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른이 되면 성공을 거머쥘 줄 알았어 - 틱틱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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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한국 사회에서만 상징적인 나이인 줄 알았더니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언니 오빠들을 놀리던 과거는 지나가고 이제 필자도 그 나이를 앞두고 있다. 서른이 되면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커다란 집, BMW, 명예와 성공. 그런 것들은 노력하면 자연히 서른이 될 때쯤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와 지금. 아직도 인생은 무엇인지 모르겠기만 하다. 주인공 존은 이제 바로 그런 나이를 지나가고 있다.
"틱 - 틱 - 틱 -"
공연이 시작한다. 이것은 서른 살 생일을 앞둔 존의 귓가에 울리는 불안감의 이명이다.
서른이 되면 성공을 거머쥘 줄 알았어: 30/90
존은 뮤지컬을 시작했을 적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전도유망'한 작곡가다. 그리고 이제는 그 수식어가 지긋지긋하다. 앞자리가 바뀐다는 불안감은 언제부턴가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틱틱대는 소리로 실체화된다. 그 소리는 정적이 찾아올 때도, 노래가 나올 때도 함께한다. 회사로의 출근을 말아먹었을 때, 여자 친구와 이별을 겪을 때, 열심히 준비한 워크숍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딘가 성공의 향기가 난다. 같은 시옷으로 시작해서 그런 걸까. 그 성공은 대개 새로운 자동차와 다운타운의 집을 마련한 성공한 마케팅 전문가, 존의 모습처럼 상상된다. 어쩌면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존의 여자 친구 수잔의 바람과도 일치할지 모른다. 일과 가정, 어느 쪽이든 성공의 가닥이 잡힐 줄 알았던 나이이지만 존은 여전히 그저 유망하기만 하다. 그는 말한다. "중년의 위기를 미리 겪는 중이야."라고.
아직은 스물둘 같은데 서른이 되어버린 두렵기만 한 이 감정을 표현하는 넘버가 바로 30/90, 90년에 서른 살이 되는 존의 심정을 노래하는 넘버이다. 더 이상 애가 아니니까 "동화 속 주인공처럼 그대로"일 수는 없다. 그저 성큼 다가와 버린 서른이라는 나이 앞에서 제기랄, 어떡하지, 어떡하느냐는라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그래도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도전하지만, 존은 또 다시 무력하게 깨진다. 그러고는 이제 "깨어진 꿈의 조각들은 줍든가 말던가~"와 같은 환청도 듣기 시작한다.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명백히 힘들고 음울하다. 하지만 언제나 음악은 함께한다. 이건 연극이 아니라 뮤지컬이니까. 존과 함께 고뇌에 빠진 관객을 잠시 일으켜 세울 힘을 주는 것은 록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이다.
록 뮤지컬의 정수, No more
록 뮤지컬은 극 중에서 그 자체로 모순적인 말이라고 했다. 마치 '안전한 음주 운전, 합법적인 범죄자'같이. 하지만 그보다는 기름진 음식에 올라간 장아찌라는 비유가 알맞다. 쉬지 않는 대사로 이루어진 이 뮤지컬에 거친 세션의 연주는 간간하게 양념을 쳐준다.
밴드 사운드의 진가를 보여주는 넘버가 바로 마이클이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No more"이다. "존, 나, 존나 성공했어."라는 마이클의 대사 후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기타는 홀로 연주를 시작한다. 신나는 기타 리프와 빠른 드럼의 리듬은 마이클이 이전 자신의 삶에 작별을 고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빠르던 사운드는 마이클이 새로운 삶에 반갑다며 인사를 건넬 때 다시 평화롭고 느려진다. 이제는 키보드의 시간이다. 반짝이는 새집의 대리석 바닥처럼 건반의 소리는 반짝이고 경쾌하다. 이쯤에서 밴드 세션들을 샷아웃할 시간이다. 키보드에 오민영과 김지혜, 기타에 조성우, 베이스에 윤종부, 드럼에 이기상.
존과 수잔의 듀엣, Green Green Dress & Therapy
물론 배우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공연은 1인극으로 시작했다가 3인극으로, 그리고 이제 앙상블을 포함하여 8인 극으로 확장되었다. <틱틱붐>은 마냥 즐거운 쇼뮤지컬은 아니다. 물론 춤과 퍼포먼스도 있지만 배우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마저 말로 표현하며 대사와 연기로 극을 끌어나간다. 작은 배역도 수잔과 마이클이 일인 다역을 소화하며 다채로운 연기를 펼치고 주인공인 존은 무대에서 단 한 순간도 내려오지를 않는다. 덕분에 인물들의 불안감과 고민에 한껏 관객이 몰입하게 된다. 인터미션도 없이 진행되는 극이라 존 역할의 장지후 배우가 괜찮을까 살짝 걱정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 얘기는, 너의 얘기와 딴 얘기라는, 그 얘기일 뿐인데, 속상하다고, 속상한 말만, 속상하게 꺼내는 게, 속상해.
