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떠올리면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 사람 중 한명이었는데. 성인이 되어 그림책을 접하게 된 건 이번 연도 여름이었다. 망원동의 한 독립서점에 방문하여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고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사장님의 특별한 능력을 알게 되었다.
'책방에 오시는 많은 분들께서 자신이 읽었으면 하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요.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제는 손님분의 얼굴 표정과 몇 마디만 나누어도 책이 떠오르더라고요. 책을 보시고 우시는 분들도 많고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말이었다며 감사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사장님과 인터뷰를 마칠 무렵,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다. 사장님 저도 책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말이다. 사장님께서는 ‘사실 들어오실 때부터 생각 난 책이 있어요. 그 책의 주인공과 모습이 닮기도 하고 이야기 하다 보니 하나님의 모습 같아서요.’ 라고 하시면서 망설임 없이 나에게 책을 건네주셨다. 그 책이 다름 아닌 그림책이었던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책이였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결정을 하는 순간은 무한대이다. 하지만 나는 그 결정이라는 과정이 참 어렵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 또한 그랬다. 이리저리 여러 말들에 쉽게 휘둘리고 정작 스스로의 결정이 많이 없었다. 그렇기에 내면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몇 년 만에 접한 그림책은 나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었다.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림이 주는 위로를 처음 느껴본 경험이었다. 이후 나는 그림책에 조금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에 펼쳐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림의 힘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나는 <그림책이 참 좋아> 전시를 보게 되었다.
평소 그림책을 직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이 없다 보니 전시를 통해 새로운 시야에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이 보는 도서류다 보니 작은 요소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그동안 앞만 보며 나아갔던 내가 멈춰서서 과거에 잠시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나의 깊은 마음속에 숨겨져 있었던 ‘순수함’을 비춰볼 수 있었다. 많은 작가님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그 중 나의 마음에 크게 자리잡은 한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오늘도 평화로운 구름 공장의 아침, 직원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기차게 출근을 합니다. 그리고는 늘 하던대로 여기저기로 보낼 구름을 만드는데, 어쩐 일인지 구름 반죽기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반죽기를 이리저리 살피던 직원은 누군가 반죽기와 콘센트를 연결하는 전선을 물어뜯은 흔적을 발견합니다. 조심스레 콘센트가 있는 구석을 들여다보았더니 …. 누군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온 공장을 헤집고 다니는 낯선 손님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어쩌다가 구름 공장으로 흘러들어왔을까요? 무지개 다리를 건너간 반려동물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주는 한편, 이별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 구름 공장(2022), 유지우 작가님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나이기에 더욱 와닿은 그림책이었을 지도 모른다. 반려동물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라고 이야기한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과정을 구름 공장이라고 비유하여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과정을 마냥 슬퍼하기보단 나아가 하늘에서 행복한 구름이 되어 우리를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들게 해준다. 몇십년을 함께 해온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때가 오면 다 커버린 성인들도 마음에 깊은 공허함과 슬픔 등 감정들이 고이게 된다. 이별이라는 것은 누구나 언젠가 겪어야 하는 수순이기에 이별의 연습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은 어떨까. 아직 자신의 감정을 아는 데에 서툴고 이별이라는 것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마음속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시회를 둘러본 후에 판매용으로 진열되어 있던 <구름 공장> 그림책을 펼쳐보았다. 구름 공장의 이야기는 반려동물이 무지개 다리늘 건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더욱 나아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파악하고 어떤 자세로 감정들을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던 그림책이었다. 작가님께서 아이들의 시선에서 그 ‘순수함’을 어떻게 담아낼지에 대해 많은 고민과 고민을 한 끝에 나온 그림책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학교를 들어가고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순수함을 많이 잃어간다. 그만큼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을 겪는 것이기 때문에 마냥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순수함’을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내면 깊숙이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림책은 내가 잊고 있었던 나의 ‘순수함’을 꺼내준다. 자신의 내면을 가꿔나갈 수 있는 수단인 거 같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가꾸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을 모난 부분 없이 부드럽게 다듬어가는 역할을 해준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글로 이루어진 책은 더욱 깊이 있는 통찰과 깨달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따금씩 우리에게 가벼운 생각들도 필요하다.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고 가볍게 마음을 환기시키는 과정 말이다. 나는 이것을 그림책으로 할 수 있었다.
글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림 또한 각자의 시선에서 다른 해석이 따라온다. 나에게 구름 공장에서 구름들이 나의 내면에 감정들을 치유해지는 요소들로 느껴졌다. 반려동물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을 때 슬픔과 공허함, 우울함만이 나를 둘러싸지 않도록, 이별을 조금은 가볍게 흘려보낼 줄도 알아야하는 태도를 알려주는 거 같았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더라도 ‘이별을 마주하는 자세’를 생각해 보는 데에 정말 좋은 책이다. 무엇이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의 마음 상태를 결정한다. 근처 동네의 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 서점 등에 방문하게 된다면 마음이 이끄는 그림책 한 권을 펼쳐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