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만들어가는 선율 - 김재원 지휘자
-
오는 11월 1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가 열린다. 지난 6월과 8월에 있었던 앵콜 공연에 이어 파이널로 돌아온 이번 공연은 지난 공연과 마찬가지로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한다. 2020년 창립한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관객과 가까이서 호흡하기 위해 정통 클래식 공연만이 아니라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 <재패니메이션 OST 콘서트> 등으로 전국 곳곳에서 공연을 해 왔다. 다가오는 11월과 12월에 있을 공연으로 요즘도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모든 단원이 공연 준비에 집중하지만, 가장 큰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지휘자일 것이다. WE필하모닉의 김재원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의 이야기다. 2021년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를 계기로 지휘자 데뷔를 한 그는 원래 피아니스트였다. 현재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병행하는 그는, 자신의 독특한 이력에 관해 길에서 살짝 벗어났다고 말하며 웃는다. 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보면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그를 만나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야기와 함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더 나아가 음악가로서의 삶에 관해 들어보았다.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한스 짐머
11월 1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를 앞두고 있는데, 공연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는 꾸준히 해 왔기에, 이번 공연 역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순조롭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은 70~80명이 함께하다 보니 같은 제목의 공연이라도 공연마다 느낌이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저도 늘 다른 기분으로 공연에 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러 번 공연을 하셔서 지금쯤이면 한스 짐머 음악에 익숙해지셨을 것 같은데, 지휘자님한테 한스 짐머는 어떤 음악가인지 들어보고 싶어요.
한스 짐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함께한 작업이 많잖아요. 저는 <인썸니아>나 <메멘토>처럼 놀란 감독의 초창기 작품부터 즐겨 봤기에, 자연스럽게 한스 짐머 음악에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잘 몰랐던 곡을 알게 되기도 했고요. 반대로 잘 아는 곡인데 정작 한스 짐머가 만든 줄은 몰랐던 경우도 있어요. <캐리비안의 해적> 테마곡 같은 거요.
많이 듣다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느껴져요. 일단 한스 짐머가 작곡가로 활동하기 전에 밴드로 먼저 시작해서인지 오케스트라와 밴드가 함께 편성된 구성의 음악이 많아요. 또 듣다 보면 기타와 첼로를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실제로 한스 짐머는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할 때도 많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 실황 영상을 보면 기타 소리가 두드러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보통 오케스트라 구성에는 기타가 없으니까 신선했어요.
생각보다 기타가 굉장히 많이 나와요. 저희 셋리스트 중에는 <인셉션>의 ‘Time’과 <러시>의 ‘Lost but Won’이 기타 소리가 강조되는 곡이죠. 어쿠스틱 악기 소리 사이로 전자기타 소리가 뚫고 나올 때의 임팩트가 확실히 있어요. 최근에는 온전하게 기타 솔로가 들어간 곡이 추가되기도 했죠. <탑건: 매버릭>의 메인 테마인데, 그 곡은 거의 기타 협연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기타 비중이 큽니다.
공연의 셋리스트는 어떻게 정해지는지도 궁금해요.
회사 공연팀이 큰 안을 가져오면 거기서 함께 셋리스트를 정해요. 그러고 나면 편곡자를 섭외해 오케스트라 공연에 맞게 편곡을 합니다. 곡 순서를 정하는 데에는 저도 많이 관여했어요. 관객분들이 한 공연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고 간다는 느낌을 받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선율이 반복되는 <인터스텔라>의 ‘First Step’과 <인셉션>의 ‘Time’은 영화에서 들을 때는 괜찮지만 영화 없이 공연장에서 들으면 조금 지루해질 수 있으니 연달아 배치하지 않아요. <글래디에이터>의 ‘The Battle’이나 <캐리비안의 해적> 메들리처럼 화려한 곡도 가능하면 붙이지 않으려 했죠.
올해 여러 차례 공연을 해 온 입장으로서,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만의 매력을 들려주세요.
