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책이나 필사, 이론이 아니라 세상에서 직접 발로 뛰고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카페라떼 아이스와 핫 만드는 법의 차이를 명확히 익히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카페라떼, 아이스 카페라떼 주문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 냉정하게 판단해서 어느 순서부터 어떻게 일 처리를 할 것인지에 관해서. 그건 아무리 암기를 해도 이론에 밑줄을 쳐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손에 익힐 수 없다.

 

어제는 브런치 카페 사장님이 일을 할 때 자신에게 냉정하게 판단하고 더 노력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나에게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할지 약간은 걱정된다고 하셨다. 일을 배운 것에 대한 산출물에 잔잔한 오류가 반복돼서 참다못해 말씀하신 것 같았다.

 

나는 조금 황당했다. 그런 얘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 듣는 것 같아서. 왜냐면 사장님이 자주 부재하신 때에 그렇게 만드는 법이 익숙해졌고, 원리는 알지만 그깟 순서가 달라진다고 해서 아메리카노가 다른 음료가 되는 건 아니니까. 빨리 나가야 할 때면 뜨거운 물을 먼저 붓고 에스프레소를 넣었을 때도 있다. 그런데 그 습관대로 만들다 보니 사장님이 딱 선을 그으면서 나에게 "일을 할 때는 일머리가 있어야 한다"라고, 계속 강조되고 반복되는 말씀을 하셨다. 냉랭한 눈빛이 무서웠다.

 

억울한 부분도 있다. 알려주신 건 맞지만 어떻게 바쁜 상황에서 모든 정석과 원칙대로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퇴근 후 곱씹어서 내내 생각해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원칙이 있고, 아무리 작고 세세한 부분에서도 그 원칙과 순서를 다 지킬 수 있다. 그건 숙련도에 해당되는 거다.

 

 

lunch-7807784_1280.jpg

 

 

이 알바를 8월 말부터 했고, 지금 딱 두 달 채이지만 중간에 사장님의 사정으로 가게를 2주 쉬었고, 그래서 4일 근무를 못했고, 내 여행 일정으로 3번을 못 나갔다. 그러니 총 16번 근무 중에 7번 정도를 못 나간 것이니, 사실 두 달 중에 꼬박 집중해서 일한 일수로 따지만 한 달 차인 것이다.

 

이런 세세한 이야기까지 변명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숙련도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라고 했지만 사장님은 사회에 나가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그냥 "네 알겠습니다"를 말하면 된다고 했다.

 

회사생활을 가르쳐주는 유튜버 영상을 찾아보면서 실수를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잘못이든 남의 실수든 일단 누군가가 발견하고 묻거나 지적하면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고. 설령 남의 잘못에 내가 대신 인정한다 해도 결국은 그가 원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질 테니 억울해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잘못을 지적받으면 "네 알겠습니다"를 말하기로 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말대꾸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회에서도 미주알고주알 내 입장을 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 주관과 생각으로 가득 찬 인간이 규칙과 원칙으로 만들어진 사회 구성원이 되려면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제대로 익히고 배우는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사장님은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야 한다고 했는데, 요즘의 내 생각과는 반대되는 내용이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말씀하신지는 알겠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만들기 위해 의식할 것이고, 그렇게 실천하려 시도할 것이다.

 


latte-art-2431161_1280.jpg

 

 

어제 사장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았으면 오늘 알바에서는 제대로 갈렸을 것 같다. 정말 다행히, 어제 사장님께 냉철한 피드백과 원리 원칙을 들은 덕분에 오늘 제대로 일했다. 진짜 벼랑 끝으로 몰린 느낌에서 일을 했다. 알바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내가 근무한 뒤로 9~10월 중 최고 매출이 나왔다. 요새 가게에 손님이 너무 없어서 파리가 날렸는데 오늘은 4시간 내내 땀이 송골송골 맺혀가면서 정말 쉴 틈 없이 일했다. 한껏 솟아오른 매출을 처음 마주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원리와 원칙, 순서를 지켜가면서 카페 음료들을 만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삐딱한 고개로 어떻게 그 분주함 속에 원칙을 다 지키는지를 따지고 싶었지만 오늘의 나는 그것에 완전히 순응하고 실천했다. 어젯밤 잠을 뒤척일 정도로 일 나가는 것에 살짝 긴장 상태였는데,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무의식적으로 고민하다 보니 손님들이 계속 밀려와도 당황하지 않고 어제 배운 대로 응용해서 실수 없이 무사히 모든 메뉴를 내보낼 수 있었다. 퇴근 후 홀로 집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주문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구체적으로 어떤 순서에 따라 일을 할 것인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스스로 메모를 쓰기도 하고, 챗 지피티한테 문제를 내보며 더 효율적인 과정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연습은 오늘 제대로 효과를 내었다.

 

오늘 근무에서 보람찬 바는, 바쁜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것. “맛있게 드셨나요?” 한 마디를 물어본 것, 외국인 손님들에게 “Thanks for waiting”을 연달아 말한 것.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 커플 단체 손님들에게 사진을 찍어준 것. 주문을 받을 때는 서로 언어적 한계 때문에 손님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마지막 가게에 나가면서 웃음으로써 "잘 먹었다"라는 훈훈한 인사를 받은 것. 그러면 나도 또 다시 환한 미소로 응답했던 것.

 

그런 모든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오늘 나는 일을 잘했다'는 결론을 만들어주었다. 사장님도 열심히 일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사장님의 인정보다 먼저 앞서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일의 본질에 다가간 것 같아 뿌듯했다. 바쁜 와중에도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나 자신에게 수고하고, 고생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가게 일은 정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일주일에 딱 주말 두 번만 나가는 일이지만, 그 속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잘 익혀보고 싶다. 일을 잘하는 사람을 넘어서 한 끼 식사를 정성껏 대접하고, 손님들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하는 그런 아르바이트생이 되고 싶다. 아르바이트생의 마인드를 버리고 '내가 사장님이라면 이렇게 할 것 같다'는 식의 생각을 탑재해야겠다.

 

오늘도 실제로 '사장님이라면'이라는 가정법을 머릿속에 되뇌니 일을 할 때도 촉수가 더 예민해졌다. 예전에는 지금 하는 일에만 갇혀서 좁은 시야로만 바라봤다면, 오늘은 양옆 사람들이 지금 어떤 단계에 있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 지까지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장님 말씀처럼 알바나, 사회에서의 일이나 하등 다를 게 없다고 하신 게 진실인 것 같다. 현재 하는 일에 충실하고, 프로페셔널한 것을 넘어서 옆 사람과 현재 내 조직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끊임없이 인식하는 능력이 진정한 사회인으로 가는 길인 것 같다.

 

나는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려고 하는 좋은 습관이 있다. 그런 자원을 잘 활용해서 더 깊이 있는, 그릇이 큰 사회인이 되고 싶다. 작고 사소한 일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제대로 처리하는 주체적인 사람으로 나아가고 싶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