘 투영되어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땐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 지금은 잘 입지 않지만 그때는 내 취향이었던 디자인의 옷들. 모두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과거의 내 판단하에 남고 남겨졌던 물건들이다. 그때와 지금의 내가 똑같은 정도로 중요시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은 남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떠나갔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아직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의 타협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지점들도 있다. 3초 만에 버릴지, 버리지 않을지를 결단할 만큼 과감한 정리를 했지만 그럼에도 고민고민하다 또 유예를 선고한 물건들이 그렇다. 오래전 선물 받았지만 더 이상은 사용하지 않는 램프, 거의 입지 않았지만 비싼 값을 주고 샀던 원피스 등. 직관적으로 판단하다가도 이런 물건들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마음이 흔들려 유예를 선고하고 만다.
쉽게 버리지 못한 마음은 왜일까. 지금의 내가 판단하기에는 확신이 부족하다는 신호처럼도 보이고, 덕지덕지 미련처럼도 느껴진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다음번 정리 때 유예의 연장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에게 더 중요해지는 것들 앞에서는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 테니까.
정리를 하고 나서 모순적인 두 가지 감정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나란 사람 참 그대로구나. 그리고, 한 편으로는 나도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남겨진 것들과 버려진 것. 그 두 가지가 가리키는 지금의 나는 ‘그래 이게 나지’ 뻔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아직 신년 핑계를 대고서는 많은 일들을 감행할 수 있는 시기이다. 책상 위, 서랍장과 선반. 혹은 방 전체. 어떤 공간이든 비움으로써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 조금 귀찮을지라도 정리 후에는 지금의 나와 가장 가까운 공간으로 반짝 업데이트 돼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