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특한 제목,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시놉시스부터 가사까지 톺아보기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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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제목’이 진입장벽이라는 여러 콘텐츠들이 존재한다. 독특한 제목을 가진 노래, 영화, 연극 혹은 뮤지컬 등이 그 예이다. 그중에서도 뮤지컬 애호가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리고 제목을 들은 후 내용에 의아함을 가졌을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가 8번 째 공연으로 돌아온다.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한국 전쟁을 소재로 다룬 ‘한국 창작극’이 10년 넘게 꾸준히 공연되며 자리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다시금 소재와 제목의 괴리감을 느낄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이 1950년대 한국 전쟁 시기인데 ‘웬 생뚱맞게 여신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또한 자연스럽다. 따라서 이번 글을 통해 어째서 ‘여보셔(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해서 10년 넘게 관객들에게 어떻게 꾸준히 사랑받으며 올라왔는지를 다뤄보려고 한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전쟁'?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국군 대위 한영범은 인민군 이창섭, 류순호, 변주화, 조동현을 포로수용소로 이송하는 특별 임무를 부여받으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시작된다. 그는 부하 신석구와 함께 이송선에 오르지만, 포로들의 폭동과 기상악화로 이송선이 고장이나 여섯 명의 병사들이 무인도에 꼼짝없이 고립되고 만다. 유일하게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순호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을 놓은 상태가 되어 버리고, 병사들은 생존 본능으로 점점 야만적으로 변해간다. 그 상황 속에서 오히려 인질이 된 영범은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악몽에 시달리는 순호에게 여신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고, 순호는 여신님에 빠져 안정을 되찾는다. 남한군, 북한군 할 것 없이 모두 순호를 변화시키기 위해 ‘여신님이 보고 계셔 대작전’을 시작하며 가상의 여신님을 위해 공동의 규칙을 세우며 지내게 된다. (*공식 시놉시스 참고)
무인도에 고립된 여섯 병사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다. 북한군이라고 해서 남한군들과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다. 전쟁으로 인해 하나뿐인 형제를 잃고, 홀로 남을 늙은 어머니와 헤어지고, 사랑스러운 여동생을 두고, 남한으로 피난 간 가족을 그리워하며 전쟁통으로 끌려온 사람들일 뿐이다. 특히 인민군에 징집당한 소년병인 순호는 전쟁 통의 형을 잃은 트라우마로 인해 폭탄 소리, 전쟁포 소리를 들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전쟁통에 놓여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섯 병사들을 보면, 자연스레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전쟁’이라는 명분을 위해 강제로 징집되어 가족과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자신과 같이 소중한 이들과 이별을 겪은 사람들을 공격하고 죽이는 사람들. 그들의 아픔과 고통, 피해는 과연 누가 책임지고 보상해 주는가? 애초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보상이라는 명목하에 둘 수나 있을까?
"미움도 분노도 괴로움도
그녀 숨결에 녹아서 사라질 거야"
그런 그들의 험난한 무인도 생활에 ‘여신님’이 생긴다. 배를 고칠 줄 아는 유일한 사람 순호를 위해 이야기꾼 영범이 만들어낸 이야기 때문에! 순호에 꼼짝 못 하는 다섯 병사들은 순호의 지휘에 따라 무인도 생활 규칙까지 만들어내고, 두 편의 군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함께 ‘우리’로서 생활하게 된다. 첫째, 폭력 금지. 둘째, 모든 것은 똑같이 나눈다. 셋째, 청결을 유지한다. 넷째, 예의 있게 행동한다. 폭력이 당연시되고, 타인의 것을 빼앗으며 야만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전쟁 상황 속, 남한과 북한의 군인들이 서로 지키기엔 다소 위화감이 드는 내용들이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가장 독특한 점은 바로 이 ‘여신님’이라는 소재를 통해 두 군인들의 화합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저 순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여신님을 믿는 척하던 군인들은 점차 자신만의 ‘여신님’을 믿게 된다.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위로와 따스함을 담다
"마음으로 느끼면 돼 운명처럼 너를 찾아온
보이지 않아도 만질 수 없어도
내 안에 숨쉬는 여신님을"
‘신’이라는 존재가 누구에게나 동일한 이미지와 모습, 같은 목소리와 형태로 다가오지 않듯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속 각 병사들에게 ‘여신님’은 같지만 다르다. 누군가에겐 ‘달빛 수놓인 옷을 입은’ 원초적인 모습, 다른 누군가에겐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연인, 친구, 가족 등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군인들은 각자 다른 형태의 여신님에게 위로받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며 무인도에서의 시간을 버텨 나간다.
극을 관람한 후 관객들은 자신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전쟁’, 그리고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고민하고 공감해 볼 수 있게 된다. 지금의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한순간에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전쟁에 참여하고, 가족과 찢어져서 생사를 알 수 없이 지냈다는 점을 극을 통해 상기하며 전쟁의 심각성을 다시금 재고하게 만든다.
극의 묘미를 살리는 ‘연출’
"원하는 것들 다 들어줄게
투정 부려도 다 받아줄게
쓰리고 아픈 기억 내가 다
포근히 감싸 안을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연출이다. 뒤의 스크린을 활용해 무인도의 다양한 배경 및 각자의 사연에 따른 배경을 드러낸다. 개인들의 에피소드 속에 코러스로 참여하는 다른 역할의 배우들의 반응을 보는 깨알 재미도 존재한다. 무대 연출뿐 아니라, 아름다운 가사와 연출이 잘 어우러진다는 점도 인상 깊다.
그중에서도 인민군 주화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넘버인 ‘원, 투, 쓰리, 포’는 운율에 맞춰 한국어의 묘미를 살린 아름다운 가사와 연출이 함께 녹아드는 장면이다. 주화의 에피소드 속 여신님은 바로 주화의 '사랑스러운 여동생'이다. 여신님의 100일 잔치 기념으로 춤을 준비하던 주화는 다섯 병사들에게 안무를 하나씩 가르쳐주며 자연스럽게 여동생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누이 바라기인 주화의 꿈은 평양 예술단 시험에 합격해 누이의 댄스 파트너가 되어 전세계 순회공연을 다니고, 돈을 많이 벌어 여동생의 기생빚을 갚는 일이다. 기생빚을 갚아 동생과 같이 살고, 동생이 마음껏 춤만 출 수 있도록 댄스홀을 짓는 순수한 꿈을 가진 주화는 과거를 회상하며 행복하게 춤을 춘다. 아름다운 가사에 맞춰 우아하게 춤을 추는 군인들과 어우러지는 '원, 투, 쓰리, 포' 장면은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눈물이 많고 마음이 약한, 누이에게 누구보다도 착한 오빠인 주화의 성격은 스토리가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소년병 순호를 소소하게 챙기는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이외에도 극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인 만큼, 무인도에서 식사 준비를 위해 물고기를 잡는 장면에서는 관객석에 들어와 관객들의 팔을 잡아당기는 등 관객을 낚시(?) 하는 유쾌한 장면도 있다. 또한 관객을 향해 ‘여신님’이라고 말할 때면 2층에 앉은 관객들은 마치 극 중 ‘여신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왜 제목이 ‘여신님이 보고계셔’일 수밖에 없을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제목을 듣고 의문을 가지다가도 관람 후 극장을 나서게 되면 결국 이만큼 적합한 제목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지금의 우리도 어쩌면 각자의 ‘여신님’을 마음속에 품고 매일을 견뎌내고 힘을 얻고 있을지도 모른다. 1950년으로부터 70년도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로 지내며 전쟁으로 인한 여러 가지 아픔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저편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극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기를 바란다.
[소인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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