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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무빙>(박인제, 박윤서, 2023)은 초능력을 숨긴채로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 온 부모들이 함께 일상에 닥치는 거대한 위협에 맞서는 초능력 휴먼 액션 시리즈다. 2015년에 연재되었던 강풀의 웹툰 <무빙>이 원작으로, 웹툰작가가 직접 드라마 대본을 집필했다.<무빙>은 경쟁작이라고 볼 수 있었던 넷플릭스의 <마스크걸>(2023)을 넘어 OTT 종합 화제성 순위 1위를 차지하며, 디즈니 플러스 제작 K 컨텐츠 중 가장 화려한 성과를 기록했다. 드라마는 결국 ‘리얼한 허구’를만드는일이며, 그 허구에 생생하게 몰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시청률은 높아진다. 장주원 역에 분한 배우 류승룡도 <무빙>의 인기요인으로, 현실에 맞닿아 있는 것 같은 '공감가는 이야기’를 꼽았다. 비현실적인 초능력자들의 이야기에 대중은 어떻게 공감하게되었을까.

 

캐릭터는 리얼한 허구 속 으로 대중을 몰입시키는 주요한 장치다. 뿐만 아니라, IP와 킬러 콘텐츠로서 성공적인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팬덤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입체적이고 매력있는 캐릭터가 필수적이다. 초능력을 소구 포인트로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성공했던 대표적인 영화는 미국 할리우드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마녀’, ‘전우치’ 등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은 존재했지만, 10명이 넘는 독자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대규모 히어로물은 없었다. 사실상 국내에서처음 시도 되는 히어로물이었음에도 <무빙>은 각 캐릭터의 탄탄한 서사, 캐릭터 간의 유대관계, 자신의 능력을 숨기며 부정하는애처롭고도 매력있는 캐릭터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는 스토리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무빙>속 캐릭터는 모두 ‘주연’이다. 남한의 초능력자로 과거 안기부의 임무를 수행하는 류승룡 (장주원역), 조인성(김두식역), 한효주(이미현역), 김성균(이재만역)부터 북한의 기력자 박희순(김덕윤역), 양동근(정준화역), 조복래(박찬일역), 초능력자 2세대 고윤정(장희수역), 이정하(김봉석역), 김도훈(이강훈역)까지 합하면, 10명이 넘는 캐릭터가등장한다. 더하여 총 20편 중 초반 7편 가량을 주요 초능력자들의 스토리와 서사, 특징을 설명하는데에 투자하고 있어 초반부가 조금 루즈하게 다가 올 수 있음에도, 7화를 한번에 공개하는 전략을 취해 캐릭터들에 대한 이해도가 끊기지 않도록 했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초능력자 캐릭터들임에도, 그들이 겪는 내적 갈등과 자신 자체로서 생존 하고자 하는 욕망,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목적 의식에 나조차 생생하게 동화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초능력자와 액션느와르라는 비현실적인 요소 속 에서도, 우리는 현실적인 위로를 받는다. 영화와 스토리 속의 나라, 사회, 체계와 인물이 겪는 딜레마까지 실제 우리가 겪는 이야기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두식, 가족에 얽매여 있지만 결국 가족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 될 오감 초능력자 ‘미현’,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사는 무한 재생 초능력자 ‘주원’. 2세대 희수, 봉석, 강훈도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고 컨트롤 하지 못하며 겪는 혼란, 능력을 넘어 자신에 대한 절제와 부정을겪는다. 이들은 초능력을 가졌다는 것 말고는 우리와 같은 불안을 지닌 채로 살아간다.

 

나아가 이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세상도 나라도 아닌, 나의 ‘일상과 가족’이다. ‘마블’을 비롯한 기존의 히어로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였다.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 ‘세상’ 을 구하고 마는 완벽한 슈퍼 히어로. 하지만, <무빙>의 한국형 히어로들은 달랐다. 자신의 초능력으로 타인을 해치는 사회의 ‘괴물’이 되어서라도 지키고싶은 것, 바로 ‘가족’과 ‘일상’이다. 히어로임에도 ‘NTDP(국가재능육성사업, 2세대 초능력자들을 블랙요원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으로부터 자신의 아이와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실적인 면모가 우리를 더 몰입하게 만든다. 무빙은 이렇게 비현실적인 초능력자들을누구보다 현실적인 우리로 만들어냈다.

 

특히, 장르의 변주 덕에 시청 내내 흥미로웠다. OTT 콘텐츠 특성상 시청자는 ‘몰아보기’ 형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무빙>은 몇 주에 걸쳐 공개되는 드라마이기에, 전개가 느리거나 ‘기승전결’의 구조에서 루즈하다는 느낌이 들면 시청자는 이탈할 수 있다. <무빙>은 청춘물에서 로맨스 물로 액션물로 지속적인 장르의 변주를 꾀하며, 시청자를 놓치지 않았다. 초반부는 2세대인 장희수와 김봉석의 성장 서사를 부각하다, 중반부는 부모 세대인 김두식과 이미현의 로맨스로 넘어간다. 이렇게 초반부 청춘과 휴머니즘적 요소들을 부각했다면,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휴머니즘적인 서사는 죽이고, 액션 장르의 비중을 높였다. 특히, 고도의 CG를 필요로 하는 판타지, 할리우드형 액션이 아닌 한국형 느와르를 반영한 액션으로 몰입감을 높였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주가어색하지 않게, 원작에는 없었던 차태현(전계도역)과 류승범(프랭크역)을 등장시켜 액션 장르의 긴장감은 잃지 않도록 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결국 모두 일상으로 돌아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20화 말미, 초능력자들에게 복수를 꿈꾸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비춰진다. 짧게 등장했던 시간 능력자 영탁에 대한 단서도 회수되지 않았기에, 시즌 2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통한 팬덤과 슈퍼 IP로서의 가능성을 확보한 상황에서 시즌 2 <브릿지>에는 해당 캐릭터들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지, ‘강풀 유니버스’는 성사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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