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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는 한동안 재밌게 보던 미국 드라마 하나를 떠올렸다. <수퍼내추럴>이라는 퇴마 드라마로, 악마와 천사부터 해서 다양한 미신 속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형제는 나름 대를 잇는 전문 퇴마사들이라 이쪽에 도가 튼 친구들인데, 어느 에피소드에서는 그들도 처음 보는 무적의 괴물이 나타난다. 알고 보니 그 괴물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의 말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사람의 말을 모아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고대 마법 주술이 폐가 벽에 새겨져 있었는데, 우연히 그 사진이 장난스러운 괴담과 함께 인터넷에 올라갔다가 소문이 퍼지며 진짜로 괴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의 상상력과 공포가 겹겹이 쌓여 태어난 괴물은 너무나 강해 절대 해치울 수 없을 것만 같은 존재가 된다.


저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 책은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이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책은 유명한 동화와 명작을 파헤치고 뒤집어 놓는다. 워낙 귀에 박히도록 들어 그냥 그렇구나, 납득하기 쉬운 이야기들을 요리조리 들춰보면 재밌는 구석이 많다. 그 ‘재밌는’ 구석 중에는, ‘재밌다’고 하기에는 마음이 무겁고 입안에 씁쓸함이 감도는, 그런 이야기도 많다. 실은 그런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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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흔한 이야기에 의문을 품는 경험도 몇 번 해봤고, 동화의 원래 모습을 찾아본 적도 많다. 그래서 이 책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목차를 한 번 훑어보니 내가 이미 아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책날개의 작가 소개 문구를 보자마자, 내가 거만했고, 내가 이 책에 더 큰 기대를 걸었더라도 실망하지 않았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다른 이야기를 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았던 이유는 단지 재밌어서, 그뿐이었다. 이를 책으로 쓴다면 단지 그것이 사실이고 사실은 밝혀지는 게 맞는 거니까, 그뿐일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쓴 저자는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 썼나 보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알려준다.


제일 재밌게 읽은 것은 영웅을 중심으로 다루는 2부를 여는 로빈 후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 홍길동이 있다면 영국에는 로빈 후드가 있다. 로빈 후드가 어떤 시대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진짜 흥미진진한 것은 그가 어떤 시대배경을 지나칠 때 어떻게 변하는지다. 계속해서 변함에도 로빈 후드는 계속해서 의롭다.


특히 그의 이야기는 최근에 영화 <로빈 후드>(Robin Hood)로도 리메이크되어 생각해 볼 지점이 많다. 최근이라고는 해도 2010년이라 14년 전의 작품이긴 하지만, 민담이 현대에서 재해석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실은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2018년에도 <후드>(원제는 마찬가지로 Robin Hood)라는 영화가 나오긴 했는데 평이 좋지는 않다. 다만 나는 그 액션 씬을 좋아했다.) 로빈 후드는 각 시대가 원하는 의적의 모습에서 태어나고 실제로 살아간다.

 


로빈 후드는 진화한다. 로빈 후드의 적이 진화하는 것처럼, 이 유쾌한 남자가 앞으로 누구의 입장에 서서 어떤 활약을 할지 궁금하지 않은가. 영웅은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서 탄생하지만, 영웅 이야기가 살아남아 활동하는 공간은 후세의 현실 속이니까 말이다. (p.94)
 

 

우리의 시대에서 살아갈 우리의 로빈 후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머지않은 미래에 누군가 또 그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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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한 <수퍼내추럴> 속 괴물과는 어떻게 맞서 싸웠을까? 이미 소문으로 완성된 무적의 괴물인데 여기에 맞서 싸우는 게 가능한 걸까. 이대로 주인공이 쌍으로 죽는 배드엔딩?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우리의 주인공 형제는 다시 소문의 힘을 이용한다. 괴물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역시 그 소문 또한 사실이 된다. 그들은 (긴 과정을 거쳤지만 마지막에는) 쉽게 약점을 잡아 그 괴물을 무찌른다.



그렇다. 세상이 이야기에 반영된다면, 이야기가 다시 세상에 영향을 준다면, 의식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즐김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역사를 더 빨리 바꿀 수 있다. (p.319)
 

 

사람들이 믿는 것이 진실이라는 말은 참 슬프고 잔인하게 들리지만, 가끔은 위안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믿는 것이 진실이라는 말은, 곧 우리가 믿는 것이 진실이라는 말이 되기도 하니까. 물론 사람들은 ‘우리’를 ‘너희를 뺀 우리’로 한정하기를 좋아하기에 이 말이 슬프고 잔인한 말이 되었던 것이지만서도. ‘우리’에 정말 ‘우리 모두’가 들어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진실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니까. 우리는 우리의 의적을 그리며 괴물을 무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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