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래서 나는 다시 일기를 쓰기로 했다 -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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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모르는 것과 ‘확실히’ 모르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두 종류의 ‘무지(無知)’ 중 살아오는 과정에서 나를 더 괴롭게 했던 것은 언제나 후자의 경우에 더 가까웠다.
가령 시험을 볼 때 전혀 정답을 유추하지 못하겠는 문제보다도 더 식은땀이 나는 것은 확신하지 못한 채 적어낸 답이었다. 그냥 막 찍은 숫자가 운 좋게 정답이라면 뜻밖의 행운인 것이고, 설령 틀린다고 해도 어차피 처음부터 오답이라 가정했던 일이기에 별 타격이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좁힐 수 없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 끝에 내린 답이 정답을 빗겨 나가는 것은 분명한 최악의 경우의 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답을 갈구할수록 내 삶은 점점 불확실성의 굴레에 빠지는 중이고, 한 치 앞도 모르겠는 미래가 불안해질 때마다 확신을 줄 수 있는 무언가에 기대고만 싶어진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긴장감을 잠재우기 위해 한두 번 확인했던 운세가 어느덧 매일의 일과가 되어버렸고, 용기를 얻으려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때마침 스스로에게 그럴싸한 변명거리가 되어주는 자기 합리화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운세가 나쁜 경우에는 실망감에 시작도 전부터 기대를 단념해버리고, 운세가 좋은 경우에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등에 업고 노력보다는 은근한 요행만을 바란다. 결과적으로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자 말했던 나의 가치관을 배반하게 된 일이다.
사실은 안다, 자꾸만 외부에서 확신을 찾게 되는 이유가 실은 내면의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어떤 시험이든 두려울 것이 없겠지만, 여전히 내겐 나를 증명하는 일이 어렵기만 하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라는 제목에 사로잡힌 것 역시 최근 내가 어느 때보다도 확신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되려 ‘확실히’ 아는 것들은 적어지는 내게, 누군가의 확신을 빌려서라도 내면의 중심을 바로잡을 수 있는 지침들이 필요했다.
[타임]이 선정한 최고의 TV 쇼로 손꼽히는 <오프라 윈프리 쇼>의 진행자로 25년간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폭넓은 교감을 펼쳐온 ‘오프라 윈프리’는, [타임]이 선정한 ‘20세기의 위대한 인물’이자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이런 오프라의 자전적 에세이를 담은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은, 1998년부터 14년 동안 오프라가 [O 매거진] 연재했던 칼럼들을 엮어서 탄생한 책이다.
기쁨, 회생력, 교감, 감사, 가능성, 경외, 명확함, 힘으로 구성된 챕터들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며 보다 윤택한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자신만의 비법을 담아낸 이 책은, 2014년 출간 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으며 올해 출간 10주년을 맞아 증보판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이번 2024년 증보판에는 새로운 서문과 함께 지난 10년간 오프라가 새롭게 알게 된 ‘마음 씀이라는 키워드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태어난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우리이지만, 확신을 논한다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시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8년 자신이 출연한 영화 <빌러비드>의 홍보차, 지금은 고인이 된 시카고 선타임스지의 영화평론가 ‘진 시스켈’과 인터뷰를 하게 된 오프라는, 생방송 텔레비전 인터뷰 중 진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런데 말이죠, 오프라. 당신이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 순간 제대로 된 답을 떠올리지 못한 오프라 윈프리는 그 후,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한 달에 한 편씩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무려 14년 동안 연재를 이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칼럼들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 되었다.
25년간 토크쇼의 진행자로서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푼, 그 누구보다 아는 것이 많을 듯한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 역시, 확신을 찾기 위한 고찰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이 퍽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런 오프라 윈프리가 발견한 삶의 확신들이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찾을 수 있는 아주 당연한 일상에 놓여있다는 점이 또 다른 안도가 된다. 무엇보다 그 확신들을 발견하는 힘은 그저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보듬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오프라는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최종적으로 닿게 될 종착지가 결국 본연의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진정한 영적 성장이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바꾸는 것보다는 내가 더더욱 나 자신이 되어가는 것에서 온다.
- 7p. 프롤로그, 2024 中
나의 두려움은 주로 나의 통제 외부에 놓인 대상들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곧 불확실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세상 일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오프라 윈프리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찾는 일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은 나의 내면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나를 찾는 이 과정이 아마도 평생의 걸친 과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만하게도 한때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어떤 면에서 호불호가 강한 나의 면모가 나를 설명하는 쉬운 길이 된다고 믿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로 나를 충분히 정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중에 있다.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꽤나 많은 새로운 경험들이 있었고, 그로부터 더 많은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된 나이다. 특히 올해는 내면의 성찰에서 물러나, 가시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외적인 성장에 보다 집중하였다. 그 결과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표현들은 다양해졌지만, 반대로 나를 정의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력서를 작성하거나 면접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나의 캐릭터는 때에 따라 수도 없이 변화해야만 했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가로막히게 됐다. 정말이지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를 잘 모르겠는 상태이다.
나를 찾으려고 노력할수록 내게서 멀어지는 것만 같은 날들을 살던 중, 삶에 확신을 얻기 위해 펼친 책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발견했다. 나의 정체성의 혼란은 결국 불확실한 목표에서 기인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 근본적인 물음을 고민한 적이 없던 것이다.
당신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사람’에 방점을 크게 찍어야 한다. 당신이 내면에 어떤 가치를 미덕으로 품고 있는지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 302p. 마음 씀 中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 내면뿐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내가 누구인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정체성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경험 등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러한 환경이라는 불확실한 변수와 별개로 타고난 성향이라는 주어진 상수 역시 나의 의도가 개입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내 통제 밖에 놓여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확신하기 어렵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야말로 어쩌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나에 대해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을 찾기 위해 다시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나의 하루하루를 다정히 보듬어보는 것에서 출발하여, 나의 삶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그 방향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찾기 위한 여정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세렌디피티’라 칭하는 심오한 우연의 순간을 당신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경탄의 순간’이라 부리길 좋아한다. 나의 정신과 신체와 영혼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면, 모든 것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경험이 계속 일어나 항상 경탄하게 되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아름다운 구절이 이루어진다고나 할까.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당신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줍니다.”
- 197p. 경외 中
[김소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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