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 같은 공원이 아니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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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도심 속에 공원이 없었다면 나는 좀 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관악산 초입의 아파트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도시의 삶 속에서 자연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공원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나를 해치지도 나를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자연이 주는 포용이란 이런 걸까?
대가를 바라지 않는 포용과 평안함을 느끼고 싶을 땐 주저 없이 공원을 찾아다녔다. 공원에는 나의 사색 시간이, 친구들과 쌓았던 추억이, 따뜻한 휴식과 편안한 기분이 모두 담겨있다.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찍어둔 사진과 나의 경험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면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일산 호수공원
가장 많은 방문 횟수를 자랑하는 일산 호수공원은 여전히 사계절을 막론하고 자주 방문하고 있다. 일산 호수공원은 일산이 신도시로 불리던 시절 일산의 상징 공간일 정도로 규모가 매우 큰 공원이다. 신도시 개발과 맞물려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호수공원으로 유명하다. 일산 주민이라면 한 번쯤은 가봤을 것. 학교 졸업사진은 무조건 이 호수공원에서 찍는다.
사실 이 호수공원은 인공 호수인데, 원래 수로가 없던 곳에 한강 물을 끌어오는 인공 수로를 조성하여 약 30만 제곱미터의 거대 인공호수를 조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운데의 이 호수를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생태공원을 조성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호수를 둘러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한 바퀴 이어진다. 길이 조금 좁긴 하지만 이만한 코스가 없기 때문에 자전거 및 조깅 운동 객이 많은 편이다.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면 바로 집을 나서서 이 호수공원으로 간다. 나의 경우 주로 혼자 산책을 하기 위해 찾거나, 아주 친한 친구들과 공원 한 바퀴를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공간으로 이용한다. 좋아하는 노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정처 없이 한 바퀴를 돌면 상념이 잦아들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이곳이 없었다면 나의 일산 생활기는 좀 더 흑백이었을 것이다.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공원 내에서도 장소마다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노래하는 분수대’라는 게 있는데, 아주 크고 둥그런 원형 분수대가 설치된 공간이 있다. 주로 저녁 타임에 30분가량 진행되는 이벤트가 있는데, 대형 스피커로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 노래에 맞춰 형형색색의 조명을 맞는 분수가 나온다. 사실 따지고 보면 ‘노래하는 분수대’가 아니라 ‘노래에 맞춰 춤추는 분수대’에 가깝다.
여하튼 이곳은 공간이 크기도 하고 나름 거대 이벤트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로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다. 아이들은 공원에서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다가, 부모님과 함께 해가 지고 이 공연을 보는 코스가 가장 좋다. 나의 경우에는 혼자 산책하다가 시간에 맞춰 이 공간에 가 ‘분수 멍(?)’을 때리는 편이다.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오직 음악과 분수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게 된다.
큰 규모만큼 조경도 훌륭한 편이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호수의 풍경과 그 뒤로 보이는 빽빽한 나무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일산에서 대표 축제로 밀고 있는 ‘고양시 꽃축제’가 바로 이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다. 축제 시즌에는 조경도 새로 꾸미고 꽃을 파는 부스도 많아서 공간 자체가 매우 아름답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축제 시즌에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어느 가을날 호수공원의 벤치에 앉아 쏟아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맞았던 기억이 있다. 눈이 너무 부셔서 뜰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한 햇빛이 내 몸 전체를 내리쬐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감각이 내 안에 아직도 존재한다.
호수공원은 워낙 마음의 평형이 깨질 때 자주 방문해서 그런지 좀 미안하기도 하다. 아주 즐거운 일이 생기면, 마음의 평형이 잘 맞춰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깔깔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의도 공원 & 한강공원
일산 호수공원 다음으로 방문 비율이 가장 높은 공원은 아마도 여의도 공원과 한강 공원일 것이다. 우선 여의도에는 여의도 가운데를 크게 차지하고 있는 여의도 공원과 한강 변을 따라 조성된 여의도 한강 공원이 있다. 두 공간 모두 친한 친구들과 자주 방문했다. 호수공원이 나의 안식을 위한 공간이라면, 여의도의 공원들은 친구들과 함께 방문하는 푸릇푸릇하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에 가깝다.
여의도 공원은 아마 큰 비행기 모형이 전시된 중앙 공터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촬영했던 공간이라 방송에도 굉장히 많이 나왔었다. 크게 뻥 뚫린 가운데 공터는 축제나 자전거 타기 등 다수의 인원이 활동적인 무언가를 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나의 경우 여의도에 갈 일이 생기면 매번 이 공터를 통과해 지나갔었다.
