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허무함

허무를 인정하는 순간
글 입력 2025.01.18 11: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행복 (幸福)

[행:복]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삶이 행복하길 원한다. 아마 여기서의 행복은 사전적 정의의 두 번째 말을 의미할 것이다. 꾸준히 만족스럽고, 지속적으로 기쁜 삶. '행복한 삶'이란 생명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그 자체로 살아가는 동기가 될 것이다. 이는 곧, 단기적인 만족과 기쁨은 '삶'을 수식하는 관형어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간의 환희는 지속적인 삶이 될 수 없으며, 장기적인 만족을 위하여 부단히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제멋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편하게 행복할 수는 없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고통이 있는 삶은 행복한 걸까?


 

보통의 사람들은 괴로움을 통해 행복에 더 감사해하거나 더 크게 느끼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괴로움은 괴로움이고 그것 때문에 나는 지금 힘든 것이다. 힘들고 고되기 때문에 나는 괴롭고 싶지 않은데, 그럼에도 사는 게 정말 힘들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드물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또는 사회 속 나의 위치를 의식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불행하다. 따라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힘들게 살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자살률 수치가 OECD 국가 중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불행한 통계 자료에서도 알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머리로 알고 있지만서도 몸으로도 체감한다. 매일 매일 찾아오는 다양한 고통으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과열된 경쟁 사회나 경직된 경기와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전 세계적으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여러 정책을 펼치는 것을 보면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라는 건 인류의 근원적인 질문인 것 같다. '불행한 삶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는 고통 많은 삶이 곧 불행한 삶일 수 있을 테니.

 

따라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파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나, 내가 경험하지 않는, 그러나 언제든지 경험할 수 있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럼에도 살아간다.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언젠가는 이 고통의 끝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더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찾아오는 고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간혹에는 그럼에도 행복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감히, 그 고통을 함부로 말할 수 없겠지만, 정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부러우면서도, 존경스러우면서도, 진심으로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것은 허무하므로


 

20250114150750_ydixybad.jpg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즉 여래를 볼 것이다.

 

 

불교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이하 '금강경') 속 한 구절이다. 불교는 현세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이 특징인데, 그 중에서도 해당 문구는 불교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구절 중 하나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불변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흐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변하는 모든 것에 변하지 않음을 추구하면 결국 그것에 고통받는 것은 본인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내면의 집착을 버려라' 라는 것일 거다.

 

허무함이란 삶을 관통하는 감정 중 하나다. 모든 것이 무가치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의욕을 잃어버린다. 무엇을 해도 결국은 죽을 운명이고, 어떤 감정을 느껴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기 때문에 현재를 사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인가? 흘러가는 시간도 살아 숨쉬는 것도 영원할 수 없는 것임에도 이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그 허무함 또한 잠시 지나가는 감정이라는 것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고, 유에서 무로 파멸하는 세상에서 허무함만이 영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허무함으로부터 비롯되는 불행함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번뇌 또한 허무한 것임을 알고 괴로움이 한결 작아진다. 그저, 가벼워진 마음만 남는다.

 

그럼에도 우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회에서는 그 찰나의 사랑을 나누고 슬픔을 나누고 분노를 나눈다. 지나가는 순간들조차 괴로움으로 가득하다면 그것이야말로 허무함의 지속이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서로 돕고 살아간다. 그것의 결과가, 괴로움이 영원하지 않다는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매서운 겨울이다. 날이 갈수록 추위는 강해지고 마음은 깨지기 쉽게끔 얼어붙는다. 몸과 마음이 불행하기 쉬운 요즘, 허무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쫓아보자. '행복한 삶'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지금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이 매 순간마다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지향점은 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에.

 

 

 

20250114150724_vkqpfwdw.jpg

 

 

[윤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5.02.0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5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