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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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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엣과 줄리엣에 등장하는 티볼트와 머큐쇼의 이야기를 새롭게 담아낸 연극 <스타크로스드>가 예스24테이지 3관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2월 10일 막을 연 이 공연은 2025년 3월 2일까지 계속된다.

 


시놉시스

  

"나흘간 일어난 일들을 그대로 되살려 흩어졌던 삶의 조각들을 다시 맞추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베로나 공국. 이곳의 두 가문 몬테규와 캐퓰렛은 서로 반목 중이다. 두 원수 집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담장 넘어 운명적 사랑을 속삭이던 그날, 담장 아래 밀회를 지켜보던 또 다른 두 사람이 있었다.


머큐쇼는 로미오를 쫓고 있던 티볼트의 주의를 돌리고자 그에게 키스하는데...

 

그날, 강렬했던 기억은 두 남자를 운명의 별 앞에 세운다.


 

연기를 해본 적이 있나. 필자는 해본 적 있다.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셰익스피어 햄릿의 한 장면을 각색해 조별로 발표했어야 했는데 난생 처음 해보는 연기에 얼마나 낯이 뜨겁고 귀가 화끈거리던지.


사람들은 온통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낯선 표정으로 익숙치 않은 문장을 내뱉어야 하는 게 곤욕이었다. 다행히 우리 조에서 마지막 장면으로 준비한 유머가 먹혀들어 훈훈한 웃음으로 수업을 끝내고 나왔지만, 그때의 어색함은 아직도 뇌리 한 가운데 박혀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다른 조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큰 관심이 없었거나, 잘 준비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반응해주곤 했다. 연기 수업에서 연기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심지어 교양 수업이라 아무도 서로에게 프로 수준의 연기를 기대하진 않았다. 연기를 해보는 경험과 체험을 하기 위한 시간이지, 연기 실력이 중요한 건 아니었음에도 왜그리 긴장했는지 싶다. 사실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연기 체험의 관객이 되어줄 준비가 돼있었는데.


비슷한 경험을 아마추어나 인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다보면 가끔 하게 된다. 관객들은 별로 아무렇지 않은데 무대에서 지나치게 멋쩍어한다거나 민망해하는 것만큼 공연을 애매하게 만드는 건 별로 없다. 누군가의 앞에 서는 상황에 가장 요구되는 건 뻔뻔함일지도 모르겠다. 원래 그렇다는 듯 이끌어가는 누군가가 있으면 관객들은 의외로 그 리드에 쉽게 이끌린다.


이번에 대학로에서 연극 스타크로스드를 보면서 지난 경험을 떠올린 이유는 공연이 진행된 무대가 생각보다 가까웠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거나 연기를 할 때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관객과 멀지 않은 공간에서 배우들은 연기를 펼쳤다. 자리에서도 몸을 움직이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관객의 웃음소리와 배우들의 숨소리가 그대로 들릴듯한 거리에서 연극이 진행됐다.


처음에는 무대가 가깝고 적나라하게 느껴져 오히려 긴장했는데, 그들은 프로였다. 세 명의 배우가 여러 배역을 바꿔가면서 연기하는데 배역마다 캐릭터가 판이하게 다르고 우스꽝스러운 인물과 진지한 연기가 섞여있었음에도 호흡을 놓치지 않고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화려한 무대나 퍼포먼스보다도 연극의 본질에 가까운 공연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앞에서 배역을 맡아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연기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스토리가 매력있고 배우의 연기가 탄탄하다면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충분한 흡입력과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들의 프로의식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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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새롭게 탄생시킨 이 작품은 몬테규 가문의 머큐쇼와 캐퓰렛 가문의 티볼트가 예상치 못하게 사랑에 빠지는 사건과 그로 인해 파생된 비극을 다룬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서문에 인용해 유명해진 STAT-CROSSED는 ‘엇갈려 떨어지는 별을 함께 본 연인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는 의미로, 비극적 사랑을 담은 이 연극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들이 사랑이 비극적으로 흘러갔던 이유는 서로 원수지간인 가문에 속해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머큐쇼와 티볼트가 둘 다 남자라는 점이 주요하다. 기독교적 가치가 만연한 당대에는 결코 허락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한 키스로 인해 둘은 사랑에 빠져버리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흔들리는 마음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들은 점차 둘을 미궁으로 빠뜨린다. 그리고 완벽한 해결책을 구비했다고 느끼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미끄러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 본성에 대한 충실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배우들의 연기와 스토리, 그 속에 숨어있는 유머와 날카로운 진실들이 비극적 사랑의 탈을 쓰고 관객들 앞에 선다. 다만 퀴어서사다보니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에게는 주의가 필요하다. 남자배우가 살을 맞대고 입맞춤하는 장면하는 장면이 일부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 넘어서면 참신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로 선보이는 훌륭한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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