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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버드>(2018)를 보면서 내가 모든 순간에 최선인 만큼, 다른 사람도 그러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내가 상처를 받았거나, 나와 경쟁 관계에 있을지언정 상대를 탓할 수도, 잘 못 지내기를 바랄 수도, 나쁜 일이 닥치기를 바랄 수도 없어졌다.

 

위 글에도 적었지만 <레이디 버드>를 세 번 정도 돌려 봤을 쯤, 크리스틴(주인공) 뿐만이 아니라, 크리스틴 주위의 다른 캐릭터들의 삶이 보였다. 딸에게 모든 것을 해주고 싶지만 경제적 문제 때문에 그러지 못해 속상한 엄마, 크리스쳔 집안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이 가족에게 상처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크리스틴의 첫 남자친구 대니, 뚱뚱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언제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제인. 크리스틴과 서로 상처를 주며 싸우고 다양한 갈등을 빚고 있지만, 어떤 악의도 없는 사람들. 그레타 거윅은 <프란시스 하>(2014), <작은아씨들>(2020)에서도 '정답'이 없이 다양한 최선의 삶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써낸다.

 

자신의 감정과 표현에 충실한 주인공들도 매력적인 세계를 구축하는데 한 몫을 한다.<레이디버드>의 크리스틴, <작은아씨들>의 조, <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 자신의 마음과 감정이 이끄는 대로 표현하고, 행동하며, 솔직하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와 반작용에 대해서 어떠한 대가가 따르더라도 그 대가조차 진솔하게, 기꺼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관객을 다그치지 않는다. '성공적 삶'의 정론과 규범을 제시하지 않고, 때로는 실패할지언정 그 실패조차 빛나보이게 만드는 서사를 쓴다. 영화의 카메라도 언제나 관조적이고 관찰자적인 자세로, 각 인물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지켜보고 있다.

 

<프란시스 하>에서는 무용수를 꿈꾸며 뉴욕에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27살 프란시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나아가는데, 결국, 그녀는 결국 현실에 타협하여 무용수가 아닌 안무가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주인공이 목표하던 삶을 내려놓고 다른 삶을 선택했다. 어쩌면 새드엔딩처럼 보일 수 있겠다. 누군가는 현실에 굴복한 비굴한 삶이라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안무가가 되고 다소 엉성한 무대를 올렸을 때, 가벼운 표정으로 '실수처럼 보이는게 오히려 좋아'라는 대사를 내뱉는 프란시스를 보면 그 누구도 새드엔딩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거다. 다른 선택을 내린 것이 현실에 굴복하여 실패한 것이 아닌, 잠시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스스로 내리는 최선의 선택이면 그것도 정답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펴낸다.

 

<작은 아씨들>에서도 그렇다. 첫째 딸 메그는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결혼을 선택하는데, 이후 조와 나누는 대화가 흥미롭다. 독립적이고 기존의 규범을 깨고 싶어하는 조는 '언니가 결혼하면, 2년안에 지루해질거야'라며 메그의 결혼을 말리려한다. 이런 조에게 메그는 '나와 너의 꿈이 다르더라도, 그게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라는 말을 한다. 모두가 삶에서 선택하는 최선의 방식은 모두 다르고, 그것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며, 그 과정 자체로 빛나는 세계가 그레타 거윅 감독 작품의 뿌리였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적인 잠재태를 찾아내는 그녀의 작가적 태도가 좋았다. 그렇게 쭉 각본가이자 감독으로서 점점 성장하다가 올해 개봉한 <바비>(2023)로 필모그래피 중 최고의 성과를 거두셨는데, 그녀가 그려낸 <바비>와 켄의 모습이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과연 그레타거윅 감독이 이번 작품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페미니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번 영화를 통해 이끌어내고 싶은 사람들의 행동은 무엇이었나? 페미니즘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주어진 성별을 떠나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떠한 선제적 규정과 프레이밍도 씌워지지 않는 것. 그레타 거윅과 그녀의 여성 캐릭터들 또한, 여성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규정되지 않으려 주체적으로 빛나는 멋진 페미니스트였다.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행동과 선택에 제한을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뿐만 아니라, 권리와 자유를 찾는 길에 피해자가 생기면 안된다.

 

기존의 그레타 거윅의 기조를 떠올렸을 때, 바비 뿐만 아니라 켄이 가지게 될 의미도 기대 했었다. 실제, <바비>의 한국 개봉 전 인터뷰에서는 우리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이며, 우린 우리 자체로 괜찮다는 휴머니즘적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하셔서 '켄'이 그리게 될 입체적인 모습도 굉장히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를 직접 보았을 때는 미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켄은 정말 납작한 캐릭터였다. 특히 영화의 끝자락, 켄에게 빼앗겼던 바비랜드를 되찾고 난 후, 켄들과 나누는 대화 중 '우리도 지방 의원이 될 수 있을까?'라는 켄의 질문에, '그건 어렵겠어'라고 답하는 대통령 바비의 대사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고 느꼈다.

 

바비를 통해 고정관념을 깨겠다는 비유와 기획, 아이디어는 재미있고 공감이 가는데,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누군가에겐 폭력적이다. 과연 <바비>가 그레타 거윅의 작품 세계를 이어가는데 있어서 일관성을 굳히게 해준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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