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미디어 지리학의 세계 속으로 - 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

지리적 관점으로 바라본 미디어
글 입력 2024.11.2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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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드라마 광팬으로서 하루 종일 드라마만 본 적이 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하루 이틀이면 한 작품을 완결 지을 정도로 푹 빠졌었다. 물론 영화도 틈틈이 감상했다. (반면 요즘은 볼 시간이 없을뿐더러 보고 싶은 콘텐츠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처음부터 시작할 엄두가 안 나서 못 보고 미루고만 있다.)


일상이 드라마와 영화로 가득 찼던 과거의 나에게 우리 동네는 그야말로 덕질의 세상이었다. 자연환경과 트렌디함이 적절히 묻어 나오는 곳으로 알려지며 촬영지로도 많이 찾았던 것이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드라마 촬영 현장을 마주하는 건 흔한 일이었으며, 내가 봤던 그 현장이 ‘선재 업고 튀어’ 촬영이었음을 방송을 통해 알아챈 적도 있다.


동네 주민으로서 우연히 마주한 ‘현실 속 장면’은 수개월이 흘러 ‘미디어 속 장면’으로 맞이하게 되고, 시청자들은 ‘미디어 속 장면’을 계기로 ‘현실 속 장면’을 찾아다니는 흥미로운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일상과 미디어 환경 사이에 시너지가 발생하며 관광 코스로 급부상하는 일은 뭐, 말할 것도 없다.


드라마나 영화가 스크린 화면에서의 방영은 끝났을지라도, 장면의 실제 배경이 인기 장소로 머물러 있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도깨비 촬영지 : 강릉 주문진읍 방파제’,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 군산의 초원 사진관’과 같이 ‘000 촬영지’라는 명칭이 원래의 지명보다 더 고유명사처럼 불리는 현상을 통해 콘텐츠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도 있다.


이처럼 현실과 미디어의 밀접한 관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숨겨진 이야기들을 더 파헤치고 싶은 욕심도 들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수많은 장소 중에서 왜 그곳을 촬영 장소로 택했는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연출된 세트장이고 실제 장소인지. 그렇게 끝없이 생겨나는 궁금증에 해답을 줄 도서 하나를 발견하여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스크린 너머의 공간이야기_앞표지 (1).jpg

 

 

‘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 속의 무심코 지나간 공간이, 어떤 장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지리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호기심을 드러낸 도서이다. 크게 네 파트로 나누어, [part Ⅰ. 미디어 속 공간의 재현 경험], [part Ⅱ. 미디어 공간의 텍스트 생산], [part Ⅲ. 미디어 인지 공간과 지리적 미디어 문해력의 상호작용], [part Ⅳ. 지리학을 통해 본 미디어 속 상징 스팟 : 촬영지가 왜 궁금할까요?]에 대해 세세히 관찰이 가능하다.


이 책은 서두에서 밝힌 드라마, 영화를 향한 나의 팬심과 공간의 호기심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고등학생 때 지리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기에 지식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미디어’와 ‘지리학’. 두 단어를 따로 볼 땐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미디어 지리학’이라는 집합된 단어에서 느껴지는 전문적인 개념 또한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끔 안내해 주었다.

 

 

* 알아두면 좋은 용어들 *

 

ㆍ포지셔널리티(Positionality) : 물리적 공간의 위치나 시대적 위치 등의 다양한 위치성, 소속이나 입장


미디어 재현 : 현실의 공간을 미디어로 담아내는 것


지리적 미디어 리터러시 : 사람들이 지리적 정보와 이를 제공하는 미디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미디어 지리학을 이해하기 위한 용어들을 하나씩 익혀가며, 미디어 속 장소들에 대입하는 과정이 유익하게 다가왔다. 대표적으로 하나의 개념을 소개하자면, 제작자에서 비롯된 포지셔널리티(Positionality)에 대해 정보 전달을 하기 위해 영화 ‘인천상륙작전(1965)’에서 상륙군 관점, ‘월미도(1982)’에서 방어군 관점, ‘인천상륙작전(2016)’에서 첩보부대 관점을 분석하여 이해를 도왔다. 동일한 장소여도 영화 제작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역사적 장소의 미디어 공간에 대해 지식을 얻어 갈 수 있었다.

