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우리말이 온전히 담겨야 하는 이유 - 우리말 기본기 다지기

글 입력 2025.01.1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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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언어사용이 '적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왔다. 정보를 습득하고 정리하는 데에 있어 언어사용은 언제나 '정확한' 수준이면 충분하다.

 

지금도 이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두 문장을 쓰는 것은 오늘 리뷰할 책, '우리말 기본기 다지기'를 읽은 후에나 가능했다. '적확하다'는 '정확하게 맞아 조금도 틀리지 않음'의 의미를 담고 있고, '정확하다'는 바르고 확실함'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 낸 두 문장에 이 책에 대한 감상이 담겨있다.

 

첫 문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사실 나는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강한 규칙을 들이미는 것을 거부해 왔다. 어휘나 문법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획득하면 글을 읽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글의 본질은 소통과 교류에 있기 때문에 글이 좀 못생겨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면 괜찮다. 흔히들 문해력을 어휘의 부족을 타겟으로 삼고 있지만, 문해력의 본질은 텍스트를 의미 단위로 쪼개 효율적으로 정보로 부호화하는 방법이 얼마나 효율적인가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적확한' 방식으로 글을 쓰길 요구하는 흐름에 약간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 글을 쓰는 사고를 정교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문해력 저하를 꼬집는 뉴스도 유쾌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기술 발달로 텍스트가 빠르게 오가는 시대에서 텍스트의 권위가 사라지고 글의 '아름다움'을 덜 지향하는 것은 구술언어가 그러했듯, 매체와 정신의 자연스러운 변화라 생각했다. 아마 내가 나열한 이 생각들은 오늘날 많은 언어 사용자의 마음 속에 크고 작게 있는 생각일 것이다.

 

이처럼 언어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에 내 마음은 닫혀있었다.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말 한 두 마디였다. 가까운 지인과 어떤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 게임에서 모든 도시는 독점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이 질서와 철학을 정의 내렸다. 예를 들어 인간은 생물학적 뇌를 가진 존재라는 식의 규칙을 그 기업이 내리는 식이다. 그것에 대해 지인이 '그 기업에 어울리는 단어는 '정의(正義)'가 아니라 정의(定義)야. 이걸 한자로 써야 더 전달이 잘될 텐데.'라고 이야기했다.

 

전자의 정은 바를 정을 쓰고, 후자의 정은 약속하다, 정하다의 정이다. 나는 각 정의의 어휘 풀이를 보고 이상한 영감을 받았다. 물론 나는 '정의롭다'와 '정의한다'의 차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지인의 말은 단순한 의미 이해의 관점에서 감동을 준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관점에서 감동을 주었다. 두 단어는 같은 방식으로 불리기 때문에 혼동될 수 있지만,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옳은 것을 추구하고자 하고, 다른 하나는 옳은 것을 안정화한다. 한자 풀이 없이 나열된 두 단어가 혼동을 주는 것처럼, 사람의 정의는 모두 이 두 가지에서 끝없이 흔들린다.

 

문학적 표현은 의미의 차원을 넓고 깊게 만든다. 정보를 빠르게 전환하고 부호화하는 데는 비효율적이지만, 문장의 철학적 깊이와 아름다움을 고려하면 열 마디의 문장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자연스래 책 '우리말 기본기 다지기'와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책은 닫혀있던 마음을 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

 

책 '우리말 기본기 다지기'는 그 제목만큼이나 직관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기본적으로 저자가 의도를 밝힌 서문과 대치되는 단어들이 병렬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책의 특징에 관해 먼저 설명하고, 글쓴이의 서문과 엮어 책을 읽으며 느낀 바를 간략하게 써보고자 한다. 서문에는 저자가 글을 쓴 목적에 대해 쓴 짧은 글이 실려있고. 본문에는 사람들이 말을 쓰면서 저지르기 쉬운 오류를 중심으로 분류하여 소제목을 달아 글을 전개한다.

 

소제목은 '발음이 같거나 비슷해서 헷갈리는 말', '의미가 전혀 다름에도 혼용되는 말', '비슷한 듯하지만 구별해서 써야 하는 말', '옳은 말, 그른 말', '잘 띄고 잘 붙여야 하는 말', '품사가 다른 말', '다른 말에 붙는 말, 활용하는 말'로 일곱 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각 분류에 속한 단어들은 하나하나 페이지 수가 기록되어 있어 다시 찾아 읽기 용이하다.

 

수록된 단어들은 대부분은 두 개의 단어를 대치하는 식이지만, 때로는 여러 단어를 대치하기도 한다. 대치된 단어는 두 페이지가 안 되는 양으로 짧게 설명한다. 설명하는 방식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전개한다. 어원, 문법, 한자어 등 단어들에 따라 쉽게 설명되어 있다. 다만 기본적인 문법 지식을 전제하기도 하고, 글의 구조는 구조화 되어있지는 않아 사전처럼 형식에 익숙해져서 쉽게 넘겨지는 책은 아니다. 이는 기능 완수에만 열의를 쏟은 책이 아니고, 작가로서 재밌게 글을 쓰는 의무도 함께 수행한 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병렬적으로 제시되어 있고 직관적인 색인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책은 독자가 언제든 헷갈리는 단어를 다시 찾아 읽기에 적합하다. 대치된 단어들도 '-이에요', '-예요'와 같은 일상 언어 사용에서 혼란을 느끼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글의 끄트머리에는 한국 소설의 문장을 끌고 와 다양한 용례를 익힐 수 있게 하였다. 책을 읽다 보면 쓰고 있던 표현이 다르기도 하고(개인적으로는 '담구다'가 그랬다. 김치를 담구다가 맞는 문장인지 궁금하면 읽어보길 권한다), 용례로 사용된 문장의 아름다움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한다. 특히, 나처럼 소설의 가치를 잘 평가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소설과 우리말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새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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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서문에서는 저자는 문학 편집자로서 이 글에서 우리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깊은 애정을 표현하고, 반드시 바른 말로 교정할 필요가 없었던 문학 작품을 만난 이야기를 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언어의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 보호하고 연구하여 지켜낸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맞춤법이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고를 청명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도구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서문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짧은 글 전체에 배어있는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다. 언어를 단순히 전달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우리말을 갈고 닦을 필요도 없고, 그 규칙을 지킬 필요도 없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가진 역사성과 문화성은, 현대 한국인들이 잃어버린 것 중 하나다.

 

반드시 언어를 도구가 아닌 역사를 가진 문화 체계로 바라보고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교환 가능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원자적 개인이 우리 사회에서 말의 역사성, 이 땅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서 한국인이라는 한 집단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일이 아니다.

 

특히 언어에 대한 존중 없이 각 의미 단위를 연결하여 그럴듯한 한국어 문장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글쓰기 시대에, '명징한 생각은 정확한 문장에 담긴다'는 말을 하는 저자의 말은 -아이러니하지만- 잊고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언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문학적인 문제로서나 우리 공동체의 정신에 관한 문제로서나 단순한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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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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