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서울예술단의 과거, 현재 그리고 뮤지컬 콘서트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다 - 2024 서울예술단의 송년갈라 SPA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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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뮤지컬 콘서트는 지금까지 대개 유명 배우들이 참여해서, 그들의 대표 넘버나 유명 작품의 넘버를 부르는 방식으로 진행되거나, 배우 또는 작곡가의 단독 콘서트로 이루어졌다. 그중 주목할 만한 것이 <브랜든 리의 심포니 콘서트>이다.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가진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이성준(브랜든 리)은 자신이 작곡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벤허>, <베르사유의 장미>의 넘버를 엮어 지속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관객에게 들려주는 독자적인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2024 서울예술단의 송년갈라 SPACon은 지금까지의 뮤지컬 콘서트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서울예술단은 <잃어버린 얼굴 1895>, <윤동주, 달을 쏘다>, <신과함께_저승편> 등 다양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그 존재를 인식 시켜왔고, 서울예술단을 지지하는 팬층도 있다. 1986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재단법인으로 설립된 이 단체는 ‘뮤지컬’이라는 단어 대신 ‘가무극’이라는 용어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적 소재와 양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서울예술단 단원들이 있으며 각 공연 시에 객원 단원을 두기도 한다. 이번 공연에는 객원 단원으로 뮤지컬 배우 차지연, 박영수, 김도빈과 소리꾼 이자람이 참여했다.
이번 SPACon은 서울예술단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그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이전의 뮤지컬 콘서트와 다르게 장면 시연을 하고, 연출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한국에 대형 뮤지컬 제작사라 할 수 있는 EMK, OD컴퍼니, 신시컴퍼니, 쇼노트, CJ ENM 등은 창작 뮤지컬보다는 라이선스(해외) 뮤지컬로 레퍼토리를 구성하고 있으며, 각 제작사에서 뮤지컬 콘서트를 개최하지도 않는다. 즉, 하나의 제작사(혹은 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를 한 번에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데, 서울예술단은 이번 송년갈라 콘서트에서 그들의 대표 레퍼토리를 한 곳에 모아 관객에게 선보임으로써 과거 작품을 향유했던 관객에게는 작품을 회상하고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고, 그 작품을 보지 못한 관객에게는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VIP석 티켓값이 19만원이 된 지금, 섣부르게 작품을 선택하기 힘든 관객들에게 색다른 마케팅 방법으로서,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확실한 이정표를 제시한 셈이다.
공연은 총 10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서곡은 서울예술단의 과거 상연되었던 작품을 영상과 배우들의 춤으로 재구성했다. <새불>, <한강은 흐른다>, <청산별곡>, <로미오와 줄리엣>, <태풍>, <바람의 나라>. 지금은 보기 힘든 작품이 영상 자료와 서울예술단 무용 단원들의 춤사위를 통해 재현됨으로써 각 공연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이후 <윤동주, 달을 쏘다>, <잃어버린 얼굴 1895>, 사물놀이, <나빌레라>, <금란방>, <천 개의 파랑>, <신과 함께_저승편>, <칠서>, <이른 봄, 늦은 겨울>, <꾿빠이, 이상>, <순신>이 차례대로 전개되었고 9장은 ‘맺음’이라는 테마로 전체 출연진이 나와 넘버 ‘천천히’를 합창했다. 이 넘버는 급하게만 가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가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데, 이것이 성장 중독에 걸린 한국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 같기도,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한 뮤지컬계에 던지는 일침 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10장은 커튼콜로 전체 출연진이 나와 인사를 했다. 노래가 진행되는 중 2번 정도 배우들이 토크쇼 형식으로 간단하게 이야기를 진행하며 관객과 소통하고 분위기를 전환했다.
