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에게 필요한 크리스마스 [영화]

글 입력 2024.12.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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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그해 크리스마스에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는>을 보기 전까지 나는 이 영화가 조금 단조롭고 지루할 거라 지레짐작했다. 포스터나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를 통해 여느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떠올렸고, 나도 모르게 고정관념으로 이 영화를 클릭할지 말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끌려 시청하길 몇 분. 생각과 사뭇 다른 지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영화를 계속 이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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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현실적이고 다양한 가족상과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 각자의 크리스마스를 보여주는 <그해 크리스마스에는>는 12월 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영화는 영국의 작은 해안 마을 웰링턴온씨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역사상 최악의 폭설이 쏟아지고 새하얗게 뒤덮인 웰링턴온씨 마을에는 여느 크리스마스 때와 다른 사건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다.


웰링턴온씨 마을에는 서로 친해 매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네 가족이 있다. 어른들은 매년 전통적인 크리스마스를 고집하고, 아이들은 그러한 크리스마스가 딱히 즐겁지 않다. 특히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버나뎃 맥넛은 전통적인 크리스마스를 파괴해 자신들만의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가득하다. 평소처럼 버나뎃에게 아이들을 맡긴 어른들은 페리를 타고 건너 마을로 향한 뒤 즐겁게 논다. 이후 밤이 되고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폭설로 인해 마을로 돌아가는 페리 운행이 중단된 것이다.


한편 웰링턴온씨 마을에는 쌍둥이 샘과 찰리가 있다. 내성적이고 모범적인 모습의 샘과 달리 찰리는 활기찬 말썽쟁이다. 부모와 주변 어른들은 찰리를 골칫거리로 여긴다. 그도 그럴 게 찰리는 옆집 아주머니의 개를 유인해 아주머니를 골탕 먹이고, 폭설로 인해 자유방목이 아닌 철망에 갇힌 채 자란 이렐 농장의 칠면조를 사게 된 부모님 몰래 칠면조를 모두 풀어주는 등의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웰링턴온씨 마을로 전학 온 지 6개월 정도 된 대니 윌리엄스는 내성적이며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다. 바쁜 부모로 인해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대니는 산타와 아빠 중 선택하라 한다면 아빠를 선택하겠다고 할 정도로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하루를 소망한다. 대니가 원하는 건 엄마와 아빠 두 사람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였으나 그조차도 엄마의 병원 업무, 폭설로 인한 아빠의 고립으로 인해 무산되고 만다.


그런 대니가 자꾸 시선을 두는 인물이 있다. 바로 트래퍼 선생님. 엄하고 무서운 트레퍼 선생님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폭설로 인해 휴교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대니가 홀로 학교에 오자 트래퍼 선생님은 그러한 대니와 함께 물리 시간이라며 눈사람을 만들어준다. 이후 대니는 크리스마스에도 홀로 있는 트래퍼 선생님이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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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산타클로스는 오랜 친구인 등대지기 빌이 비추는 불빛을 따라 폭설을 뚫고 웰링턴온씨에 도착한다. 폭설 속에서 산타클로스는 차근차근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일을 잘 해내도 삶은 복잡하다는 거예요. 나의 중요한 밤이 끝나면 삶이 다시 시작되죠. 그걸 해결하는 건 여러분 자신한테 달렸어요." - 산타클로스


이 영화는 산타클로스가 직접 이야기와 인물 간의 갈등에 개입하지 않는다. 나는 이 방식이 마음에 든다. 산타는 그저 선물을 전달할 뿐이다. 선물을 전달받고 그 선물을 어떻게 사용할지, 그다음 삶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각자의 몫이다. 크리스마스 영화에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하루를 통해 인물이 변화할 것이란 예감을 들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산타클로스의 마법 같은 힘이 아닌 스스로 그리고 주변과 함께 일구어낸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커다란 선물 아닐까.


