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러게, 왤까? - 도서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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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곁에 책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책으로 옮긴 시리즈물이 있는데, 아마 결말이 비극적인 원판을 각색하여 '그렇게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게 마음에 들었었기 때문일 거다. 아름다운 공주와 백마 탄 왕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환상적인 동화는 어린 아이들에게 매력적으로 읽힌다. 그래서 의문을 한 번도 품지 않았었다. 왜, 왕자들은 항상 백마를 타고, 왜 항상 떠돌아다니다가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걸까?
비단 '백마 탄 왕자'뿐만 아니더라도, 생각해보면 '왜?' 라는 궁금증을 동화에는 잘 품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의 왕비는 왜 자신의 외모에 집착하는 걸까? 비단 왕비 개인의 인성 문제로 백설공주를 죽이기에는 '왕비'라는 위치에서 간단히 행할 수 없는 문제이지 않나. 환상의 이야기로 포장해놓은 것들에 대해서 성인이 된 우리는 '왜'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이처럼 동화 속에 숨겨진 역사적 배경을 통해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진행하는 책이다. 물론, 아주 참신한 소재로 시작한 동화책일지언정 그것이 '왜 소재로 떠오르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다양한 동화들을 깊게 파헤친다. <피리부는 사나이>, <빨간 구두>, <드라큘라> 등. 가물가물하게 어릴 적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필자는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동화들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읽어나갔다.
가장 궁금했던 '왜 왕자는 항상 백마를 타고 떠돌아다닐까?' 라는 물음에는 뜻밖에도, 신분에 대한 '거짓말'이 숨겨져있음이 답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읽으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동화 속에 '왕자'라는 '거짓말'이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무리 유럽에 전쟁도 많았고 그 당시에도 순찰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한들 왜 맨날 왕자는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던 것인가, 그러고보니 왜 이 '떠돌이'를 '왕자'라고 계속 생각했던 것일까.
그들은 중세 유럽의 핵심 인물이었던 기사들이었고, 그들이 '기사'임을 증명하고 살아내기 위하여 떠돌았던 것이다. 그들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당연히, 떠돌아다녔던 시절보다 잘 살아내고 싶었기 때문에 '신분상승'을 위해 기사도를 실현시키고, 공주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그럼 '백마'도 거짓말이지 않았을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동화에 대한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가난하고 항상 생존을 위해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후보생과 그들의 몇 안되는 재산 중 하나인 말.
'왕자'에 대한 정체를 시작으로 동화 속 인물들에 대한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백설공주>의 왕비는 정략 결혼이 팽배했던 시절 외롭게 외국으로 결혼을 와서, 사랑받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외모 치장에 집중하였던 걸지도 모른다. 그녀가 사무치는 외로움에 중얼거린 모국어는 외국인들 눈으론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는 주문이라고 들렸을 지도 모른다. 외국인이라서 배척받은 왕비는 그렇게, 심보가 고약한 마녀로 오해받아 배척당했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게르만족과의 대립에서 진 켈트족의 잔재로 겉돌 수밖에 없었던 '빨간' 머리 앤,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 약초를 캐다가 길잃은 헨젤과 그레텔에서 숙식을 제공한 할머니 등, 단순히 '설정'이라고 생각해왔던 동화 속 인물들의 속성이 그들 나름의 비하인드를 가졌음이 서서히 밝혀진 것이다.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읽으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아무리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동화들이라 할 지언정 지금에서도 적용되는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민의 문제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였던 근세 시절에도 분명 존재했던 것이지만 세계화가 된 현대에는 아주 '평범하고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이 가진 모국에 대한 그리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사라지지 않는다. 알 수 없는 향수를 향해 인생의 전반을 통해 찾아가는 것은 동화가 탄생한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살아있음으로써 역사를 만들어가는 우리들 또한 하나의 '동화'를 창조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준다. 몇 백 년 뒤에는 우리가 가진 문화적인 요소(갈등, 전쟁, 화합) 등이 묘하게 매력적인 환상으로 재탄생하여 후손들에게 알려질 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쟁들에 대하여, 꺾이지 않는 의지와 그 잔혹함에 대하여, 어떤 동화로 만들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우리가 무심코 넘어간 문제들에 대하여 '왜?'라는 궁금증을 발생시킴으로써 마치 어릴 적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옛날 우리들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왜?'라는 궁금증을 가졌다. 성인이 된 지금,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는 때가 얼마나 있을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경우가 훨씬 잦지 않은가. 소재도 '동화'인 만큼, 이 책을 읽으며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가 더 깊은 고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윤지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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