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컨트롤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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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의 키 하나가 고장 났다. 고장 난 지 오래되었다. 언제 고장 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작년 8월에 잠깐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번엔 꼭 노트북 수리를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기억난다. 그때도 이미 미룰 만큼 미뤘다 생각하던 차였으니 1월 중순이 넘어선 지금 시점에서는 고장난 지 거의 반 년이 다 되어간다는 의미겠다.
나라고 고장 난 노트북을 반년이나 쓰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수리 센터에 갔더니 노트북 수리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기에, 안 그래도 낡은 노트북을 수리하는 데 돈을 쓰느니 그냥 새로 하나 장만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하지만 또 새 노트북을 사려고 생각하면, 고작 자판 한 알 작동하지 않을 뿐 꽤 정정한 이 친구를 굳이 못 쓸 것도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은 해가 바뀌어버렸다.
적어도 숫자나 글자 키, 스페이스나 백스페이스키처럼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는 키의 문제는 아니니 괜찮다고 얕본 내 탓이다. 우선 키보드를 한참 두드리며 글을 쓴다. 글을 완성하고 나면 항상 맞춤법 검사를 한 번 돌리는데, 그러면 전체 복사를 해서 맞춤법 검사 사이트에 넣어야 한다. 전체 선택(Ctrl+A)을 누른다. 난데없이 ㅁ이 나온다. 내가 한글로 타자를 치고 있었기 때문에 A도 아니고 ㅁ이 나오는 것이 가장 불쾌한 부분.
내 실수를 깨닫는다. 이번에는 쉬프트 키나 마우스 드래그를 사용해 전체 선택을 하고, 복사(Ctrl+C)한다. 아니, 복사한다는 것은 내 착각이고, 이번에도 ㅊ가 남는다. 심지어는 내가 써놓은 글이 모두 사라지고 ㅊ만 남는다.
너무 놀랍게도 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실행 취소(Ctrl+Z)를 하려고 한다. Z와 ㅋ가 같은 자판인 것은 우연일까?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실수를 영원히 반복하는 나 같은 사람을 비웃으려는 누군가의 악질적인 조합은 아닐까?
이 모든 것이 컨트롤 키가 고장 났기 때문에, 내가 컨트롤을 잃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 같다. 그러나 실은, 컨트롤 키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제대로 의식하고 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정신 차리고 마우스 우클릭이나 다른 버튼을 이용해, 진짜 실행 취소를 한 뒤 진짜 전체 선택과 진짜 복사를 하고 맞춤법 검사 사이트에 진짜 붙여넣기를 할 수 있다. 물론 번거로움이 커지긴 하지만, 썩 못 할 짓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새 노트북 구매를 미룬 것이기도 하고.
어쩌면 진짜 문제는, 컨트롤을 잃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컨트롤을 잃었음에도 내게 컨트롤이 있다는 착각 때문에 생긴다.
이에 따르면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노트북을 수리하거나 새 노트북을 사서 컨트롤을 되찾는 것이 아니다. 내게 컨트롤이 없음을 인정하고 인식하고, 컨트롤 없는 삶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컨트롤 없는 삶이라니, 잔인하게 들리지만 실은 이것이 기본 상태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게 있던 컨트롤을 ‘잃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컨트롤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고 그때 잠시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생각하는 편이 좋다. 원래 컨트롤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없는 것. 그러다 보면 다시 컨트롤이 생겼을 때도 겸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지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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