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우리의 몸은 여러 요소와 성질들로 응어리져있다. 그중에서도 ‘은유로서의 신체’의 뜻을 필자는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타인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수 없지만 분명히 무언가 상상하고 있다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응어리진 덩어리 속에서 때론 새로운 해답을 찾기도 한다. 2024Sidance(서울세계무용축제) 폐막작으로 가브리엘 피에트로 마룰로의 벌집(HIVE-our hydorological need of cosmic lines) 작품이 공연되었다.

 

처음 <벌집>이라는 작품 제목을 봤을 때, 틀 안에 갇힌 관계속에서의 갈등 상황 혹은 획일화된 일상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 의도에서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그림에 영감을 받은 부분, 가족 개념에 대한 인류학적인 고민 등 ‘벌집’이라는 제목을 정한 이유부터도 범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래 공연에서 몸과 사색적인 차원을 초월하는 작품을 만난 적이 없는데, 이 작품은 무언가 새로운 방식으로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다는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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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본 공연은 무대가 시작되고, 틀을 덮은 천을 가지고 움직임을 시작한다. 파란 천이 처음에는 자연적인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듯 했으나, 안에서 무용수들이 의도적으로 천의 움직임을 생성하고 있었고 이후에는 무용수를 보는 것이 아닌 천이 추는 춤을 보게 될 정도로 믿기 어려운 높이의 위치까지 천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연이 지속됨에 따라, 정육면체에서 8개의 꼭짓점이 정교하고도 온전한 위치에서 도형을 만드는 것처럼 정교하게 어떤 도형의 꼭짓점을 마구 늘리고 줄이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기존의 안정감있는 꼭짓점을 불완전하게 변화시키고, 어두운 무대위 천과 음악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략은 인간관계 속의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인 사이의 경계가 무너짐을 암시한다. 기하학적인 몸과 큐브 프레임의 모습과 시각예술로 보이기까지 하는 천의 움직임으로 무대의 포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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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움직임의 폭풍우가 지나고 난 뒤,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천에서 무용수 5명이 손부터, 발부터, 머리부터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천으로 벌거벗은 몸을 가리고 등장한다. 모든 무용수가 나체로 무대에 섰지만, 앞서 만들어놓은 배경때문인지 이질적이지 않고 오히려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벌거벗은 몸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 이성을 벗어던진 인간 본성의 모습, 아무런 치장 없는 순수한 몸, 날 것의 몸.

 

이번 무대에서 5명의 무용수는 천으로 모두를 엮고, 일렬로 선 모습에서 자신의 손을 앞사람의 등에 두며 서로 떠밀려서 나아가는 동작을 구사한다. 가브리엘 안무가가 사용하는 Somatic 기법은 사람의 몸을 감정과 동일하게 보는 안무법이기도 하다. 무용 치료로도 많이 쓰이고, 소매틱 기법을 하다보면 내면에 집중하게 되어 마치 명상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눈을 감고 몸의 모든 숨어있는 감각들을 보면서 정신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게 객석에서도 느껴진 점이 놀랍다. 에로틱한 몸, 성(性)적인 몸이 아닌 고대 그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미켈란젤로의 시대처럼 느껴졌으며, 당시에 존재했던 성(聖)적인 몸을 바라보게 되었다.

 

무용수들은 무대 위에서 마음껏 뛰어놀기도 하고, 몸과 바닥을 때리기도 하고, 중간에 큐브로 내려오는 불빛은 마치 불을 처음 발견한 프로메테우스 이야기처럼 서로 다투는 장면이 보이기도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한 신으로 설명된다. 선지자(先知者) (미리 아는 자)라는 뜻을 가진 예언자로서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한 세대 앞서는 신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을 위해서 신의 산에 올랐고, 천상의 불을 훔쳐내 인간에게 주었다. 불을 가진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강인해졌으며, 인간의 사랑으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는 금기에 도전한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는다는 신화이다.

 

서양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을 올림포스 신들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 인간은 프로메테우스가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인간을 사랑한 그의 마음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존재하기도 한다. 안무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장면또한 필자는 ‘운명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으로 읽어냈다. 신들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이 서로의 관계속에서 갈등하고 살아가는 것도 신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없이 작아보였음을 은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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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고조될수록 거대한 큐브 프레임은 무대 위에서 이리저리 변화하면서 맨 마지막에 정육각형 전개도 모양으로 펼쳐져 3개의 면이 공중에 매달린다. 또한 무용수들은 무대 앞으로 나와 검은 천 밑에 숨겨진 형형색색의 천들을 집고 그 천을 꺼내며 무대는 마무리된다. 천의 색깔은 모두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그림에서 가져온 것이며, 공중에 매달린 프레임은 수직적인 배경을 형성하면서 마치 하나의 조각품 같은 무대 위 모습을 연출한다는 점이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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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피에트로 마룰로의 <벌집>은 인류학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가족’의 개념을 공동체로, 공동체에서 인간으로 나아가며 인간의 정신과 집단의 관계를 벌집이라는 배경 속에서 풀어내었다. 무대 위 거대한 큐빅 프레임은 하나의 우주가 되어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틀이 되었고, 천으로 가려져있던 틀에서 날것의 틀, 그리고 완전한 모습에서 해체되는 모습까지 일련의 구조들로 보여주면서 무대 위의 정신적인 것들을 하나로 모아두는 역할을 하였다.

 

형의상학적인 시선에서 몸을 본다면, 정신과 분리된 몸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지각한다는 개념에서 몸을 봤을 때 몸과 정신은 일체화될 수 있다. 무용은 몸으로 하는 예술이지만 기존의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어떤 인간의 현상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과 신체의 관계, 그리고 내면과 외부의 관계, 무대 위 사람들과의 관계, 관객과의 관계. 무대가 이뤄지는 시간 동안 발생하는 수만개의 관계들을 묶어내며 완전한 도형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아직도 우리는 몸을 쓰면서도 우리의 몸에 대해 모르고 있지만, 눈을 감고 몸의 굳어있는 감각을 깨우며 잠시동안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추가적으로 가브리엘 안무가의 움직임 워크숍을 참여했던 후기를 남기자면, 그의 안무 기법은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현실 속 손에는 공이 없지만 상상으로 만든 공이 손 위에서 노는 것처럼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정신으로 만든 환상 속에서 움직이는 몸은 마치 정신의 흐름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의 모든 작품이 ‘은유로서의 신체’를 주장하는 이유또한 인간의 감정과 살아온 경험, 정신과 육체로 응어리진 몸을 하나의 갈래로 풀어내고 싶음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몸은 생각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방법 중 무용이 있다. 몸을 움직이며 현재를 느끼고, 무한한 우주를 느끼고, 상상하는 그대로 우리의 몸은 움직여질 수 있다는 것, 상상하고 느끼는 대로 우리는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걸. 안무가는 정해진 답이 아닌,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무언가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제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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