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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철저한 고립


 

에피소드가 많은 재수생활은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 만난, 재수종합학원에서 공부를 한 친구에 의하면 커플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공부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는데…. 나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애인을 못 만들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과의 접점이 단 하나도 없는 학원이었기에 그렇다.


독학재수학원. 지금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의 재수학원이지만 내가 수능을 준비할 때는 태동기를 막 넘어설 시기였다. 오전 8시 등원. 열 네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 뒤 오후 10시 하원. 그 시간동안 사람과 대면해 커뮤니케이션을 가지는 순간은 일절 없다. 수업은 인터넷 강의로 대체.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자습. 완벽한 고립.


이런 괴상한 형태의 학원을 고른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고려사항은 돈이었다. 그때 시세로 종합반은 독학재수학원에 비해 세 배가 비쌌으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 그나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여기서 더 아낄 수는 없었다.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간 고3때의 실패를 되풀이 할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스스로를 철저히 속박하기로 결심했다.


학생도 아니고, 어른 취급을 받지도 못하고, 그러나 법적으로는 성인인 애매한 시기. 어느 층위에도 존재하지 못해 붕 뜬 회색빛의 시간. 그래도 그때는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실력과 공부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랐으니까. 그동안 공부를 놓아버린 대가를 충실히 치르다보면 하루가 금세 흘러갔다.


정말 기이한 일이다. -군대에서도 그랬던 것 같은데- 하루하루는 빠르게 흘러가는 반면, 수능까지 남은 날은 아무리 시간을 보내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세 자리의 남은 날짜가 굳건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때의 나의 유일한 낙은 산책이었다. 점심시간 1시간, 저녁시간 1시간이 학원에서 주어지는 유일한 자유 시간이었는데, 나는 항상 밥을 5분 만에 해치운 뒤 근처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산책을 했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은평구 구산동의 골목. 높은 건물 하나 없이 낮은 빌라들로 가득했고 놀이터에 아이들이 뛰노는 지 해질녘의 산책로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그러다가 인형 뽑기 기계를 보면 잠시 멈춰서 게임을 했다. 오래된 부동산 앞에 놓인 뽑기 기계였는데 생각보다 인형이 잘 뽑혔다. 만원을 모조리 투자해도 인형 한 개를 뱉어주지 않는 오락실의 기계와 달랐다. 포켓몬을 좋아했던지라 파이리, 꼬부기, 이브이, 라프라스 따위를 뽑았는데 크기가 나름 컸던지라 학원에 가져가기 부끄러워 겉옷 안으로 숨겨 가지고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도 그 인형들은 집에 남아있다. 시커먼 어른이 다들 그렇듯, 눈길도 잘 주지 않은 채 방치되어가지만 주변에 어린 아이가 있으면 선물해주기 위해 인형을 찾곤 한다. 그럴 때면 자연스레 산책의 기억이 생각났다. 고래가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고 다시 깊은 바다로 들어가듯, 그때의 나도 아스팔트 골목길에서 산뜻한 숨을 들이 킨 뒤 다시 학원으로 들어갔다.


성적은 생각보다 오르지 않았다. 6월 모의고사도, 9월 모의고사도. 지지부진했다. 나의 1년이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9월 모의고사를 치른 뒤에 알게 됐다. 나는 공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배우고 호기심이 많은 것을, 공부라는 것과 연관시켜 재능이 있지만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내겐 재능도 없었다. 그동안의 삶과 달리, 노력을 했는데 성적이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재능이 바닥을 기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환멸감이 들었다. 자신을 몰아세우며 자책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이런 역경을 극복한 운명적인 순간, 소중한 인연.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나.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고, 일말의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은 공간이 독학재수학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대 인터넷 사교육 업체에서 짜놓은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방법뿐이었다. 실패가 예견되었음에도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박으러 달려가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나는 수능 직전까지도 심란한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수능 전날, 예비 소집을 하는 날. 시험을 볼 학교에 찾아가 주변을 산책하고 정신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시험 준비물을 챙기고 있을때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티브이 화면에는 그때의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린, 천재지변이 송출되고 있었으니까.

 

 

- 3편이자 마지막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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