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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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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소개하려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가는 시간은 모두가 하고 있겠지만 그 답을 찾는 여정에 그런 사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죽겠는데 주변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야속하게도 우리는 충분히 골몰하고 끝없이 괴로운 시간을 건너서야 조금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대신 그런 시간을 겪는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어떨까.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동굴 속에서 살아가기


 

영화 속 찬실의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다. 함께 영화를 만들던 지감독이 죽고, 아무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으며, 연애라도 하나 싶었는데 그조차도 아닌 상황이 계속된다. 자신의 의지 없이 갑작스럽게 실직과 생활고에 놓인 찬실은 일단 배우 소피의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그리고 산동네로 이사도 한다.


영화는 찬실이의 거대한 영화 사랑 부정기 같다. 영화에 진작 사활을 걸었지만, 누구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는 상태에서, 나 홀로라도 영화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시간까지 그녀는 충실하게 괴로워한다. 결국 찬실의 방황은 한 가지의 길로 귀결된다. 내가 영화 없이 살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이다.


많이 괴롭다는 건 그만큼 사랑한 마음이 크다는 뜻일 테다. 한글은 가르쳐 드리면서 가까워진 집주인 할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자기 딸도 영화를 좋아했다고 이야기한다. 닫혀있던 딸의 방에서 찬실이는 귀신 장국영을 만난다. 그는 찬실이에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모르는 게 문제라고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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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에 은둔하기


 

그렇다. 사실 찬실이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몰랐다. 영화와 함게하는 사람들이 좋았기에 계속 영화를 하리라 믿었지만, 그 환경이 모두 사라지자 빠르게 추락했다. 영화사 대표는 당신이 없었어도 영화들은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이 모독을 들은 찬실이는 고독함을 여실히 체감한다. 성별, 나이, 경력 다 괜찮다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다. 자신의 이름보다도 먼저 설명되는 꼬리표들이 있음을 실감하며 깊이 아파한다.


찬실이는 소피의 불어 선생님 김영을 만난다. 찬실이 좋아하는 오지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가 영은 조금 지루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찬실이는 열변을 토한다. 그 영화가 얼마나 좋은지 자신도 모르게 그 마음을 털어낸다. 영화를 하지 않으리라고 계속 말해봐도 역시 그녀는 자기 일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임이 드러난다.


영에게 한 사랑 고백이 거절당하고 찬실은 다시 방황한다. 본인이 사랑에라도 기대고 싶었음을 인정하지만 어찌할지 고민 중이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위로를 주는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주인 할머니다. 잔소리하고 불쑥불쑥 나타나던 할머니는 찬실에게 깊은 위로를 준다. “하고 싶은 일을 해, 대신 애써서 해.” 라는 주옥같은 말을 남기기도 하고 꾹 닫아둔 딸의 물건을 쓰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딸의 죽음은 상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그리움과 슬픔을 표출하지 않고 단 한 줄의 시로 보여준다.

 

"사람도 꽃처럼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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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굴 밖으로


 

영화는 구차하지 않다. 소피, 김영, 할머니도, 심지어 귀신 장국영도 말하자면 긴 서사가 있겠지만 굳이 설명하지는 않는다. 찬실이의 전사가 영화 초반부 아주 짧게 서술되는 것도 동일해 보인다. 그리고 분명 찬실에게는 사람이 있다. 영이가 놀란 영화를 좋아해도 소피가 시나리오가 재미없어 못 읽겠다고 해도 그들은 영화라는 길 위에, 삶이라는 하나의 궤도 위에 함께 있다. 그리고 찬실 역시 그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찬실은 영화 말고도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기꺼이 영화를 다시 선택한다. 처음 영화를 하기로 결심하게 한순간을 생각하며 찬실은 드디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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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절박한 마음보다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행복의 파랑새를 찾으러 다니는 여정이 참 감동적이다. 장국영은 찬실이의 영화를 보고 힘껏 박수를 치며 퇴장한다. 찬실이는 이제 영화감독이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를 만들며 살아갈 테다. 찬실이는 정말로 복도 많다.

 

 

 

에디터 노현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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