내 생각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했다면, 나의 반응에 대한 반응에, 대한 반응을, 확실히 보여줬겠지.
- Therapy, 뮤지컬 <틱틱붐>
따라서 그들의 대사와 연기에 따라 극의 분위기는 휙휙 바뀐다. 가장 대사가 찰졌던 넘버는 역시 누가 뭐라 해도 "Therapy"다. 수잔 역의 김수하 배우는 기본적으로 발랄한 톤을 가지고 있으나 에이전시 역과 회사의 팀장과, 무례한 손님과 뮤지컬 배우 역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한다. 둘이 말 같지 않은 말로 서로 다투는 이 넘버는 서로에게 로맨틱한 말을 건네는 "Green Green Dress"와 대조되며 현실감을 부여한다.
갑작스러운 각성, 끊어진 전화: Why & Better than words
다시 극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틱틱붐>에서 아쉬웠던 부분과 가장 좋았던 부분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뮤지컬의 후반부, 피아노를 치며 다시 자신의 꿈을 좇기로 결심하는 부분이 매끄럽게 이해되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갈등이 해소된다고? 고대하던 워크숍이 소득 없이 끝나 인제 그만 현실과 타협하겠다고 결심한 지 반나절 만에 친구와의 언쟁만으로? 물론 하나씩 차근차근 되짚어보면 이해는 된다. 사실 그 정도면 충분히 고뇌했고, 시작을 되돌아보니 그 노력했던 하루하루가 "참 멋진 하루였구나" 싶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연결이 다소 갑작스럽달까. 그래서 갈등이 하나 더 남아있겠거니,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대로 누가 봐도 극의 마무리인 존의 서 른살 생일파티로 이어진다. 존은 결심을 바꾼 채로 서른 살이 되고, 파티가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 부재중 전화 하나. 기다리던 전설적인 뮤지컬 연출가 스티븐 손드하임으로부터의 전화다. 극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바로 그 이후에 나온다. 분명 호불호가 있는 연출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화를 끊어버리는 그 연출 말이다. 그래도 갑자기 판타지물이 되어서 존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건 아니니까. 하고 만족하고 있었는데 걸려 온 부재중 콜. 거기서부터 필자는 아무래도 존의 불행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결심했더니 행운이 굴러온다고? 너무 디즈니적이지 않나. 앞선 넘버에서 흘렸던 눈물은 무엇을 위해서였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존은 중간에 스티븐 손드하임의 전화를 끊어버린다.
이지영 연출은 연출의 글에서 "모든 것을 감내하고 이겨내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 "모든 사람이 아픔을 겪고 있고(지금의 우리들처럼), 모든 사람이 길을 잃고(지금의 우리들처럼), 모든 사람이 마음속에 두려움을 품고 살아간다"라는 메시지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필자가 내심 존의 실패를 바랐던 것은 이 이야기가 극적인 성공을 거둔 존의 이야기가 아닌 그럼에도 도전하는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나보다. 서른쯤 시작된 불안감의 이명, 그 틱틱거림이 멈춘 것은 그가 마침내 성공을 거뒀을 때가 아니다. 실패할지라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마음을 먹은 바로 그 순간이다.
좋은 메시지가 사실 현실의 우리에게는 없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없어도 계속 현실을 살아가야 하고 계속 우리가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사실 그것이 없는 우리에게 "괜찮아, 그런 메시지가 없어도 우리는 스스로 우리 안의 불안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연출 이지영, 틱틱붐, 관객과의 대화
이 극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원작자이자 존의 모델이 조나단 라슨이 커다란 성공을 맞이하기 전, 뮤지컬 <렌트>의 화려한 프리뷰 전날 사망했다는 사실을 들으면 이 모든 희극이 다시 비극이 된다. 하지만 바로 그 사실 덕분에 메시지는 오히려 퇴색되지 않는다. 성공을 정말로 이뤄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 대단한 사람이 전화해서 뭐라고 말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본인이 커다란 성공을 이룬 이후에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지, 하는 극이 아닌 성공의 여부를 알지 못하는 젊은 날 썼던 자기 다짐의 극이기에 <틱틱붐>은 의미가 있다.
[윤희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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