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2024년의 끝도 가깝다. 1년 전의 일도 왠지 가까운 듯한데 어제는 마치 누군가 부자연스러운 여백이라도 삽입한 것처럼 멀기도 하다. 또 무엇이 내게서 멀어져 있나. 헤아리기에는 벅찬 일이지만 항상 내 그림자처럼 나를 묵묵히 관망하고 있는 존재는 바로 시다.

 

내게 있어서 시와 그 외의 텍스트들을 하나로 범주화하는 것은, 그 둘이 언제나 내 안에서 상치될 수밖에 없음을 고려할 때, 시에게도 나에게도 조금은 부당한 일처럼 여겨진다. 내가 시를 소홀히 대했다고 하기에도 좀 그런 것이, 시도 나를 찾아와주지 않았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이따금 서로를 떠올린 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또 그것대로 다행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모처럼 서재의 시집들이 눈에 띈 김에,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송년회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넋두리를 무슨 일상 속의 소박한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며 시 얘기를 짧게나마 늘어놓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 여기기에 지금부터 올해를 마무리하며 함께 읽으면 좋을 네 편의 시를 소개하고 그에 대한 나의 소략한 단상들을 덧붙이고자 한다.

 

 

3696171601_mF6guyXP_pexels-orlovamaria-4969828_28129.jpg

 

 

 

1. <평화> - 김종삼



 

고아원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선교사가 심었던 수십 년 되는 나무가 많다.

 

아직

허리는 쑤시지 않았다.

 

잘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지만

잠 깨는 아침마다 오늘 아침에도

어린 것들은 행복한 얼굴을 지었다.

 

 

과거에 고아원 봉사활동을 통해 만났던 아이들과, 올해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육봉사를 하며 만났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반드시 웃는다. 고아원에 있어도, 아동센터에 있어도 내가 만난 아이들은 그랬다. 나도 그래야 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하면 평화롭지 않은 세상에서 나 혼자 잠시라도 평화로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직'이라는 미완의, 고독한 단어 뒤에 남겨진 여백을 보자. 아직 평화는 오지 않았다. 나에게도, 세상에게도, 그리고 행복한 얼굴에게도. 평화로운 곳에서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불행한 상황에서도 행복한 얼굴을 지을 수 있는 법이니까. 나와 내가 만났던 아이들은 너무 불행하다고 느껴져서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행복한 얼굴을 짓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마저도 잊은 듯하다. 아이들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시의 얼굴을 잊고 산 세월보다도 길게 다가온다.

 

그 아이들이 '수십 년 되는 나무'가 되어 언젠가 나를 만나게 되면 그땐 허리가 쑤실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제서야 그것을 평화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그때가 되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2. <사랑> -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올해 본 영화 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생각난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을 보며 내가 받았던 인상은 '남자는 한순간의 사랑으로 영원을 다짐하고 여자는 영원과도 같은 사랑 속에서조차 한순간을 본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변치 않는 사랑은 없다고 말하기보다 차라리 불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영원은 고사하고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찰나에도 흔들리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또 왜 하필 어둠에서 불빛인가?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사랑일수록 상대에 대해 알아가기보다는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취향 같은 것에 대해 알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랑을 하며 진정으로 불안한 쪽은 누구인가? 심지어 불안하지 않은 사랑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하지만 영원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밀 아자르(본명은 로맹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의 등장인물인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관계는 사랑이라 부르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랑이었다. 이런 것이 사랑이구나 싶었다가도, 한편으로는 너무 아름다워서 사랑이라 부르기 싫었다. 나는 매년 사랑에 대해 배워간다. 사랑을 무엇이라 정의하겠는가에 대해 예전이라면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가장 먼저 얘기했겠지만, 지금은 <자기 앞의 생>을 말할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사랑을 묻는다면 두 권 모두 읽기를 권유하고 싶을 것 같기도 하다.

 

 

 

3. <백반> - 김소연



 

그 애는

우리, 라는 말을 저 멀리 밀쳐놓았다

죽지 못해 사는 그 애의 하루하루가

죽음을 능가하고 있었다

 

풍경이 되어가는 폭력들 속에서

그 애는 운 좋게 살아남았고

어떻게 미워할 것인가에 골몰해 있었다

그 애는 미워할 힘이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번번이 

질 나쁜 이방인이 되어 함께 밥을 먹었다

그 애는 계란말이를 입안에 가득 넣었다

내가 좋아하는 부추김치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어떤 울먹임이 이젠 전생을 능가해버려요

당신 기침이 당신 몸을 능가하는 것처럼요

 

그랬니......

그랬구나......

 

우리는 무뚝뚝하게 흰밥을 떠

미역국에다 퐁당퐁당 떨어뜨렸다

 

그 애는

두 발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했다

잘못 살아온 날들과 더 잘못 살게 될 날들 사이에서

잠시 죽어 있을 때마다

 

그 애의 숟가락에 생선 살을 올려주며 말했다

우리, 라는 말을 가장 나중에 쓰는 

마지막 사람이 되렴

 

내가 조금씩 그 애를 이해할수록

그 애는 조금씩 망가진다고 했다

기도가 상해버린다고

 

 

올해 나는 처음으로 특정한 단어의 사용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해'라는 단어이자 거대한 블랙홀이다. 이런저런 단어들에 내 생각과 감정을 힘껏 밀어넣어도 이해라는 단어가 문장 속에 삽입되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끝이다. 이런 나의 모습이 마치 일종의 정신병 또는 강박관념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정확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사람과 사물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정신병에 걸렸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등장인물인 이반 카라마조프 덕분이다. 오늘날까지 자신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열을 겨우 견뎌가며 살아온 내가 쉽게 뱉어버린 이해로 인해 희생된 모든 것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나는 앞으로도, 언젠가 생각이 변하기 전까지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

 

또한 지나치게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라고 지칭했던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다. 내년에도 우리일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되는 것은 가장 나중의 일로 미뤄도 좋을 것이다.

 

 

 

4. 기일(忌日) - 강성은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

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

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내다 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

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창밖 가로등 아래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나는 올해를 마무리하며 버려야 할 것이 많지 않다. 내가 버리지 않아도 나를 알아서 떠나간 것들뿐이다. 아니다, 나를 내다 버리고 와준 사람들뿐이다. 당신은 죽지 않았으니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겠다. 다시 만나길 바라는 마음도 없다. 다시 만나게 되면 당신은 정말 이해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창밖 가로등 아래에서 누군가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낸다면 당신으로 생각하겠다. 그뿐이다.

 

 

 

유민.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