크리스마스 아침, 샘은 쌍둥이이자 말썽쟁이인 찰리가 어떻게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던 건지 의아해한다. 사실 지난 밤 산타클로스는 쌍둥이 중 한 아이만이 착한 아이였기에 그에 따라 한 명에게만 선물을 주게 된다. 하지만 산타클로스는 찰리에게 샘의 선물을 오배송한다. 잠결에 깬 찰리는 자신의 크리스마스 양말에 선물이 가득한 걸 보고 뛸 듯이 기뻐하지만, 샘의 크리스마스 양말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선물이 잘못 배달된 걸 알게 된다. 찰리는 몰래 선물을 샘의 양말 안에 넣는다. 그 행동으로 인해 산타는 다시 돌아가 찰리에게 착한 아이 배지와 함께 선물을 주게 된다. 내성적이지만 영리한 샘은 쌍둥이 찰리를 누구보다 신경 쓴다. 그렇게 샘은 자신의 힘으로 찰리가 벌인 일 모두 샘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을 알게 된다.


대니는 아빠가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오지 못해 엄마와 둘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을 계획이었지만, 엄마조차 병원 일로 출근하게 되어 다투고 만다. 혼자가 된 대니. 앞집 트래퍼 선생님도 혼자인 걸 보고 케이크를 들고 찾아가는데, 트래퍼 선생님은 이를 거절한다. 실망하며 돌아서는 대니를 향해 트래퍼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삶이 늘 쉽진 않아. 그렇지, 윌리엄스? 하지만 내가 짐작하기엔 제일 힘든 건 어머니일 듯하구나." 이처럼 기존의 냉혈한 이미지를 부수듯 트래퍼 선생님은 혼자 있는 아이에게 마음을 쓰는 등 겉보기와 달리 마음이 따뜻한 사람임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고정관념에 맞서는 크리스마스, 움직이는 크리스마스는 '그해 크리스마스'에 일어났다.


"찰리, 그만해!"

 

"아빠나 그만해요! 말썽 부리는 게 아니라 찾으려는 거예요. 찰리 스타일로 상상을 더해 돕는 거라고요. (...) 내 새해 다짐은 더 찰리처럼 되는 거예요. (…) 안 좋은 고정관념 퍼붓기는 그만하고요!"


‘찰리는 말썽쟁이’라는 고정관념은 내성적인 샘의 당찬 목소리에 의해 깨진다. 크리스마스는 전통적이어야 한다는 것 또한 버나뎃을 통해 깨지면서 아이들은 부모가 밤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불안과 공포에 떠는 게 아닌 웃음 가득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나쁜 아이는 언제나 나쁠 거라는 고정관념과 엄한 선생님은 무자비하고 외롭지 않을 거란 고정관념을 깨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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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겨울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결말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영국 런던에서는 크리스마스 수영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이처럼 웰링턴온씨 마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영복을 입고 겨울 바다에 뛰어들어 즐겁게 논다. 그해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웰링턴온씨 마을의 바다가 폭설의 추위에도 얼지 않고 넘실거리는 이유는 파도가 있기 때문일 테다. 움직이는 파도, 멈춰있지 않는 파도. 칠면조는 우리 안에 갇혀 꼼짝없이 서 있었으나 찰리가 칠면조 우리를 부순 덕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칠면조들은 (의도치 않게) 실종된 버나뎃의 어린 동생 이비를 해변 오두막에서 안전하고 따뜻하게 지켜주었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 ‘움직임’이란 차가운 삶을 따스하게 만드는 원동력처럼 보인다.


언제나 세상에는 추운 겨울 바다에도 뛰어드는 이들이 있고 그들의 웃음은 그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거를 답습하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움직이고 나아가며 연대하는 크리스마스임을 안다. 밝은 등대가 밝히는 웰링턴온씨 마을처럼 갑작스러운 폭설이 쏟아진 2024년 12월, 우리의 크리스마스도 멈춰있지 않고 계속해서 넘실거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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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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