그런데 이 여의도 공원은 중앙의 광장을 기준으로 양 사이드의 공간이 더욱더 인상적이다. 언뜻 봐선 그냥 큰 광장이 있는 공원 같지만, 사실 공터 양쪽에는 꽤 아기자기한 조경이 잘 정돈되어 있다. 특히 봄이나 여름쯤 방문하면 좁은 오솔길 같은 산책로 사이로 푸릇푸릇한 풀과 나무, 빨갛고 노란 꽃들을 볼 수 있다.
곳곳에 자그마한 장소들이 있어 걷다가 멈춰 공간을 구경하기도 좋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느린 템포의 산책로는 주변을 둘러보고 함께 걷는 사람들과 천천히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꽃 사진을 찍던 순간이 기억난다.
이 오솔길 사이사이로 산책하다 보면 은근히 사진 찍기 좋은 공간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며 조경을 볼 수 있는 분위기라 여의도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커피 한 잔과 함께 걷는 모습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동료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공간으로 보인다.
한편 여의나루역 근처의 한강 공원은 한강 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아마 서울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공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활성화 되어있는 공원이다. 그 유명한 ‘한강 라면’의 시초이다. 자전거 대여소도 많고 자전거 도로 잘 되어 있어 한강 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과 2인용 혹은 4인용 자전거를 대여해 함께 타는 가족 단위 방문객도 많다.
나의 경우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피크닉을 자주 간 기억이 있다. 워낙 많은 방문객이 음식을 시켜 먹는 곳이라 공원에 따로 ‘배달 존’도 있다. 친구들과 자리를 잡고 배달을 시켜 배달 존에서 음식을 받아오면 모든 피크닉 준비가 끝난 것이다. 먹고 마시고 놀면서 한강 물을 바라보면 ‘이게 청춘이구나!’라는 생각이 곧바로 떠오른다.
사진첩에서 한강공원 사진을 찾다 보니 이때가 그립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피크닉을 즐기기만 했던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도 기억도 모두 사진에 담겨있다. 물론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그때처럼 모일 수 있겠지만(아마도), 다들 더 이상 예전 같지는 않을 테니. 한강 공원을 보면 세월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난지천 공원
월드컵 공원 중 난지천 공원은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5월에 서부 운전면허장에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치른 후 생각보다 일찍 끝나 방문하게 되었다. 큰 기대를 하고 가진 않았는데, 조경이 생각보다 예뻐서 기억에 남는다.
난지천 공원은 도로변에서 넓은 잔디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방문 시기에는 한창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던 시기라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무로 된 계단을 따라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그 길에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어 마치 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았다.
그렇게 공원으로 들어오면 넓은 잔디광장이 있다. 이곳은 여의도 공원의 광장처럼 대규모 인원이 활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방문했을 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고, 근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체험학습을 나온 단체도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광장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성인이 된 이후로 연을 날려본 적도, 연 날리는 장면을 본 적도 없어서 그런지 그 아이가 신나게 연을 날리던 장면이 이상하게 생생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월드컵 공원에서 행사나 학교 체험학습 등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이곳에서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가진 특유의 생동감 있고 발랄한 분위기가 좋았다.
광장 양쪽으로는 좁은 길이 있는데, 사이사이 잡초나 풀꽃, 벚나무가 심겨 있었다. 조경이 화려하다기보다는 자연스럽고 깨끗한 느낌이다. 여러 갈래의 길들이 있는데, 아마 그 길들을 쭉 따라가면 월드컵 공원의 다른 공원이 연결되는 것 같다.
잔디가 많아 피크닉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서 하늘을 보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돗자리를 준비하지 못한 나는 대신에 노래를 들으며 풀이 무성한 곳을 찾아 걸었다. 오솔길 사이사이로 걷다 보니 디지털미디어시티 근처 회사에서 산책을 나온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꼭 피크닉을 와보고 싶은 공간이었다.
차가 지나다니는 대로 옆의 공원이었지만 공원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소리가 가득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녹지 가까이 사는 사람은 더 건강하게 장수한다고 한다. 녹지 자체가 인간에게 주는 이점도 있겠지만, 공원을 방문한 어린이들이나 가족들의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분위기 또한 우리의 정신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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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곳의 공원은 각각 특징과 분위기가 다르다. 누군가에겐 그저 다 같은 공원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방문 목적이나 그곳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조금씩 다르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나 자신을 단순히 공원의 조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조경을 보면서 평온함을 되찾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도 좋아하지만, 나는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들으며 걷는 것도,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친구들과 깔깔대며 웃는 것도, 예쁜 조경의 사진을 찍고 기억하는 것도. 공원이라는 공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발생 가능한 일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난 어디에서 살든, 어디를 방문하든 그 지역이 지키고 있는 자연을 여전히 탐방할 것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감정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심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겨울이 지나고 따뜻해질 공원의 모습이 기대된다. 올해는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공원을 더 많이 탐방해 보고 싶다.
[김효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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