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재해석한 연극이다. 제목처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는 내용인데, 구체적으로는 대역 배우인 '언더스터디'들이 무대에 서는 날을 기다린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밑에서 돌발상황으로 투입되기만을 기다리는 두 언더스터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러한 세계관 덕분에 현실과 연극 간의 경계도 모호하다. 극은 연극이 시작할 때 나오는 안내방송으로 시작한다. 실제 무대는 무대 밑 공간으로 활용되어 전혀 위화감이 없다.
원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2막의 부조리극이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이지만, 모호하고 비유적인 탓에 난해한 극이기도 하다. 그런 원작을 위트 있고 보다 현실적으로 풀어낸 게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이다. 화려한 연출이나 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두 주연 배우 간의 대사와 연기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끝이 난다.
연극은 관객에게 기다림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들은 인생 전반에 간절히 바라온 순간인 '무대에 서는 순간'만을 위해 매일 지루한 기다림을 견디지만 바라던 순간을 마주하는 일도 확신할 순 없다.
언더스터디 중 선배인 에스터는 늦깎이 후배 밸에게 연기에 관한 '훈수'를 둔다. 연기 방법을 가르치며 강조했던 이야기는, '순간'을 잡아야 한다는 것. 기회는 찰나의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언제나, 우린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고. 에스터의 연기 이론처럼 우리 삶도 어쩌면 순간을 기다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순간을 바라고 기대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기다림이 지속되는 동안, 기다림의 대상이 무엇인지 흐릿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무대조감독인 로라는 구두를 찾으러 언더스터디들이 대기하고 있는 무대 아래로 찾아온다. 그런 로라를 연출로 착각한 주인공들에게 로라는 그들이 간절히 기다렸던 기다림의 대상, 즉 '고도'다. 하지만 이내 로라가 연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심드렁해진다.
기다림의 대상을 정확히 형용할 순 없지만, 우린 늘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렇기에 막상 바라던 것을 쟁취한 순간, 공허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고도'가 이것이 맞을까, 하고 말이다.
극의 중반, 애스터가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 다른 화장실을 찾아 밖으로 나간 밸은 아주 우연한 기회로 소속사 대표를 만나 캐스팅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애스터는 억울하고 분해한다. 자신은 평생을 고대하며 인내해 온 일을, 밸은 그저 '운'으로 획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무리 노력해도 쟁취할 수 없을 것 같던 무언가를, 누군가는 운이 좋아 쉽게 손에 넣기도 한다.
연극의 수많은 대목이 우리 삶과 닮아 있었다. 부조리함을 유쾌한 대사와 연기로 풀어내는 것까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은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런 부조리함과 아이러니마저 진짜 우리네 삶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밸은 애스터의 설득에 못 이겨 캐스팅 제안을 포기하고 언더스터디로 남는다. 둘은 무대 아래에서 누군가 그들을 불러주길 기다리기보다, 무대 아래에서 주체적으로 그동안 수도 없이 홀로 연습했을 공연을 시작한다.
무대도 녹록지 않고, 봐주는 사람 하나 없지만 어쩌면 이게 진정한 해피엔딩일지도 모르겠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을 달성하는, 그들만의 무대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