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영은 개인보다 강한가 - 오징어 게임 2 [드라마/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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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2가 나왔다.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이 표현은 좀 상투적인가, 아무튼 온 세계에 영희 씨의 존재를 알렸던 그 "오징어게임"의 후속작이다. 성기훈(이정재 분)이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한 오징어게임 1의 엔딩에서 이미 속편은 예고되었다. 따라서 이 속편이 과연 소포모어 징크스를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K-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공개 이전에도 만연했던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너무 이른 감정들이었을까. 콘텐츠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굳이 이랬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캐스팅이나 현재로서는 의미 없어 보이는 장면의 반복은 부정적 반응을, 딱지남(공유 분)의 광기 어린 연기와 주제 의식의 확장은 긍정적 반응을 끌어냈다.
그 방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시즌2가 시즌1과의 차별화 자체에 성공하였음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두 시즌 간의 차이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주목해 보고자 한다. 예를 들면, O/X 게임은 왜 그렇게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만 했을까?
속편이 가지는 숙명: 이야기의 확장
소포모어 징크스, 혹은 2탄의 저주는 흥행에 성공한 1편의 뒤를 잇는 2편이 실패한 경우를 일컫는다. 그냥 흥행도 아니고 대흥행이라면 '그래 어디 얼마나 잘 만들었나 볼까?' 하며 잔뜩 기대에 찬 관객들을 속편이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같은 문법을 반복하는 안전한 선택지도 있지만, 대개 이 속편의 저주에 걸린 작품들은 어떻게든 전작에서 한 발짝 나아가고자 시도한다. 주인공을 바꾸거나, 세계관을 넓히거나.
"시즌 1보다는 조금 더 진일보한, 더 깊게 들어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더 강하고 더 확장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게임도 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또 어떤 면에서는 시즌1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 황동혁 감독,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2는 두 가지 모두를 시도한다. 어리바리하던 성기훈의 가치관은 조금 더 깊어졌고 세계관은 게임장을 넘어 확장되었다. 게임이 진행되는 핑크빛 세트장과 어디인지 모를 섬을 찾아 헤매는 바다 위의 배. 드라마는 그 두 가지 공간에서 사건을 동시에 전개해 나간다. 새로움에 대한 감독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하나 바다 위의 황준호 형사(위하준 분)가 결국 실패만을 반복하다 시즌2가 끝났을 때 허무감은 어쩔 수 없었다. 다음 시즌을 위한 초석이니 수색 조가 나올 때마다 늘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시즌3에서나 긍정적인 효과를 볼 것 같은 공간적 확장은 잠시 넣어두고, 주목해야 할 한 가지 확장이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게임의 확장,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관계의 확장이다.
개인 간 투쟁에서 진영 간 갈등으로
이번 시즌, 새로운 게임에는 새로운 규칙이 하나 추가된다.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게임을 지속할지 투표를 진행하고, 과반수가 게임 중단에 동의할 시 게임이 중단된다는 규칙이다. 시즌 1에서 게임은 VIP들의 관람 하에 펼쳐지는 개인 간의 투쟁이었다. 참가자들이 이루고자 하는 어떤 공통된 의지가 있다기보다는 개개인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시즌 2는 다르다. 이들은 첫 게임 직후부터 편을 가른다. 살아남는다는 목적 이외에도 나간다, 혹은 나가지 않는다는 목적이 한 가지 더 생기는 것이다. 게임을 같이하더라도 이 두 번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같은 패거리 안에서도 새로운 진영이 생긴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분쟁의 주체는 개개인에서 진영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이 갈등은 스페셜 게임, 살육의 밤으로 이어진다.
시즌 1에도 살육의 밤은 존재했다. 장덕수 패거리가 밤을 틈타 다른 참가자들을 습격했던 날이다. 이들이 노린 것은 사람들이 죽음으로써 늘어나는 상금. 이번 시즌에도 골자는 비슷하다. 게임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O 진영 사람들이 X 진영 사람들을 습격한다. 겸사겸사 사람들이 죽어 상금이 늘어나면 나쁠 것도 없으니. 달라진 것은 그들의 가슴팍에 인장처럼 새겨진 이름표다. 그룹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구성원들은 해당 그룹에 더 큰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바닥에 선을 긋고 너는 이쪽, 나는 이쪽이라고 공간까지 나눈다. 내 편도 명확하고 타깃도 명확하다. 바깥쪽에 있는 다른 색의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이 적이다.