 

 

대본에서 나열된 드라마 공간들은 등장인물들이 덧입혀져 드라마를 본 관람자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장소로, 여행자들에게는 발길이 닿는 여행지로 손짓한다. 그 길에서 9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고려시대부터 비롯된 인연의 고리와 만난다. <도깨비>가 길로써 실제 세계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시간의 켜가 쌓여 만들어 놓은 통로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다른 타임슬립 드라마나 영화처럼 서로 영향을 주어 과거가 바뀌면 현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과거 기억을 현실에서 치유해 가면서 사람과 신이 만난다는 설정이 인물마다 긴 서사 공간을 갖게 만들어 냈다.

 

p.130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혼합된 시간의 흐름, 도깨비와 저승사자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도깨비’의 흥행을 이끌었다. 우리는 드라마에서 흐르던 시간과 인물의 감정을 현실에서 경험하기 위해, 흔적이 남아있는 현실 속 지도를 찾곤 했다. 저자는 이 드라마의 경로를 ‘시간의 켜가 쌓여 만들어 놓은 통로’라 표현하며 ‘고정된 과거 기억을 현실에서 치유’하는 긴 서사 공간이 ‘도깨비’에 담겼다고 말한다.


반면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주인공 세리가 북한에 불시착하며, 북한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 전개된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접근이 불가한 장소를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구현했을까? 불시착한 DMZ는 제주도 아라동이나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인적이 드문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현실의 불가능을 미디어에서는 가능으로 바꾼 것이다. 이어지는 ‘봉합’에 관한 내용까지 읽는다면, 미지의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역설적으로 지리적 미디어 문해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납득될 것이다.


이처럼 독서를 하다가 글로 만나는 영화와 드라마는 시청 당시의 몰입 경험을 떠올리게 하여 작품성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소개한 두 작품뿐만 아니라 ‘미나리, 도굴, 슬기로운 감빵생활, 오펜하이머, 오징어 게임’ 등 대중적 인기를 얻은 미디어를 예시로 들면서 지리적 미디어를 다각도로 비추었으니, 곳곳에 숨겨진 제목들을 찾는 재미도 느껴보길 바란다.

 

 

음악을 눈으로 보이게 해 주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예상륜과 루사오위의 음악이 연주될 때 상징화되었다. 이야기가 심화되면서 사운드스케이프는 상징화, 배제화, 재구조화 단계를 거치면서 가시화되었다. 영화 속 경관은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행동이 배경에 투사되어 나타난다. 이 경우에는 음악 연습실의 연주과정에서 보이는 사운드스케이프의 물리적인 변화가 감정의 깊이를 증폭시켜 준다.

 

p.179

 

 

장소의 특성을 다룰 때 시각적 분석에만 그치지 않고,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음향적 경관까지 다룬 점도 인상 깊었다. ‘사운드스케이프’란 특정 환경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모여 음향적 경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저자는 스미스(1994)가 설정한 세 단계에 거쳐 미디어 속 상징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상징화 단계’에서는 음악 연습실 속 인물들의 대화가 피아노 배틀로 표현되고, 시간 여행을 한다는 비밀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 간의 ‘배제화 단계’가 반복되었다. 그리고 예술학교 건물에 공사가 진행되며 ‘재구조화 단계’가 들어섰고, 예상륜의 음악이 절정에 이르면서 철거 강도 역시 점점 거세졌다. 흔히 사용하는 기승전결 구조가 아닌, 영화 스토리와 사운드스케이프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에 적합한 구조가 사용되어 색다른 감상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


지금까지 살펴본 스크린 너머의 공간 말고도 아직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넘쳐 나 아쉬운 마음이다. 교양 수업을 듣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 이 도서는, 관심 있는 분야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서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새로운 개념들이 나타나 유익함을 가득 채워 주었다.


크게 분류된 네 가지 파트 속 세분화된 에피소드들을 자신의 몰입 경험을 바탕으로 천천히 흡수해 보길 바란다. 앞서 소개했던 포지셔널리티를 이 도서를 통해 인식하고 이해했다면, 앞으로 접할 미디어에서는 실제로 적용하며 보다 성장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PRESS 명함.jpg

 

 

[김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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