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라는 표현은 은둔형 외톨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농담이었지만 툭, "너 히키코모리냐?"같은 말을 들어본 나로서는 이게 (당연히) 긍정적인 표현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여기 자신을 '히키코모리'라 칭하다 "나는 일본인입니다. 그렇지만 루마니아어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설도 씁니다. 정말 악마적으로 멋있지 않습니까?"라는 이야기를 꺼낼 줄 알게 된 사람이 있다. [히키코모리였던 내가 어느새 루마니아어 마스터?!] 같은 만화책 제목으로나 나올 법한 이 상황은 설정이 아니라 한 인물의 실제 경험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언어를 접한다. 꼭 외국인을 만나지 않더라도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언어를 접하곤 한다. 도서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의 저자 사이토 뎃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많고 많은 언어 중 루마니아어라는 희소한 언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경찰, 형용사>라는 영화 한 편이었다. 영화를 보고 언어를 배우기로 결심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 테지만, 그가 영화를 보게 된 계기와 언어를 배우기 위해 보여준 집념만큼은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물 것이라 장담한다.
그에게는 '영화 광인'처럼 영화만 보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기가 바로 저자가 겪은 히키코모리의 정점이었다. 벼랑 끝에 몰린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미친 듯이 영화를 보는 것뿐이었고, 그것이 지금의 '루마니아어를 쓰는 일본인 작가'를 만들어 냈다.
그는 자신을 히키코모리로 인식하던 와중에도 마흔 권 이상의 노트에 자신이 본 영화를 기록했고, 낯선 언어들을 배우기 위해 책을 샀다. 저자의 경험은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의 "뭐든"이라기엔 너무나도 크고 값진 것들이다.
그 누가 영화 제목만 나열해도 책 한 권을 꽉 채울 만큼의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그 누가 이탈리아어 공부를 위한 책을 선뜻 사고, 스페인어를 제2외국어로 고를 수 있을까? 어쩌면 이건 히키코모리의 탈을 쓴 '능력자'의 책이 아닐까 싶은 와중에 저자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책은 나 자신을 위해서 썼지만,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쓰기도 했다. 즉 문학을 좋아해서 문학으로 세계에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약하거나 재력이나 시간이 없어서 일본에서 우물쭈물하며 방에 틀어박힌 녀석을 위한 거다. 외국으로 이주하거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외국어로 소설이나 시를 쓰고 문학을 연구하는 인간과 비교하면 나 같은 건 쓰레기라고 좌절한 당신 말이다. (중략) 그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곳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다.
p. 251~252
뭐라도 하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뭐'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라도'를 강조하는 느낌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40권이 넘는 노트에 영화 비평문을 남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위해 책을 산 것, 스페인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했던 것, 루마니아어를 배웠던 것은 그저 저자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뭐‘든’ 시작하면 된다.
사소한 것이어도 좋으니, 자신의 페이스대로 꾸준히 이어갈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예시로는 하루를 한 줄로 표현하는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매일매일의 하늘을 사진으로 남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흘러가는 대로 살되, 다른 사람들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속도를 지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서히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이 또 다른 'OO 오타쿠'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가보자고"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다양한 상황에서 쓴다. 게임을 하다가 잘 해보지 않은 캐릭터로 플레이하게 되었을 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움직이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카페를 막 찾아 들어갈 때 등… 일단 움직여보자는 뜻이라서 이 책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해보되, "가보자고" 마인드를 함양해 당차고 긍정적으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