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중한 꿈, 그리고 그보다 더 소중한 것 - 트라페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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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을 꿈꾸는 한 고등학생 소녀, ‘아즈마 유우’. 어렸을 적 아즈마는 TV에서 만난 아이돌에 대한 꿈을 갖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도 커가면서 아이돌이란 것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던 것인지, 아이돌이 되기 위한 철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것은 바로 동서남북의 미소녀를 모아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것.
아즈마의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꿈과는 다르게 그로 향하는 발판은 지독하게 계산적이다. ‘별’과 같이 빛나는 아이돌이 되기 위해, 동서남북에서 빛나는 별을 모아 아이돌로 데뷔하겠다는 이 엄청난 컨셉. 미소녀를 모은 이유도 자신의 외모가 조금 부족하다 생각했기에, 솔로로 무대에 올라서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객관적 판단 하에 이루어졌다.
철두철미한 계획대로 아즈마는 자신인 동쪽을 제외한 남쪽, 서쪽, 북쪽의 미소녀를 꽤 쉽게 모은다. 때마침 적절한 봉사활동도 시기에 맞게 할 수 있어쏘, 또 때마침 해당 봉사활동에 방송사 취재가 오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취재를 온 방송사 관계자들의 눈에 들게 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의문이 든다. 아이돌이라 하면 혹독하고 오랜 연습 생활을 거친 후에야 무대에 오르는 것이 기본인데-한국 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인 걸로 알고 있다-, 동서남북은 너무나도 쉽게TV 화면에 몇 번 나온 것만으로(그것도 다큐처럼 넷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지도 않았다) 방송사에 드나들며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다.
아이돌이란 게 이렇게 쉽게 가능한 일이었다고?
하지만 속단하긴 이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이자 진정한 시작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아이돌이란 건 많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할 수 있다고? 이런 멋진 직업 또 없어!"
자신의 꿈을 위해 친구들을 밀어붙이고 있던 아즈마. 말은 그렇게 했으나 아마 아즈마도 조금씩은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분명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음을.
원래부터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싫었던 쿠루미는 결국 패닉이 와버렸고, 미카는 아이돌 활동 이전부터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된다. 란코는 아이돌 활동이 나쁘지 않았지만, 옆에 있는 친구들이 힘들어하고 이 직업이 본래 자신이 꿈꾸던 이상은 아니었기에, 결국 동서남북은 해체하게 된다.
꿈도, 친구도 잃어버린 아즈마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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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는 본인이 꿈꿔왔던 아이돌이란 직업을 위해 친구들을 이용했고, 자신의 가치관-아이돌 활동은 누구나 부러워하고 누구나 꿈꿔하는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어도 강압적으로 시키면 내키지 않는 게 사람이란 생물이다. 하물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자꾸만 프레스가 들어오니 그 중압감은 얼마나 컸을까.
친구들은 더 이상 그 장단을 맞춰주지 않았다. 우애 좋았던 네 명의 사이가 틀어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아즈마가 나머지 세 사람과 틀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도 사람이란 생물이다. 머리가 꽃밭인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주위를 잘 살피고 어른스러운 남쪽의 란코. 좋아하지도 않는 로봇을 좋아한다고 거짓말하면서 자신에게 접근한 아즈마를 이해해준 서쪽의 쿠루미.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을 도와줬던 아즈마를 끝까지 지지해주고 싶었던 북쪽의 미카.
나는 아즈마가 아직 성인이 아닌 어린 나이이고, 친구들을 이용하던 와중에도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너무나도 착한 세 사람이었기에 참회의 눈물과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아즈마를 다시 친구로 받아들여준 것이리라.
영화 <트라페지움>은 인기 걸그룹 노기자카46 1기생 출신인 작가 타카야마 카즈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원작 소설은 출간 3개월 만에 20만 부 돌파, 누계 30만 부를 돌파하며 아마존 오리콘 문학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기도 했다고 한다.
모든 초등학생의 한때 꿈, 아이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지만 나 역시 아이돌을 꿈꿨던 적이 있다. 무대 위에서 좋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팬들의 응원과 환호를 받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고 부러웠다. 하지만 ‘아이돌’이란 노력보단 재능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란 걸 꽤나 늦지 않게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이름으로도 쓰인 ‘트라페지움’은 오리온 성운에 있는 사다리꼴성단(Trapezium Cluster)은 산개 성단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주인공들이 ‘동서남북’ 대신, 네 명이 데뷔하기 전에 같이 여행을 가서 별자리를 보고, 자신들의 그룹을 트라페지움이라 칭하고 데뷔를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딱 하나의 아쉬움이 여기 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동서남북의 네 명은 본인이 원했던 꿈을 찾았다. 쿠루미는 과학자가, 란코는 해외봉사자가, 미카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좋은 가정 주부가, 그리고 아즈마는 그렇게나 꿈에 그리던 아이돌이 되었다. 학창시절 축제 때 타임머신 부스에서 각자가 옷을 입고 찍었던 사진처럼 말이다.
영화 <트라페지움>은 꿈을 이루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누군가 보기엔 조금 유치하고 뻔한 내용을 담은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인생-어느 누군가는 적다 하겠지만-을 살다보니, 소중한 관계가 너무나도 중요하단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이 영화가 생각보다 와닿았다. 대학 시절 그럭저럭이라도 잘 지내던 과 동기들과 지속적으로 연결고리를 맺고 있었다면, 내 세계가 지금보다 조금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항상 있다.
인생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 꿈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도덕적인 것을 떠나- 관계를 해쳐가면서 이뤄야 할 건 없다. 관계의 소중함을 가지고 꿈을 향해 또 다시 도전하여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주인공이 있지 않은가.
사람과의 관계는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자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지금 이어진, 앞으로 만들어갈 관계를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배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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