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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약 10일간의 주인공들의 짧은 사랑과 이별을 다루는 굉장히 은밀한 어조로 쓰인 소설이다.

 

1958년 출간된 이 소설은 소설 내에 재현된 짧은 사랑처럼 그 길이도 짧다. 이전에 뒤라스의 소설 『여름비』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소설보다 약 30년 정도 일찍 쓰여서인지, 훨씬 분명하고 선명한 차원에서 사랑의 감각을 다루고 있다고 느꼈다.

 

제목처럼, 마치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서술하는 음악적인 소설이다.

 

 

 

1. 안과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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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 주인공인 안 데바레드는 프랑스의 어느 항구도시 공장장의 아내로 부유하고 유복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의 삶에 있어 유일한 소일거리는 어린 아들의 피아노 교습을 지켜보는 일뿐이다.

 

아이는 몇 번이고 알려줘도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의미를 기억하지 못하며, 곡을 한 달이 되어도 떼지 못한다. 그런 아이를 교습 선생님인 지로는 엄하고 가혹하게 다그치지만, 아이는 그런 지로가 아닌, 오로지 안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만 유의미하게 응한다.

 

그런 아이를 안은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지칭은 사람의 외피만큼이나 핵심과 같은 것이다. 소설 속 안이 자신의 아이를 이름이 아닌, 오직 ‘아이’라 지칭하는 것을 보며 안이 아이를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투사하며 또 다른 자아처럼 여기고 있다고 느꼈다.

 

어느 날 교습 중 들려온 비명에 호기심을 갖고 카페로 나간 그는, 살인 사건을 목도하게 된다. 여자를 죽여놓고 비통하고 절절하게 사랑을 외치며 애도하는 남자의 모습, 이 이미지의 목격은 평화로운 안 데바레드의 삶을 뒤흔드는 충격이었다.

 

그 이미지에 흠뻑 매료된 안은, 다음 날 살인 사건이 일어난 카페로 아이와 또다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인 사건을 함께 목격하였던 ‘쇼뱅’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1년 전까지 안의 남편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했던 남자로, 부유한 안과는 상당히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카페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라는 ‘이미지’에 매료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2. 무대로 전환된 카페에서 펼치는 욕망의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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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뱅과 안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그 살인 사건에 몰두하며 스스로 연극의 주인공이 된 것마냥, 사건과 인물을 재구성하여 연기하듯이 말로 재현해낸다는 것이다.

 

그들의 ‘재현’은 상당히 규칙적으로 이루어진다. 안은 아이를 데리고 나와 카페에 당도하고, 그들은 영업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며칠간 함께 대화를 주고받으며 사건의 디테일을 완성한다. 마치 TRPG 게임처럼 말이다.

 

그동안 안의 아이는 항구에 나가 놀고,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살피며, 카페 여주인은 일을 하고 때때로 그들을 관객처럼 구경한다. 그들이 한 편의 연극으로 살인사건을 재구성하는 동안, 안과 쇼뱅은 서술 내에서 ‘그 여자’, 혹은 ‘그 남자’가 되기도 한다.

 

교묘하게 지칭이 뒤섞이며 전혀 모르는 이들의 이미지는 안과 쇼뱅의 이미지로 새로이 덧씌워진다. 아이는 그 모든 광경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으며, 여전히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한다.

 

안과 쇼뱅의 대화는 상당히 음악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 계속해 그들이 ‘연극적’이라 말하는 데에는 정말 소설의 전체적인 서술 방식이 유려한 음악처럼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래하듯이 대사를 서로 주고받는다. 그 대사는 매우 은유적이며 은근하지만, 동시에 적나라한 방식으로 그들의 욕망과 격정을 드러낸다.

 

쇼뱅과 안은 이미지 속 ‘그 여자’와 ‘그 남자’를 재현하며 서로를 자신의 욕망과 동일시한다. 그렇게 그들의 연극은 점차 사랑의 절정과 죽음이라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여기까지가 6장까지의 극이다.

 

7장에서는 여태까지 안과 쇼뱅의 욕망을 이미지화할 수 있는 무대적 공간이던 카페가 아니라, 안이 머무는 ‘라 메르 가’라는 현실적 공간의 풍요로운 만찬 풍경이 등장한다.

 

안의 은유적인 행동으로 그의 남편은 그의 불륜을 눈치챈다. 그러나 그는 언어로 힐난하지 않는다. 안은 이쯤에서 그만해야 함을 눈치채지만, 결국 쇼뱅과의 연극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틀 뒤 카페로 다시 향한다.

 

아이를 떼어놓고 혼자 카페로 온 안은 쇼뱅과 극을 갈무리하려고 계속해 노력하지만, 쇼뱅도, 안도 ‘그 남자’나 ‘그 여자’에 몰입하길 힘들어한다.

 

 

 

3. 분리, 그리고 종막


 

안은 ‘이번 주부터는 아이를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지로에게 데려가기로 했다’고 말한다. 안의 방식이 여태까지 아이의 교육에 좋지 않다는 지로의 말에 동의한 것이다.

 

사실 객관적인 시선에서 아이의 교습 방식을 보면, 상당히 가혹하고 폭력적이다. 그러나 안은 여태까지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기자신을 투사하는 또 다른 자아처럼 여겨왔다.

 

아이는 무구하고 천진하게 안을 바라봐왔으며, 아이의 입을 빌려 안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서술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아이와 분리한 채 쇼뱅과의 극을 마무리하러 온 안의 결정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안과 쇼뱅의 심리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지칭에 뒤덮여, 명확히 무엇이라고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쇼뱅은 마지막 연극에서 계속해 ‘그 남자’로 몰입하길 힘들어하며 이를 지연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죽음으로 치닫는 마지막 순간을 끝내 재현하려 노력하지만, 그 발화는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아닌 ‘안 데바레드’와 ‘쇼뱅’으로서이다.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쇼뱅이 말했다.

 

“그렇게 되었어요.” 안 데바레드가 말했다.

 

안 데바레드는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리에서 비켜났다.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뒤돌아섰다. 쇼뱅의 손이 허공을 휘젓고 테이블 위로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그 여자는 이미 그가 있는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했다.

 

바에 앉아 있는 남자들의 무리를 헤치고 나온 그 여자는 그날의 종막을 고하는 붉은  노을 속에서 석양과 다시 마주했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 중

 

 

안과 쇼뱅이 이 연극과 무대에서 마지막 연기를 펼치는 동안, 아이의 소나티네는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게 연주되고 그들은 무대를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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