보통 영화음악은 어느 한 부분만 익숙하지, 전체를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저희 공연은 영화에서 지나가듯 들었던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 감상하고, 이 곡에 이런 부분도 있었구나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예요. 영화의 OST지만, 영화 없이 라이브 연주로만 들어도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또, 클래식 연주자들이 기반인 저희 팀의 개성을 공연에 반영하고 저희만의 고유한 느낌을 한스 짐머 음악에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오셔서 즐겨주세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무대에 서는 일
지휘자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한스 짐머 곡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한스 짐머 곡은 다 좋아하는데, 그래도 특별히 조금 더 애정이 있는 곡은 <진주만>의 ‘Tennessee’라는 곡이에요. 피아노가 주인공인 낭만적인 곡이라 피아니스트로서 마음이 많이 갑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할 때 제일 재미있는 곡은 <글래디에이터>의 ‘The Battle’이에요. 이 곡이 10분간 쉬지 않고 바쁘게 진행되며 달려나가는 듯한 느낌의 곡이라 연주자 중 한 명이라도 박자를 놓치면 전체가 흔들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공연을 많이 해보지 않은 초반에는 다들 긴장도 많이 했어요. 그만큼 잘 끝마치고 나면 뿌듯한 곡입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지휘자로 무대에 서지만,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에서는 지휘도 하고 피아노도 연주하신다고 들었어요. 똑같이 무대에 서도 피아노를 연주할 때와 지휘할 때의 마음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아무래도 피아노를 연주할 때가 마음은 더 편하죠. 못하든 잘하든 저만의 일이니까요. 지휘는 오케스트라 전체를 이끄는 일이다 보니 확실히 책임감을 더 크게 느껴요. 공연장과 연주자 컨디션에 변수가 많기에 신경 쓸 것도 많고 준비도 잘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에요.
준비하고 신경 쓸 게 많다 보니 힘들지만, 지휘를 할 때면 악기 연주를 할 때는 받을 수 없는 큰 에너지를 받기도 해요. 여러 사람과 함께하며 무언가를 끌어올린다는 감각이 있거든요. 그걸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한 경험입니다.
2021년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에서 지휘자로 데뷔하고 어느덧 4년째 지휘를 하고 계세요. 지휘에 대한 생각도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하면 할수록 공연에서 지휘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고, 지휘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요. 단원 모두가 프로 연주자니까 지휘자인 저는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하죠.
영화음악 콘서트로 예를 든다면, 영화 없이 음악만으로 관객의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아요.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악보를 넘어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그리고 현장에서 여러 변수에 대처하며 음악에 담긴 감정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휘자의 일라고 생각합니다.
피아노 연주와 지휘 두 가지를 함께하는 게 힘들지는 않나요.
가끔은 두 가지를 같이 하면서 둘 다 점점 실력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재미있는 건 두 가지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부분도 있다는 거예요. 피아노를 연주하는 경험이 지휘에 도움이 될 때도 있고,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최근에 제가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본 측근들이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 나서 확실히 뭔가 바뀐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어요.
나만의 음악의 길을 걸으며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만으로도 많이 바쁘실 텐데, 오케스트라 바깥에서도 여러 팀에 소속되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세요. 그렇게 부지런히 지내시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전공하면 걷게 되는 전형적인 코스가 있는데, 저는 대학교 4학년 1학기에 학교 자퇴를 하며 거기서 살짝 벗어난 길을 걸어왔어요.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고 바쁘게 살았던 건 특별한 원동력이 있어서는 아니에요. 돈을 벌기 위해서,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하며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왔죠. 힘들었지만, 그러면서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는 좋은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어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그런 시기에서 조금 벗어난 지금은 책임감이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지휘자의 일만 하는 게 아니고 피아니스트로도 활동을 하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오케스트라의 단원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음악가가 되어야겠다고요. 어디 가서 WE필하모닉 감독인데 연주를 너무 못하더라 소리 들으면 마음이 아프잖아요. (웃음)
앞으로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현재의 단기적인 목표는 순수 클래식과 다른 장르를 오가며 양쪽 모두 잘할 수 있는 단체가 되는 거예요. 어떤 음악이든지 WE필하모닉만의 색깔로 보여드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내년 2월에는 저희의 세 번째 정기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으니, 그 공연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올해의 남은 일정을 알려 주세요.
서울에서의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가 마무리되면 다가오는 11월 24일에는 대구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한스 짐머 공연으로는 처음 방문하는 것이고, ‘2024 월드오케스트라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가는 거라 영광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는 부천, 익산, 부산, 서울 인천, 창원, 대구를 거쳐 12월 15일 고양에서 올해 일정이 마무리됩니다. 17일에는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 등 일본 대표 감독의 애니메이션 OST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재패니메이션 OST 콘서트>가 진행하니 다른 공연들도 기대해 주세요.
오케스트라 공연은 고양이 마지막이지만, 제가 소속된 ‘올 댓 클래즈’라는 팀과 WE필하모닉 타악기 팀인 ‘아우어 퍼커션’이 함께하는 공연이 12월 11일 IBK챔버홀에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공연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 오시는 관객분들에게 지휘자님이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를 오래 해서 그 공연으로 저희를 접한 분들이 많을 텐데,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는 그것과는 또 다른 색깔을 보여드릴 수 있는 공연이에요. 히사이시 조 공연이 서정적이고 따뜻한 곡 위주라면, 한스 짐머 공연에서는 영화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곡, 활기찬 곡이 많아요. 무엇보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일렉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한번 오셔서 꼭 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소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