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행 에세이, 알고 보면 자서전 - 호라이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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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벽돌 책'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려왔다. 벽돌 책이란 두께가 어마 무시한, 굉장히 두꺼운 책을 말한다. 아무래도 혼자 돌파하기에는 어려운 책인지라, 함께 으쌰 으쌰 하며 읽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개 그 방식은 독서 모임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벽돌 책 읽기 모임은 꽤 잘 팔리는 주제처럼 보였다.
뜬금없이 벽돌 책 타령을 하는 이유는 오늘 소개할 책 때문이다. 책 <호라이즌>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벽돌 책이다. 정말로 요 근래, 이렇게 두꺼운 책을 볼 일이 없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던 것일까?
여행 에세이, 알고 보면 자서전
<호라이즌>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저자 배리 로페즈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부터 대학 이후의 삶까지, 생애의 전반을 이 책 안에 기록해 두었다. 그 기억이 꽤나 상세하여, 처음에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리도 섬세한 묘사로 시작하는 책이라면, 이후에 이어질 이야기들 역시 상당히 풍성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책의 두께가 단번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자서전이라는 인상은 후반부로 갈수록 옅어진다. 뒤 내용의 상당 부분은 저자가 일생을 할애했던 여행 이야기로 꾸려지기 때문이다. 역시나 훌륭한 묘사와 함께. 참고로 나보다 먼저 본 책을 읽은 선배 독자님들 중에는 '책을 읽지만,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라고 평을 남기신 분도 계셨다.
글은 영상보다 섬세하지만, 독자의 배경지식에 따라 상상의 범주에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책 <호라이즌> 속 묘사는 왠지 대부분이 비슷한 상상을 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저자의 여행지가 꽤나 특별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방문하는 관광지가 아닌, 세상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듯 여행했던 기록이다. 그러니 대다수의 독자는 그 장면에 대한 적절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자칫 이 부분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잘 모르기에, 말 그대로 감각적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기에, 눈으론 결코 볼 수 없는 감각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여행이 그에게 남긴 질문
하지만 개인적으로 책 <호라이즌>의 정수는 저자가 여행을 다니며 느낀 것들에 대한 사색이었다. 그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지구 곳곳에 뿌려진 탐욕과 약탈, 그리고 욕심의 흔적들과 마주하며 그 흔적들이 물어오는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내었다.
현장에서 비롯된 질문인 만큼 질문의 농도가 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구를 지키는 방법에는 환경 오염을 방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일 역시 포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 시절, <문화인류학>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지역에 따라 언어의 발전 양상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는 눈과 관련된 단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크게 와닿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책 <호라이즌>을 읽은 지금, 그 각각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문명이라는 이름 하에, 글로벌이라는 이름 하에 지구가 하나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편리함 또는 발전이라는 단어가 지나쳐, 토착의 문화를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많은 주의와 신경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호라이즌>. 어마 무시한 두께가 꽤나 위협적인 책이었으나, 읽어보길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연의 신비함을 느끼며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민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여행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작가는 책을 남긴다. 그러니 책 <호라이즌>은 저자가 수많은 여행을 통해 얻는 통찰을 작가로서 남긴 흔적이다. 그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김규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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