서곡부터 맺음까지, 각 막이 전환될 때마다 새 작품이 올라왔다. 그리고 여기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김성수의 연출이었다. 김성수는 이번 공연에서 연출과 음악감독을 맡았다. 그는 무대 뒤에 오케스트라를 위치시키고 자신 또한 무대 위에 섰다. 오케스트라를 향하지 않고, 배우들과 오케스트라를 모두 볼 수 있게 비스듬히 서서 무대 위의 모든 것을 조율했다. 그의 지휘와 홀리워터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세밀하게 조절하여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사했다. 그리고 막이 전환될 때 무대를 마친 배우와 이제 무대를 꾸밀 배우가 교차되며 등퇴장이 진행되었다. 장면 시연을 이어 나가는 경우 암전으로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작품 간의 인물이 교차되며 등퇴장하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며 전개 또한 매끄러웠다. 전반적으로 작품 선정부터 세세한 연출까지, 김성수는 그 자신이 얼마나 서울예술단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와 서울예술단에 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공연의 서문을 연 서곡에서 모든 단원들이 흰색 옷을 입고 나와 춤을 췄다. 이때, 현대 무용뿐 아니라 한국 무용, 더 나아가 제의적인 몸짓까지 포괄적으로 춤이 전개되었다. 흰색 옷과 흰색 천으로 된 배경은 마치 한국에서 음악극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제의(무굿)를 연상시켰고, 백의민족이라는, (어쩌면 과거일 수도 있는) 정체성을 부각했다. 동시에 흰색 옷을 입은 단원들은 각 작품에 따라 다른 인물로 변하고, 하얀 천은 영상 효과를 통해 다른 배경으로 빠르게 전환되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흰색’이라는 색깔이 서울예술단의 색깔을 보여주는 듯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적 소재에 집중하는 서울예술단은 과거 한국인의 감수성과 미감을 전승하는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윤동주, 명성황후, 정조, 이순신과 1978년 만들어진 사물놀이. 한국인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이른 봄, 늦은 겨울>과 <신과함께_저승편>. 우리의 문학을 뮤지컬로 각색한 <나빌레라>, <천개의 파랑>, <꾿빠이, 이상>. 서울예술단은 우리와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다만, 앞으로는 우리의 현재 일상을 담은, 오리지널의 가무극도 서울예술단에서 제작되길 소망한다. 뮤지컬이 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지를 보고 싶다. 더불어 가·무·악은 뮤지컬에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기체처럼 엮여서 하나의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만큼, 이 세 요소가 조금 더 융합되어 장면이 만들어지길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본 공연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과 아쉬웠던 몇 지점을 말하며 글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나빌레라>는 76세의 덕출이 치매를 앓으면서도 오랜 꿈이었던 발레를 하게 되면서, 한때 전도유망했던 발레리노 채록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자신을 믿지 못했던,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고자 하는 두 인물의 서사를 담은 이 작품을 서울예술단의 청년교육단원들로 꾸려 무대를 만든 것이 퍽 감동이었다. 서울예술단 청년교육단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공립예술단체의 ‘청년 교육단원’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상대적으로 실무경험을 쌓기 어려운 청년 예술가들에게 무대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무대 위에서 환하게 빛나기를 꿈꾸며 자신의 소중한 꿈을 영글어 나가는 청년교육단원들이 만들어 나가는 ‘꿈의 무대’는 특별했다. 특히, 청년교육단원 중 심덕출 역을 맡은 이동주 배우에 눈이 갔다. 그는 소리의 공간감을 잘 살리면서도 음형을 잘 보여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소리를 조금만 다듬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무대에서 그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순신>의 무대에서는 스모그와 조명을 이용한 연출이 특히나 눈을 사로잡았는데, 조명 효과로 마치 구름처럼 표현된 스모그는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이미지를 구현해 냈다.
아쉬운 점은 음향과 배우들의 노래다. 처음 <윤동주, 달을 쏘다>의 넘버에서 배우들이 핸드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는데, 하울링이 너무 심하고 고음에서는 마이크 음향이 찢어져 가사를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 이후 몇 장면에서는 핀마이크를 사용해 조금은 나아졌으나, 핸드마이크를 사용할 때는 음향이 계속 좋지 못했다. 음향이 뜨게 들리니 몇몇 배우들은 음정을 맞추지 못했다. 창극이 공연될 때 해오름 극장의 음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음향이 좋지 않은 공연장은 아닌 만큼, 조금더 음향이 신경을 썼으면 좋았겠다는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더불어, 한국 뮤지컬 무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데, 많은 배우들이 노래의 음형을 살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완급조절, 강약 조절, 진성과 가성 사용을 통해 노래 풍부하게 만들기 등은 뒷전이고, 큰 성량으로 노래를 쨍쨍하게 부르는 데만 집중한다. 큰 파도만 사람의 이목을 끄는 것이 아니다. 어떨 때는 조용한 순간 떨어지는 한 방물의 물방울이 더욱 강력할 때도 있다. 좋은 오케스트라를 구별하는 기준이 피아니시모를 얼마나 잘 연주하는 지인 만큼, 조금 더 배우들이 소리의 다채로움에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럼에도, 소리꾼 이자람이 그려낸 ‘한산대첩’은 무척이나 훌륭했는데, 그가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명성황후 역을 수행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정체성을 가무악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하는 서울 예술단. 이번 공연이 단발성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되어 송년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역사를 함께 하고 싶다.
[김소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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