진영을 구분 지으며 갈등을 확대하는 것 같은 이 O/X 투표는 오히려 궁극적인 갈등 주체를 축소하는 역할을 한다. 참가자들이 놓치고 있는, 그리고 성기훈이 집중하고 있는 다른 진영이 있다. 바로 참가자 진영과 주최 진영이다. 이 갈등에 집중하고 있는 성기훈에게 O/X 진영 간 갈등은 그리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기훈은 프론트맨에게 접근하기 위해 이 살육을 의도적으로 방관한다. 시즌 1때 그의 도덕적 이상과 충돌할지라도 주최 측 진영을 치기 위한 더 큰 목표를 위해 그의 윤리적 기준을 유보한다.
진영의 논리는 개인의 신념보다 강한가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시즌2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분홍빛 화장실에서는 진영 간의 충돌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화장실은 사람이 가장 취약한 공간이다. 반려동물들도 그걸 알기에 반려인이 용변을 볼 때 그 앞을 지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 드러나는 곳이다. 그 취약함 앞에서 사람들은 본인의 욕망을 공격적으로 표현하기를 숨기지 않는다. 타노스(최승현 분)가 이명기(임시완 분)에게 가졌던 분노는 진영으로 나뉘기 이전의 개인적 분노이지만 그들이 시작한 싸움은 서로에 대해 그 어떤 원한 관계도 없었던 사람들이 서로를 살육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시점에서 X 진영 사람과 O 진영 사람들은 이미 개개인에 대한 판단보다 그 개인이 속한 집단에 대한 판단을 우선시한다.
여기까지 보면 진영의 논리는 개인의 신념에 비해 한없이 강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더 옳은가? 개개인이 가지는 신념보다 대다수가 추구하는 것은 대개 효율적이다. O 진영 사람들의 습격도 진영에 속한 구성원들의 목표인 더 많은 상금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다. 대개 그 효율 앞에 도덕적 판단의 가치가 흐려질 뿐이지. 하지만 성기훈의 선택은 오영일(이병헌 분)이 조롱하듯 시야가 좁은 '영웅 놀이'였을지는 몰라도 도덕적 근거가 없지 않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성기훈의 신념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택한 구성원 이외 사람들의 생명이 희생된다는 딜레마가 포함될지라도 진영의 논리는 분명 개인의 신념에 영향을 받는다. 자연스럽게 O 진영의 리더가 되었던 성기훈의 신념에 의해 O 진영의 구성원들이 주최 측을 치자는 의견에 동조했듯이. 사실 O 진영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게임에서의 탈출이자 안전일 텐데 그들의 진영논리와 성기훈 개인의 신념, 혹은 반주최 측 진영의 진영논리에는 차이가 있지 않나. 그 둘 사이에 성기훈이라는 접점이 있었기에 진영의 논리에 변화가 있었고, 그 때문에 혁명이 가능했다.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그리고 화장실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한 가지 장면이 더 있다. 여기서는 화장실이 참가자들이 입고 있는 옷과 동일한 초록빛이다. 그 공간이 까발리는 인간의 취약함 앞에서 누군가는 다른 이를 지키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이 개인적 신념은 아주 가볍게 진영논리를 극복한다. 준희(조유리 분)의 복통을 걱정하며 그 앞을 서성이는 장금자(강애신 분)처럼. 장금자의 개인적 신념 앞에서 준희가 X를 달았는지 O를 달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영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항상 옳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개인의 신념을 항상 거대한 논리 앞에 굽힐 것이 아니라 어느 때는 적절히 그 논리를 변화시키며, 어느 때는 관철하며 생존해야 한다.
[윤희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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