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시대의 반항아 (2)

글 입력 2024.09.2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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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Yang EJ (양이제)]

 

 

찰스 부코스키 <우체국>의 '헨리 치나스키'는 이와 다릅니다. 허먼 멜빌의 바틀비가 마치 '유령 같은' 사내였다면, <우체국>의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는 행동이 많고, 과격합니다. 그는 정면으로 상대를 비난합니다. 때로는 남을 폭행합니다. 치나스키는 자신의 욕구, 특히 성욕에 무척이나 충실하며 소설은 그런 그의 욕구를 서술하는 데 거침없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은 서술자 치나스키에 의해 성적으로 대상화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치나스키는 직접 여성을 희롱하거나 뒤를 밟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오늘 글에서 다룰 주제는 치나스키의 범죄 행위나 성욕이 아닙니다. 그에 비견하는 다른 욕구입니다. 매슬로의 이론을 빌려 이를 '안전의 욕구'라 부르겠습니다.

 

치나스키는 보통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재정의 안정을 추구합니다. 소설은 임시 우편 배달부로 우연히 일하게 된 치나스키의 크리스마스로 운을 뗍니다. 이후, 치나스키는 시험에 통과해 보결 집배원으로서 일하게 되는데요. 소설은 치나스키가 보결 집배원에서 정규 집배원으로, 집배원을 사직하고 다시 우편 사무원으로서 우체국으로 되돌아가고 그만두는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그의 일대기 속 묘사되는 우체국의 부당한 처사, 주변 인물의 슬픔과 그를 향한 치나스키의 연민을 통해 체제 아래의 삶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틈에서 저항하는 치나스키를 발견합니다.

 

치나스키의 저항을 설명하기 이전에, 치나스키가 <우체국>에서 겪는 부조리함을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필경사 바틀비> 속 바틀비의 저항은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행동입니다. 비록, 변호사는 바틀비의 저항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이는 바틀비가 의도한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치나스키의 행동은 상대를 정확히 지목하고 있습니다. 또한,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사건도 특정되어 있습니다. 치나스키가 저항한 우체국의 방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씨, 현장에 상관없이 반드시 집배 순로(40~50개)를 정각 안에 모두 소화할 것

-어떤 돌발 상황이 있더라도 자신의 분류함을 벗어나지 말 것

-분류함 위에 모자를 두지 말 것

-어떠한 연장 근무가 있더라도 직원은 자리를 10분 이상 비우지 말 것

-우편물 트레이 분류 작업은 어떤 양이든 '항상' 23분 안에 끝낼 것

 

치나스키는 오크포드 우체국에서 상사 '존스톤'과 함께 보결 집배원으로서 일하게 됩니다. 정규 집배원과 달리 보결 집배원은 매번 담당하는 순로가 다릅니다. 순로가 생소하니 우편물을 배달하는데 정규 집배원보다 더 많은 수고가 들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한 사람에게 배정된 집배 순로는 너무 많습니다. 존스톤은 매번 집배 순로를 30분 늦게 알려주지만, 집배원이 우체국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늘 예외 없이 정각이어야 합니다. 집배원들은 업무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점심을 먹을 새도 없이 바쁘게 우편물을 배달합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넘긴다면, 상사 존스톤에게 경고장을 받아야 했습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치나스키는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우정 사업 본부에 이 사실을 전달했으나, 존스톤과 친분이 있는 담당원은 이를 반려했습니다. 이후, 치나스키는 일부러 험난한 순로에 배치되거나 혹은 무급으로 일주일을 강제로 쉬게 되는 등 존스톤에게 보복을 당합니다.

 

하루는 함께 일하는 동료 조지 그린(별명 G.G.)에게 일이 생겼습니다. G.G.는 약 40년간 집배원으로 일했습니다. 아침 발송에 늦는 일 없이 수십 년간 부지런히 일했던 그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분류 작업이 급속하게 느려졌습니다. 치나스키는 G.G.가 발송에 늦을 걸 염려해 그를 도왔으나, 존스톤은 마감 직전 그들에게 추가로 잡지를 분류할 것을 지시합니다. G.G.는 완전히 넋을 놓아버립니다. 이윽고 그는 탈의실로 올라가 펑펑 울기 시작했고, 치나스키는 상사인 존스톤에게 이를 알려 도움을 요청했으나 존스톤은 G.G.의 빈자리를 메꿀 대체 인력을 찾을 뿐입니다. 추가 근무를 감수하면서까지 동료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치나스키의 요청은 기각되었고, 존스톤은 그에게 자기 분류함을 지킬 것을 명령했습니다.

 

치나스키는 우체국 시스템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상사, 현장 주임, 노조 대리인, 본부 등을 직접 찾아가 저항합니다. 본부에게 보고서를 작성한 일, 고정된 업무 스케줄 외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일, 계속된 존스톤의 경고장을 눈앞에서 직접 쓰레기통에 처박는 일 등 저항을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의 저항에도 우체국이 여전히 견고하다면, 기꺼이 일을 그만두기까지 합니다. 결국 치나스키는 돈을 위해 우편 사무원으로서 다시 복귀하나, 여기서도 그의 저항은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트레이에 똑같이 요구되는 제한 시간 '23분'은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지시 사항입니다. 치나스키는 28분 동안 우편물을 분류합니다. 상담에서 그는 트레이 하나당 소요 시간을 보지 말고, 하룻밤의 작업량으로 평가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우체국에 급수대가 철거되자 노조 대리인에게 이를 조사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치나스키는 시스템 내에 계속해서 버틸지언정, 의문을 표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바틀비는 '하지 않음'으로써 저항하고, 치나스키는 '시정 요구', '대안 제시', '거부', '건의' 등을 통해 시스템의 수정을 시도합니다. 바틀비가 일을 하지 않아 해고되었다면, 치나스키는 직접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공통점은 바틀비와 치나스키 모두 일을 하지 않을 삶을 선택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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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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