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을 제거한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오래 전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폭력, 기아, 불평등, 빈곤이 종식되고 자연재해나 불의의 사고까지 없어진 세상을 가끔 상상해본다. 수십 번을 상상해봐도 사실 답은 언제나 같다. 불행이 없어진 삶은 그저 불행이 없는 삶일 뿐이다. 고통에서 해방된다고 해서 반드시 쾌락을 느끼지는 않는 것처럼 행복은 불행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불행은 미래에 대한 상상을 제한하지만, 행복은 계속 미래를 소환한다. 각각 절망과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행복한 삶이 반드시 긍정적인 감정으로 견고하고 빈틈없이 채워진 삶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한 톨의 의심도 없이 행복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을지 몰라도 머지않아 언제 이것이 사라질까 불안을 느끼기 십상이다.
행복은 찰나이며 감각이다. 그 휘발성을 알기에 불안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감정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인생은 불행의 순간을 체념하듯 감내하기보다는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줄 알고, 어쩌다 가끔 찾아오는 행복에 방점을 두는 삶이라고 믿는다.
미약한 기대로 뛰는 심장을 가지고

행복한 삶은 지옥 앞에서 천국을 떠올리는 상상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절대적으로 행복한 순간이 많기 때문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살아가다 보면 행복이 이따금씩 우연히 방문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한 번 느낀 행복이 또 다시 찾아올 것이라 믿는 마음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중에 야식이 눈앞에서 아른거려도 다음 끼니로 먹을 생각을 하며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이란 '기대'를 가지고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미래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 나아지지 않더라도 행복한 순간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는 상상, 현재의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진리를 가지고 인내하는 사람은 이미 행복을 삶의 축으로 두고 행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좋았던 추억이나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의 주변에 정신적으로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어두웠던 순간보다는 찬란했던 몇몇 순간들을 떠올릴 때 그 순간의 생경한 감정만큼은 아니어도 그 여운만큼은 느낄 수 있다. 인생 최고의 순간이 남긴 여운에 압도되거나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그 여운에서 힘을 얻게 된다. 행복은 순간이지만, 일회적이지 않다는 것 또한 학습했을 때 이러한 여운을 통해 어두운 감정을 기대로 치환할 수 있다.
러너스하이(runner's high)를 한번 경험하면 그때 느꼈던 행복을 다시 느끼기 위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알면서도 기꺼이 감내하게 된다고 한다. 그 고통을 행복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인 루트라고 발상을 전환한다면 달리기 자체가 행복을 보장하는 활동이 될 수 있다. 자신의 행복을 발견한 순간을 똑바로 마주하고 이것을 기억했을 때 삶에 기대를 품는 것은 훨씬 쉬워진다.
꿈도 구체적으로 꾸어야 꿈에 한 발자국 가까워질 수 있듯 행복이 한 번 자신이 도달하거나 성취해본 일들로 정리되었을 때, 행복한 삶을 스스로 일구어나갈 수 있다. 더불어 현재가 어떤 광경이든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행복했던 순간들이 앞 열에 오도록 한다면 그것이 우리를 나아가게 할 것이다. 행복한 삶이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기대도, 사회의 기대도,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의 기대가 내일을 살아가게 한다면 그것이 곧 행복한 삶일 것이다.

요즘 불행한 현재를 끝내기 위해 미래를 포기하거나 행복한 현재를 누리면서도 좌불안석인 사람들이 많다. 밝은 미래를 그리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대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자조와 무기력이 시대 정신이 된 지금, 인기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럭키비키' 어록에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오는 것 또한 동시대적인 정신이다. 발상의 전환이 기분을 바꾸는 마법을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한 줄기 기대가 이미 깃들어 있다.
현실을 살아내는 일이 힘에 부치면서도 미약한 기대로 뛰는 심장을 가지고 행복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행복한 삶이라 규정하기 망설여지는 모두에게, 언젠가 결산해 보았을 때 그 비율과는 무관하게 행복의 순간이 먼저 떠오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