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케이팝의 한계돌파 - XG와 초국적 케이팝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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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사가 영어로 쓰인 노래는 케이팝이라 할 수 없다”라는 논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한창 케이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시기였고, 음악과 대중문화는 내가 겪은 우리나라 문화의 큰 부분이었기에 그 국적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BTS의 ‘Butter’를 시작으로 영어로만 쓰인 케이팝이 우후죽순 나오던 시점이기도 했다.
지금의 내 관점은 당시의 것과 사뭇 다르다. 국제학을 공부하며 국제사회 안에서 소비되는 케이팝의 다양한 면모를 관찰하고, 음악의 장르를 엄밀히 나눌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조금씩 생각을 바꾸게 됐다. 이에 기반해 최근, XG라는 그룹을 계기로 예전과는 다른 방향의 시야를 정립해 보았다. 케이팝은 이제 하나의 장르라기보단 문화적인 스펙트럼에 가깝다는 게 나의 새로운 시각이다.
이번 글을 통해 전체적으로 케이팝의 확장성을 이야기하려 한다. XG가 어떻게 내 생각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는가에서 시작해 케이팝이 왜 더 이상 한국이라는 국적에 국한될 수 없는지 즉, 케이팝이 어떻게 국적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리는지 살필 것이다. 여기서 논의를 확장해, 리사의 2024 VMA Best K-Pop 부문 수상이 어떻게 케이팝의 경계를 파괴함과 동시에 서양권 중심 팝 산업의 미세 인종차별을 교묘히 강화하는지에 관해서도 논하고 싶다.
자, 이제 XG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XG라는 그룹을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다.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이 한국에서 데뷔한다’라는 소식은 적당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미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있었고, 신보가 나올 때마다 챙겨 듣는 그룹도 여러 개 있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도 ‘와, 그런 그룹을 케이팝 그룹이라고 할 수는 있으려나?’ 정도의 의문은 가졌었다.
이름 모를 아이돌이었던 XG의 음악을 알게 된 건 몇 주 전이다. 에스파의 “아마겟돈” 뮤직비디오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고, SNS에서 “IYKYK” 뮤직비디오 속 인물들이 ‘사이버 요정’ 같다는 시청 후기를 봤고, 호기심에 검색해 본 영상의 첫 장면, 멤버 코코나가 상당히 사이버 요정 같았다. 그렇게 XG의 “IYKYK”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다.
(출처: XG 공식 유튜브, “IYKYK” 뮤직비디오)
결과적으로, 현재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XG의 모든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다. 간단히 감상을 정리하여 한 단어로 XG의 스타일을 논하자면, 이 그룹은 상당히 ‘미래 지향적’이다. 한의원이 등장하는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노래만 들었을 때는 전형적인 미국 힙합 음악을 추구하는 것 같으면서도 뮤직비디오엔 다다미, 부항, 침 등 동양적인 요소가 잔뜩 들어가 있다. 여러모로 신기한 것들의 조합인 이 그룹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아마 나처럼 “이 그룹... 뭐지?”라고 생각할 것 같다.
케이팝이지만 아니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다시, 케이팝이라는 틀로 돌아가서, 그들이 일정한 형식을 갖춘 ‘아이돌’이라는 점을 주목해 보자. XG의 멤버들은 아이돌이 되기 위한 트레이닝을 받았고, 팀 내의 역할을 지정받아 데뷔하여 그룹으로서의 음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돌이면 곧 케이팝 아닌가? 음, 생각해 보면 제이팝 아이돌 또한 같은 절차를 통해 데뷔하잖아? XG의 ‘팝’ 앞에 무엇이 붙을지 고민해 보자.
XG는 1) 한국에서 데뷔하여 활동 중이며, 2) 한국인 메인 감독이 이들의 작품을 감독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제이팝 아이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케이팝이다.
그렇다면 XG는 케이팝 그룹인가? 맞는데, 아니다.
XG는 앞서 언급했듯 a)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b) 한국어 가사 없이 전곡을 영어 가사로 채우는 그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돌 그룹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바로 ‘미래’다. XG의 음악에는 수많은 문화가 융합되어 있다. 주요 활동지인 한국의 다채로운 아이돌 이미지와 구조, 구성원의 출신지인 일본의 문화 상징들, 영어가 대표하는 서구권의 음악성, 과감히 도입한 AI 기술을 한데 섞어 만든 결과물이 XG다. 이러한 수많은 요소를 조합하고 융합하여 탄생한 것이 XG의 음악이고,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사이버 요정들의 “IYKYK”다.
여전히 언어는 음악을 나누는 큰 기준이다. 언어권에 따라 소비층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 제이팝이 아니라고 해서 케이팝인가? 케이팝이 아니면 케이팝인가? 이를 구분 지으려 갈팡질팡하기 전, 언어와 나라의 경계에서 벗어나 음악의 특성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음악 장르의 느슨한 벤 다이어그램
케이팝이라는 게 애초에 무엇인가? 한국의 팝이다. 한국 문화가 해석하고 변형하여 받아들인 팝이 곧 케이팝이다. 그렇다, ‘변형된 팝’. 케이팝의 가장 큰 장점은 ‘해석된 것’이라는 것에 있다. 케이팝이라는 틀 안에서 사실 뚜렷한 장르랄 것은 없다. 계속해서 기존의 음악을 재해석하고 또 변형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들고 오며 발전해 온 것이 케이팝의 역사다.
아이돌의 역사만 따져도 어느덧 명백한 5세대의 시대다. 이미 케이팝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됐고, 다른 문화에서 새로 유입된 문화인 케이팝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변형하는 건 당연하다. XG 또한 그렇게 해석한 케이팝이다. 그렇기에 XG의 음악은 케이팝이고, 제이팝이며, 동시에 글로벌 팝이다.
이렇듯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케이팝을 지향하는 그룹은 생각보다 많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이미 JYP 소속의 NiziU, HYBE LABELS JAPAN의 &TEAM 등 다양한 현지화 케이팝 그룹이 활동하고 있고, 최근엔 하이브 유니버설에서 영미권 멤버들이 주를 이루는 KATSEYE가 데뷔했다. DR 뮤직의 블랙스완과 JYP 소속의 VICH는 한국인 멤버가 한 명도 없는, 전원 외국인 그룹이다.
음악을 전면에서 수행하는 아이돌들 바깥, 케이팝 산업의 다른 종사자들 또한 세계화되고 있다. 팬들에게 애칭이 붙여질 정도로 익숙한 작곡가들부터 신선한 히트곡을 만드는 신인 작곡가들까지, 전 세계의 작곡가들이 케이팝을 작곡한다. 친구가 “스웨덴 작곡가들이 케이팝을 지배한다.”라는 말을 듣고 찾아본 뒤 그 숫자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이제는 수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국적과 문화의 ‘섞임’은 우리에게 케이팝이라는 범주가 견고한 경계의 원이 아닌 느슨한 벤 다이어그램임을 보여준다. 한국인이 없더라도 케이팝일 수 있고, 한국어가 없더라도 케이팝일 수 있는 세상. 어느덧 전 세계로 뻗어나간 케이팝이 가져온 경쾌한 한계 돌파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주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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