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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에 세 과목씩 들어야 한다. 첫 학기에는 필수 과목 중 하나인 인식론을 신청했다. 인식론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입장했고 멘붕 그 자체였다. 내가 아는 바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진리라고 믿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굉장히 철학적인 학문의 수업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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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대뜸 클래스 전체에게 질문하셨다. “Is water wet?”

 

어, 이게 무슨 말이지. 물이 젖었냐니. 물은 젖어있지 그럼. 물이 언제 말라있었나. 머리가 아파졌다. 한 학생이 대답했다. “How do you define water? Is it liquid or solid?” 오, 그렇지. 물이 액체이냐 고체이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지. 또 다른 학생이 말했다. “If you are in water, you are wet.” 오, 이것도 맞겠네. 물 안에 있으면 물에 젖어있는 상태이지. 이 외에도 여러 질의응답이 오갔고 나 역시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그러다 손을 번쩍 들어 대답했다. “From which perspective are you asking this? From our perspective, water could be wet; however, from water’s perspective, we might be the ones who are wet. It depends on how you perceive and interpret it.” 교수님께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관점을 달리 인식해 보는 것을 수업에서 다룰 것이며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들 위주로 해보겠다 하셨다.

 

심장이 두근거려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주제들’과 내가 기대한 바가 좀 달라 어려움이 있었으나 나름 재미있었다. Race, Gender, LGBTQ에 대한 차별 및 선입견 등 사회적인 문제를 자주 언급하셨고 특히 인종차별에 대한 학계 연구와 실험에 대한 예시가 종종 등장했다. 이 글에서도 자세하게 다루면 좋겠으나 민감한 내용을 포함하게 될 수 있어 생략했다.

 

그러다 아무라도 좋으니 한 사람을 정해서 그 사람의 인식론 관점은 무엇일지 자신의 논리로 설명해 보라는 과제를 주셨다. 과제를 듣자마자 한 사람이 떠올랐다. Scott Peck.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난 이 작가를 무척 좋아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그는 자신만의 잣대로 쉽게 평가하지 아니하고 항상 넓게 보려 한다는 것을. 본질을 알고자 하고 지성과 영성을 결합한다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할 자질이라 생각한다. 그의 저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근거로 그의 관점을 서술하기로 했고 기대가 되어 발가락이 꼼지락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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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은 크게 Discipline, Love, and Grace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도입부에서 인생은 고됨을 인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설명한다. 어찌 보면 인생 지침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떤 이유로든 현재 삶이 힘들고 우울하다면 꼭 읽어봤으면 한다. 난 아무 문제 없어 내 인생은 완벽해라고 한다면 더더욱 정신 차리고 읽었으면 한다. 그는 인생은 문제 덩어리들의 연속이고 각 덩어리를 어떻게 해결해 가는가에 대한 Discipline-절제와 훈련과 훈육-이 동반된다고 한다. (한국에서 훈육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원의미를 이 한 단어로 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나열했다)

 

이 작업을 반복할 때마다 아프고 괴롭지만 인생은 원래 고된 것임을 받아들이고 하다 보면 행복이라는 부산물이 저절로 따라온다. Discipline을 행하는 과정을 뒷받침하는 것이 Love이며 사랑은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기에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닌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인간의 원죄이며 이것에는 두려움이란 뿌리가 있다. 인간의 의식으로 우리는 노력하지만 우리 존재의 차원을 넘어선 힘인 Grace 은총이 우리의 정신적,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책을 통해 그의 중심을 이해하면 할수록 아하 하게 된다.

 

그의 인식론적 관점에 대해 constructivism, pragmatism, interpretivism 등 다양하게 접근해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그가 constructivism 구성주의 입장임을 주장하는 과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는 과학적인 방법론으로만 진리를 접근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심리치료 경험과 주변 상호작용을 아울러 총체적으로 해석한다. 또한 각자 문제 덩어리를 해결해 가는 과정 속에서 진리를 찾고 의미를 재해석함을 인정하기에 구성주의의 관점이라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얘기가 더 길어지면 또 다른 과제를 작성하는 꼴이 될 것 같아 손가락을 뗀다.

 

아는 바를 어떻게 아는가, 무엇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이런 질문을 일상에서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너와 나는 어떤 인식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왜 지향하거나 하지 않는가를 토론해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점심 메뉴나 주말 계획을 궁금해하는 것도 좋지만 더 심층적인 대화를 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오니 웃기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고달플 때가 있지만 그래서 참 뻔하고 재미있다.

 

 

*참고도서: Peck, M. S. (1998). The road less traveled: a new psychology of love, traditional values and spiritual growth. Simon and Shuster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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