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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졸업, 그 이전에 작은 전시 하나를 앞둔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문화콘텐츠학과'라는 이름에 걸맞게 직접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것이 졸업을 앞둔 나의 마지막 관문이다.


우리가 기획한 프로젝트의 주요 결과물은 영상, 그리고 오디오 콘텐츠이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10분에서 20분 사이의 분량으로 편집한 4개의 에피소드를 유튜브에 올려야 한다. 내가 요즘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이유다.


낮이고 밤이고 영상 편집만 주야장천 하고 있는 요즘, 편집에 대해 내가 생각해 왔던 것들을 조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의 영상 편집 일대기


 

영상 편집을 해본 지는 꽤 오래됐다. 학교에서 방송부를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방송부 아나운서가 되려고 지원해 합격한 이후 교내에 내 목소리로 이런저런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아나운서 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땐 아침 조회를 송출하는 것만이 주 업무였지만, 중학교 방송부 때부터는 해야 하는 일의 가짓수가 늘어났다. 학교 홍보 영상, 방송부 입회 홍보 영상, 축제 영상을 만들어야 했고, 그 외에 미술 과목 과제로 영상 창작이 나오기도 했다.


이때 한창 사용했던 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베가스 프로'라는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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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스 프로 9 (이제는 추억의 편집 툴이 되었다)

 

 

이전 기수의 선배들이 베가스를 인수인계해 주었던 덕에 사용했었는데, 단순한 UI 덕분에 쉽게 적응해 빠른 속도로 영상들을 제작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방송부 때까지도 베가스를 최대한 활용하며 이것저것 많은 영상들을 만들었지만, 고등학교 때 함께 작업하던 친구가 '프리미어 프로'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면서 상호 호환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베가스로 맞이한 첫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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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프로 2024 (이제는 지겹도록 보는 편집 툴이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방송부 활동의 끝 무렵에 프리미어 프로를 조금 맛보게 되었고, 베가스의 익숙한 품에서 벗어나기 싫다고 생각하며 문화콘텐츠학도가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역시 교내 방송국에 관한 정보였다. 우리 학교에는 '교육 방송국'이라는 이름의 언론사가 있었고, 아나운서국에 지원할지 PD국에 지원할지 고민하다 결국 PD국으로 마음을 굳히고 지원해 합격했다.


처음 인수인계를 위해 학교 방송실에 들어갔던 날, 프리미어로 능숙하게 영상 편집을 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던 나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다. '저걸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 속으로 바들거리고 있었다. (베가스가 그리웠다)


그 이후 공모전, 프로젝트, 동아리 활동을 통해 수많은 영상 편집을 경험하며 여러 프로그램에 조금 익숙해졌고, 지금은 영상 편집의 고수.. 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수쯤은 된 것 같다.


 

 

영상 편집을 하고 싶었던 순간


 

영상 편집은 정말 정말 쉽지 않다.


밋밋한 영상을 다채롭게 만들려면 어떤 효과를 더 넣어야 할지 생각해야 하고, 그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다른 프로그램들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자막이 필요한 영상에는 일일이 오디오와 자막을 크로스 체킹하며 오타가 없는지 확인해야 하고, 영상의 템포가 너무 느려질 땐 적절한 편집점을 찾아 잘라내야 하고, 잘 잘라내기 위해서는 프레임 단위로 영상을 확대해 세심하게 잘라내야 하고...


몇 초의 영상을 편집하는 데에도 몇 분, 몇 시간이 들지 알 수 없는 일이라 영상 편집을 할 때면 거의 잠을 안 자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 땐 아침 7시까지 영상을 편집하고 잠깐 잔 뒤에 일어나 등교한 적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영상을 나노 단위로 돌려 보는 것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구부정한 허리와 곧 거북이가 될 것 같은 목, 뻑뻑한 눈 상태는 피곤을 더해주었다.


그래서 영상 편집을 하면서 몇 번이고 드는 생각이 있었다. '편집을 업으로 삼지는 못하겠다.'


웬만하면 내가 해왔던 영상 편집들은 '하고 싶어서'가 아닌 '해야 해서' 한 것들이었고, 편집을 업으로 삼게 되면 그런 걸 매일 해야 하니까 그걸 버틸 자신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스무 살 여름에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이후 전환점이 생겼다.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즐거웠던 순간을 생생하게 남겨보고 싶다는 이유로 시작해 본 촬영이 편집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것이 자의적으로 영상 편집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편집의 미학


 

나는 영상 편집이 '보는 이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 왔다. 길고 긴 여러 편의 영상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도록 하나의 영상으로 잘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시청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한다는 영상 편집의 개념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영상 편집을 할 때 남들에게 내 영상이 어떻게 보일지를 주로 생각하며 작업했었다. 정말 비즈니스적인 마인드였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마감 기한도 없고, 어딘가에 제출해서 평가받아야 하는 것도 아닌 여행 영상을 편집하니 편집이 주는 나름의 즐거움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심 끝에 넣은 효과가 영상과 잘 어울릴 때면 나도 내 영상이 재미있어서 혼자 웃었고, 빨리 영상을 다 완성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완성본을 친구들에게 보여준 뒤 쏟아지는 반응들을 볼 때면 그만큼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소소한 재미를 찾고 난 뒤, 문득 지난날의 영상 편집은 어땠는지 돌이켜 보았다. 중고등학교 때 만들었던 축제 영상들이 먼저 떠올랐다.


전교생이 내가 만든 영상을 보며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기도 하고, 크게 웃어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며 두근거림을 느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당시에는 영상 뒤에 바로 이어지는 축제 무대들을 준비하느라 그런 것들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 느꼈던 두근거림이 뿌듯함에서 온 반사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안다.


아무튼 스무 살에 만든 여행 영상을 기점으로 그 이후의 영상 편집 과정에서는 뿌듯함과 즐거움을 찾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동아리 활동으로 영상을 만들던 때엔 같이 작업하는 동기들과 밤늦게까지 도란도란 편집하던 낭만을, 조별 과제로 영상을 만들어야 할 땐 새로운 편집 기법에 도전하는 의지를 머금은 채로 작업을 이어갔다.


이런 것에 '편집이 주는 미학'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너무 과한가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사소한 요소들이 모일 때 비로소 편집을 즐기면서 할 동기가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편집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써보고 싶었다.


*


아직도 해야 할 편집이 꽤 남아있다. 편집의 즐거움을 찾는다고 해서 과정 자체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피곤하고 힘들긴 하다.

 

그래도 이 편집이 나의 대학 시절 마지막 편집이라는 걸 생각하면 또 거기에서 오는 묘한 뭉클함이 있다. 종강을 앞두고 완성된 영상들을 본다면 지금의 피로는 다 무색하게 느껴지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 또다시 편집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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