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고 낯설게 읽는 법 -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글 입력 2024.12.0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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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작가의 책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가 출판사 바틀비에서 초판 출간 10주년 기념 에디션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다른 이야기 다른 역사 시리즈’ 중 첫번째, 서양사편으로 서양사 심화편인 속편이 이미 출간되었고 또 다른 속편인 동양사편, 한국사편, 여성사편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 책은 서구권의 민담과 신화, 문학 등을 다루며 그 배경이 되거나 그 속에 숨겨진 역사를 통해 원본이 되는 텍스트의 맥락을 추적하며, 그 맥락 속에서 ‘익숙하고 친밀한’ 텍스트의 이면을 드러내 그 텍스트를 ‘낯설게’ 보도록 하기도 한다.

 

 

 

민담, 동화, 신화, 문헌을 통해 그 시대를 읽기


 

이 책은 소설이나 동화, 신화나 민담 같은 광의의 문학을 통해 그 시대 상황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더 깊이 해석하고, 이는 현재의 우리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단순한 청소년 ‘금사빠’ 둘의 사랑이 아니라 교황 세력과 황제 세력이라는 정파적 대립 속에서 봉건적 질서에 대항한 적극적인 자유 의지의 표출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우울한 분위기는 유럽(에스파냐, 포르투갈) 제국주의가 라틴 아메리카를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혼혈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책에서 제시된 이야기의 배경을 아는 것은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이야기’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반추하는 것 역시 중요한데, 책 속에서 언급된 ‘잔 다르크’ 이미지는 역사 속에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위한 상징으로, ‘성녀’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이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현재 공동체의 '집합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를 새롭게 규정하거나 정의하려고 하는 후대의 욕망을 설명해주고, 때로는 한 인물에 대한 각기 다른 이미지들이 경합하기도 한다는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소재다. 왜냐하면 여러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나 문학은 항상 해석자와의 소통 속에서 그 의미가 계속해서 갱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친밀한 이야기 속 숨겨지거나 은폐된 이면들


 

<헨젤과 그레텔> 속 할머니의 외양을 한 마녀의 모습이 ‘마녀사냥’이 성행했던 당시 사회의 반영이라는 것이나, <드라큘라> 속 흡혈귀의 이미지가 서구 근대의 인종적 타자의 특징을 투영한 것이라는 유명한 해석처럼 이 책에서는 여러 텍스트 속 악역이 그 당시 사회적 소수자를 악마화한 것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적 수사는 소수자가 왜 그러한 것인지에 대한 맥락이 결여된 채 혐오의 논리로 유통되기 때문에 늘상 문제적인데, 예를 들어 ‘악역’인 <베니스의 상인> 속 ‘탐욕스러운’ 샤일록 이미지가 그러하듯 부동산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금융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의 상황이나, ‘마녀’로 지목되기 쉬운 이들이 ‘공동체 밖’, 숲 속에서 혼자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누락된 채 그 이미지만 남아 텍스트에 반영된 것이 그러하다.

 

또한 <마지막 수업> 속 프랑스어는 사실 보불전쟁을 비롯한 대립의 역사 속에서 알자스-로렌 지방이 독일 문화와 프랑스 문화가 혼재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식민화된 땅’인 것처럼 그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한 프랑스 내부의 민족주의적 시각이 반영된 소재라는 사실은 기존의 원본 텍스트만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낯선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다. 이처럼 서구 제국주의적 시선을 내재화한 작품이나, 선과 악의 기준이 계급과 젠더의 차원에서 체제순응적인 규범성을 내포한 여러 동화처럼 ‘명작’ 속에 숨어있는 규범적 면모는 항상 후대에게 의심과 심문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텍스트가 등장한 시대적 맥락(context)을 설명한 뒤 그 맥락 속에서 텍스트를 ‘낯설게’ 읽고 해체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현대에서도 계속 다양한 의미를 부여받는 ‘빨간 구두’라는 소재처럼 원본의 위상을 넘어 텍스트를 새롭게 전유하는 현대적인 재해석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텍스트라는 요소 자체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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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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