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

이 글은 미첼 프랑코의 메모리(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잊고 싶은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것, 기억을 계속 잊어가는 것. 당신에겐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운가?

 

여기 미첼 프랑코의 2023년 미국 드라마 영화, <메모리>는 잊지 못하는 과거와 싸우며 살아가는 싱글맘 실비아와, 조기 치매를 앓으며 예전의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남자 사울의 사랑과 연대를 다룬다.

 

 

 

1. 잊지 못하는 여자, 실비아


 

사회복지사이자 실비아는 상당히 강압적인 싱글맘이다. 그녀는 늘 문에 달린 수많은 잠금장치를 강박적으로 걸어잠그고, 딸 애나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고,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하게 할 정도로 자신의 삶과 딸을 통제한다.

 

어느 날 모두가 행복해하는 고교 동창회에서 어울리지 않고, 그저 그 풍경을 관전하다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동창회에서 마주친 어떤 남자가 실비아를 계속하여 쫓아온다.

 

거리를 걷고, 전철을 타고,  익숙한 동네를 걸어 집으로 당도할 때까지 남자는 계속 실비아를 따라온다. 실비아는 강박적으로 수 개의 잠금 장치를 잠그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실비아는 남자가 '사울'이며, 그가 조기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비아는 이 사건으로 자극되는 트라우마에, 견디지 못하고 사울을 다시 찾아간다.

 

 

20250116224454_wbyxextu.jpg

 

 

그런 실비아를 사울은 다정하게 맞아주고, 둘은 함께 산책하며 즐겁게 얘기를 나눈다. 그러나 쓰러진 나무 위에 걸터앉았을 때, 왜 그토록 실비아가 통제적이고 강박적인 태도를 유지하였는지가 밝혀진다. 그녀가 사울에게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성폭행하지 않았냐며 기억이 정말 안 나느냐고  다그치는 것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전환된다.

 

실비아가 고등학교 동창회를 찾아간 이유는, 고작 자신이 열두 살 때 그녀를 성폭행했던 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 인물은 끝내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친구인 사울은 만날 수 있었다. 사울은 그와 친구였음은 기억하지만 자신은 정말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그런 사울에게 실비아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거냐, 기억하기 싫은 것은 잊어버리는 거냐"며 "당신 천벌 받은 거야."라고 일침을 가한다.

 

여기서 쓰러진 나무는 실비아를 뜻한다.

 

버티지 못하고 통째로 쓰러진 나무가 마치 뿌리조차 뽑혀버린 황폐한 실비아의 마음을 대변한다.

 

 

 

2. 잊어가는 남자, 사울


 

그러나 동생 올리비아가 졸업앨범을 뒤진 끝에, 실비아는 사울이 자신과 같은 시기에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며 그들이 마주친 적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비아는 이 사실을 사울에게 알려주기 위해 다시 한 번 그의 집을 찾는다. 사울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실비아를 대하고, 실비아는 그에게 사과하며 당신은 나를 성폭행한 적이 없다고 고한다.

 

그런 실비아의 말에 사울은 조심스럽게, "당신의 말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적어도 될까요?"라고 묻는다.

 

사울은 조기 치매를 앓고 있는 남자이다. 그는 그렇게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순간 돌변하여 모든 것을 까먹고, 거리를 배회하곤 한다. 반드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울을 그의 조카와 그의 동생이 함께 관리하며,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줄 사람을 원한다.

 

마침 사울이 첫만남 이후 자주 언급하던 실비아를 조카가 찾아가 돌봄 아르바이트를 제안했고, 당시 트라우마 때문에 망설였던 실비아는 오해가 풀린 이후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images-original.png

 

 

처음부터 가장 깊은 내면과 상처를 내보였기 때문일까? 그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영화에서 그려내는 이들의 감정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섬세하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색처럼,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파헤치고, 영화를 보며 함께 우는 시간을 통해 그들은 차츰차츰 거리를 좁힌다.


 

 

3. 젖어드는 기억


 

그러나 실비아와 사울의 관계 진전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실비아와 사울의 관계를 알게 된 사울의 동생은 둘을 떼어놓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실비아를 다그친다. 사울의 의지를 무시하고 그의 집에 마치 애완견처럼 형을 묶어두려는 동생의 태도에 사울은 고통스러워 하지만, 좀처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실비아 역시 계속해 과거를 들쑤시고, 여전히 그녀를 믿지 않는 엄마와의 관계 때문에 괴롭다. 엄마는 외손녀 애나와 실비아를 교묘하게 이간질시키고, 여전히 실비아가 고백한 과거 트라우마에 대해 함구하며 그녀를 '거짓말쟁이'라 칭한다.

 

잊지 못하는 기억 때문에 괴로운 실비아와, 잊어가는 기억 때문에 '자기자신'으로 살 수 없는 사울.

 

이들은 떨어져 각자의 시간과 삶 속에서 괴로워한다. 그러나 이 둘을 지켜보던 딸 애나는 이 관계에서의 해답을 알고 있다. 바로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왜 그토록 자신을 통제하고 강박적으로 굴었는지 마침내 이해한 애나는,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의 상처를 함께 껴안아줄 사람을 알고 있다.

 

사울이 처음 동창회에서 실비아를 보고 따라왔던 길을 거슬러, 애나는 용감하게 사울을 데려온다.

 

 

tt19864828-hero-960x540-moz.jpg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욕실에서 목욕하며 오열하는 실비아를, 사울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함께 그녀의 슬픔 속으로 젖어든다.

 

알지 못했던 타인의 인생 속으로, 타인의 슬픔 속에 기꺼이 빠져들어 그녀의 삶을 앞으로 자신의 기억 삼을 사울.

 

이들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전진할 것이다. 잊지 못하는 기억과 잊어가는 기억, 그리고 새로 만들 기억을 떠안은 채.

 

1월 22일 극장에서 개봉하게 될 영화 <메모리>이다. 슴슴할 수도 있지만 극도로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관찰로 연대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의 가슴 속에 작고 따뜻한 빛을 비출 것이다.

 

마치 작은 촛불처럼 말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