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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무너져도 마음만은 꼭 붙잡아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예민한 사람 정도만 흔들림을 느낀 예년의 지진이 아니었다. 마트에서 물건이 쏟아지고 사무실에서는 각종 용품들이 위험하게 흩뿌려졌다. 서울에 거주하는지라 영상으로만 지진을 접하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일본의 뉴스나 영화의 한 장면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칼같이 책상 밑으로 숨어드는 이웃나라 사람의 대처와 달리, 떨어지는 구조물들 사이를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거나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의 주변에서 벌어진 재난임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지진은 나에게 너무나 먼 현상이었다.


천운이었다. 다행이 사망자는 없었지만, 건물이나 시설의 손상은 심각했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그러나 포항 시민들은 강인했다.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재난 복구에 한창인 그들의 노력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어 내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섬에도 수험생이 있고, 군대에도 수험생이 있다. 심지어 교도소에도 수능을 준비하는 죄수가 있지 않던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포항에도 수많은 수험생이 존재한다. 큰 지진이 발생했고 그들이 심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음은 자명했다. 그리고 이번 재난은 정신으로 무장한다고 극복될 일이 아니었다. 수능날 여진이 고사장을 덮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사실, 수능이 연기되어야 하는 게 마땅했다. 고작 시험 하나 때문에 무수한 생명을 담보로 잡는 일 따위는 존재해서는 안되었다.


당연히 수능이 연기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 쪽에서는 ‘수능 연기’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토록 ‘0’가 되길 고대하던 해방의 날이 다시 ‘7’이 되는 그 순간. 수갑 구멍에 꽂아진 열쇠를 돌리지 못하고 다시 간수에게 뺐기는 상상. 분명, 목숨을 구하는 선택임을 알면서도 열쇠를 건네는 나의 손은 금단증상이라도 온 듯 벌벌 떨려왔다.


나는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수능을 어떤 상징으로 대했는가. 의욕이 넘치던 초반에는 수능이라는 제도를 통해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발구름판으로 점프를 하자 경혈을 찌르는 고통이 나를 에워쌌다. 어느새 그 발판은 조약돌이 곳곳에 박힌 지압판으로 변모해 있었으니까.


수험이 종반부에 이르러갈수록 나는 아픔을 경감하는 것과 근원에서의 완전한 탈출만을 고대하며 살았다. 학원에서는 산책을 할 수 있는 밥시간을 기다리며 자습시간을 보냈고 주말에 학원을 가는 빈도도 여실히 줄었다. 수능까지 남은 날이 한 자리에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형기가 끝나가는 수형자처럼 해방감을 만끽할 기대에 가득 차 있었을 뿐이었다.


그 부풀은 마음이 터지기 직전에, 수능 연기가 확정됐다. 노란 옷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의 형기를 아니, 수험을 연장했다. 나는 덤덤히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나의 사사로운 소망보다 목숨이 달린 대의가 우선임을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국가의 결정, 그리고 내게 주어진 7일의 추가 시간. 원망하듯이 서술했지만, 이는 내게 정말 값진 경험이 되었다. 다음날, 문제집을 몇 권 살 요량으로 서점에 갔다. 문제집을 버린 수험생들이 이미 휩쓸고 간 모양인지 진열대가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나는 생소한 이름의 문제집을 과목별로 한 개씩 샀다. 학원에 도착해 암기 과목인 탐구부터 풀어나갔다. 자신 있게 풀고 채점을 하면서, 나는 어제 느꼈던 절망이 내게 구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생소한 문제들 사이에서 나의 얄팍한 개념은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원래라면 지금 수능을 치러야 할 수험생의 준비 상태가 아니었다. 1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 하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 했다. 내게는 무려 7일의 시간이 더 남아있으니까. 시험 성적은 후순위였다. 일주일동안 남은 기간 동안 다지기에 집중한다면 수험 생활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은 갖출 수 있다는 것이 우선의 목표였다.


다급하진 않았다. 이미 수능 시험 범위의 개념들은 전부 숙지가 되었으니 실수하지 않게 꼼꼼하게 보완하면 되었다. 연습 문제를 틀릴 때, 평소처럼 자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했다. 수능이었으면 점수가 깎였을 테지만, 지금은 머릿속에 집어넣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라는 뻔뻔한 사고회로를 굴렸다.


그래도 7일은 긴 시간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지나갔고, 수능 날이 밝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쏟아내었다. 첫 번째 과목인 국어를 풀 때, 긴장감에 휩쓸려 그간의 노력을 그르칠 뻔 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려 수학부터는 제 기량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이후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마지막 과목까지 모두 푼 뒤 떳떳하게 시험장을 나왔다는 하나의 사실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못 푼 문제도 나름 있었다. 남들이 선망하는 대학에는 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회가 남는 결과는 아니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재수를 결심한 최초의 기억을 떠올렸다. 명문대를 가기 위해? 원하는 학과를 가기 위해? 전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늦잠을 핑계로 도망친, 수능이라는 입시제도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처절하게 준비했고 부딪혔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결과는…. 그래도 돈이 넉넉지 않으니 집 근처의 학교로만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재수생활의 시작과 끝이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무 감흥이 없었더라도 상관없다. 나도 당신에게 바라지 않듯, 당신도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을 테니까. 대신 나는 나의 행복을 바란다. 나에게는 그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재수였고, 이후로도 나의 행복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당신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은, 나도, 친구도, 선생님도, 심지어 부모도 아닐 수 있다. 오롯이 당신을 위하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그 사실 하나만을, 이 글에서 건져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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