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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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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다는 욕망, 아직까지도 내게 자주 발현되곤 하는 욕망이다.

 

대학교 2학년 즉흥으로 휴학하고 비행기표를 끊어 영국으로 떠나버린 것도, 돌아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곳저곳 부유한 것도, 가족과 자라온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 결국 실현에 옮긴 것도. 익숙해지는 일에 익숙해지지 못해 결국은 낯섦을 찾아 헤매고 마는 특유의 방랑벽에서 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나처럼 일상을 벗어나 훌쩍 떠나고 싶었던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떠남'과 '남겨짐'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떠난 사람과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한 사람, 남겨진 사람, 그리고 돌아온 사람으로 구분된다.

 

배경은 어촌 마을이다. 마을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어쩌면 가족보다 더 끈끈하게 얽혀 있는 전근대적 공동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용수의 실종 사건에 마을 사람 전체가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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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두가 고기를 잡다 바다에 빠져 죽은 줄만 알았던 용수는 관성적으로 어망을 손보고,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스스로 죽은 것처럼 위장해 아내인 영란의 이름으로 보험금을 타낸 후 영란의 고향인 베트남에서 새 둥지를 트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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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엔 그런 용수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 선장인 영국이다.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도와달라는 용수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한 영국은 용수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을 속이는 연극에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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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사람의 이야기 아래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용수의 실종으로 매일 밤 바닷가에 간이의자를 놓고 앉아 뜬눈을 지새우는 엄마 판례와 용수와의 결혼으로 아무 연고 없는 한국 어촌 마을에 정착하게 된 이방인 영란이다. 용수의 실종은 이들의 시선에서 한국식 '정'이 가득한 줄만 알았던 어촌 사회 민낯을 드러낸다.

  

한국에 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한국에 온 영란은 한국과 본국인 베트남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혼란을 느낀다. 어촌 마을에 2년이나 살았지만 '마을 주민'으로 취급해 주지 않는 이웃들, 더군다나 용수의 실종으로 법적 신분마저 불안정해져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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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영란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판례였다.

 

영란을 특정한 조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한 인격체로 바라봐 준 유일한 사람. 그래서 남편을 잃고 한국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져 버린 영란이 베트남으로 돌아가길 망설인 유일한 이유도 판례였다.

 

영화는 어촌 사회의 비극 속에서도 영란과 판례의 관계, 용수의 진심을 뿌리치지 못해 그와 그의 가족을 돕는 영국을 통해 약자 사이의 강력한 연대를 조명한다.

 

용수의 사망신고 이후 보험금 수령이 가능하게 된 어느 날 밤. 용수는 집을 찾아와 떠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영화는 한 달 후, 용수 실종 이전이었던 영화 초반 장면처럼 동네 사람들과 모여 고스톱을 치는 판례를 보여준다.

 

이 장면이 영화를 본 이후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매일 아침 바다를 벗어나지 못하고 바다 위를 맴도는 갈매기처럼. 아들과 며느리를 먼 타국에 떠나보냈음에도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는 판례, 죽을 순 없으니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와 지독한 싫증을 느꼈던 어업 일을 다시 시작한 형락, 딸을 잃고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저 오늘을 살아내는 영국의 얼굴에 일상을 꾹꾹 버텨내는 많은 얼굴들이 투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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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 언제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내게 따스한 위로가 되어준 '아침바다 갈매기는'.

 

도망친 곳엔 낙원이 없다고들 하지만 삶에서 떠나고 남겨짐을 반복하는 일 자체가 각자의 낙원을 찾아가는 과정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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