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

그간의 글들중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은 글들을 모았습니다.
글 입력 2024.09.2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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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에 천천히 거니는, 나의 산책채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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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1727

 

이유운 시인의 산문집 <산책채집>을 읽고 쓴 글이다. 너무 많이 말해오고 써와서 이젠 지겨울 수 있겠으나, 나는 이유운 시인의 글을 읽으면 꼭 내 삶을 미리 훔쳐본 기분을 느낀다. 나와 비슷한 온도에 비슷한 질감으로 세상을 읽고 더듬는 사람이 글까지 잘 쓴다면 이런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거라고 여긴다.


내 세계라고 표상되는 어떤 무형적 부위에는 그 속에서 부유하는 것도 있고 자기들끼리 엉겨 덩어리진 것들도 있다. 그것들을 한 번 체에 건져 올린다. 그렇게 한 번 정제의 과정을 거치면 그것이 내 관념이 되는데,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고 세상에게 발현된 이유운 시인의 것이 나의 것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산책채집>을 통해 내가 주목하게 된 키워드는 ‘일상’과 ‘세계’이다. 일상이 주는 무료한 안정감, 나는 줄곧 그걸 쫓아 살아왔는데 그걸 내던져 버리고 싶었던 사람도 있단다. 역시 나와 비슷하다고 나와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게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나와 이유운 시인을 구별 짓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인 ‘일상’에 대한 나의 태도에 집중했다. 본 글에서도 언급하지만, 내게 나의 일상은 그동안의 내가 살아남은 결괏값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중 어찌저찌 반듯하게 땅에 발 붙이고 서게 된 내가 모여있다. 그래서 그걸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고 여겼다. 이만큼 나에게 안락함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장소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학연수 중 광장 변두리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백발의 노인을 보고 생각했다. 어쩌면 일상이 가진 지루한 견고함은, 수없이 태어날 낯선 나를 위한 든든한 집 정도일지도 모르겠다고. 늘 그 안에서만 콕 박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냐고 말이다.


두 번째로 수많은 ‘세계’, 그중에서도 나의 내부를 표류하는 이 마음을 나만의 세계라고 명명한다면, 나의 세계는 어떤 형성 과정을 거치는가에 대해 골몰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을 쓰는 건, 내 마음에 널브러져 있던 여러 관념들을 정갈하게 고이 접어 전시하는 일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내 마음속 관념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내 세계,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세계를 어떻게 만들었고 그 주체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의 세계는 나의 오롯한 힘만으로 만들어진 적이 없다. 내 세계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졌다. 여러 형태로 사랑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내 세계에 제 삶의 일부를 조금씩 떼어 붙여준다. 그럼 난 그걸 서툴게 바느질하여 내 세계에 기우고 내 모습으로 만들었다. 가령 사람의 장점을 먼저 볼 줄 아는 점은 6학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재주가 미워지기 시작한 것은 내게 눈빛으로 편지를 적던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진정한 믹스 타임, 포스트 말론의 F-1 Tr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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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1545

 

다양한 음악 장르 중에서 더 아픈 손가락 꼽듯 하나를 꼽는다면 그건 당연히 힙합이다. 하지만 음악 장르를 크게 가리지 않고 두루 좋아하는 편이라, 힙합 장르를 베이스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들을 좋아한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왜 장르 안에 아티스트를 귀속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문화는 결국 사람들이 살아왔기 때문에 만들어진 생활 양상이므로 절대 사람 앞에 설 수 없다. 수많은 세대가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사람에 의해 유체처럼 다양하게 변모한다. 그래서 장르 안에 아티스트 있다는 말에 잘 동의하지 않는다. 장르는 개인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런 관점에서 포스트 말론과 저스디스를 좋아한다. 둘 다 정통적인 힙합 씬의 관점에서도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포스트 말론은 특유의 멜로디 라인 구성 능력이 있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며, 저스디스는 깊은 함의를 가진 가사를 잘 쓰고 그 전달력이 뛰어난 아티스트다. 작년부터 저스디스의 새로운 앨범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포스트 말론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


나는 가사를 살펴보며 좋은 음악을 고르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이번 포스트 말론의 ‘F-1 Trillion’ 앨범 역시 가사에 집중하여 청음했다. 포스트 말론의 팬이라면 알겠지만 포스트 말론은 ‘다양한 장르를 사랑함’이라는 이유로 여러 아쉬운 소리를 듣기도 했고, 그 스스로가 느끼는 업계에 대한 환멸로 여러 해 동안 지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이번 ‘F-1 Trillion’ 앨범에서는 추락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말하고, 그동안 하나가 다 채워진 사랑을 해보지 못했음을 후회하기도 하다가 막 태어난 딸의 미래 남편에게 편지를 쓴다. 왜 나에게만 시련이 이렇게 큰지 한탄하고, 난 곧 떠날 사람이니까 깊이 사랑하지 말자던, 내가 왜 충분히 강한 사람이 아니냐며 신을 탓하던 사람이 변한 것이다.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점점 건강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 난 넘어졌던 사람들이 용감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방법으로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니까. 근래 인터뷰에서는 더 활짝 웃고 단단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하는 포스트 말론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로부터 느껴왔던 안도감을 섞어, 그가 어떻게 ‘F-1 Trillion’이라는 컨트리 장르의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는지 그 서사를 톺아보고자 했다.

 

 

 

[I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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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1430

 

‘I’라는 이니셜이 이름에 들어가는 친구에게 적은 편지다. 보통 편지라는 것은 어떤 한 사람을 위한 오롯한 글인데, 이 글은 단 한 사람은 절대 보지 못했으면 싶은 글이다. 못된 욕심이라는 걸 알지만.


몇 지인들은 이 글의 초고를 보고 너무 절절한 연애편지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건 성애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도 친했던 친구와의 우정을, 내 손으로 어그러뜨린 것에 대해 후회하는 글이다. 일종의 사랑이라고는 볼 수 있겠다. 그 친구와 가까이 지낼 때는 진심으로 살지 않았다. 보이는 것, 말해지는 것, 느껴지는 것에 집착하고 살았다. 당시의 나는 매우 불안정한 사람이었으므로 이상한 부분에 집요한 강박이 있었고, 그 강박은 나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표상되는 모습은 너무나도 멀쩡한 나에게 알맹이는 없었다.


모두가 그런 나를 은근하게 어렵고 불편해했는데, 그 애는 나의 그 점을 잘 도닥거려 주었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나와 똑같은 허점을 가져도 그걸 소중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쫓아내기에 바빴는데, 그 애는 그걸 어르고 달래서 꼭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그런 부분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초라해짐은 어쩔 수가 없어 오히려 목이 빳빳하게 굳었다. 부러움과 애정 그리고 미묘한 질투와 자격지심에서 이상한 향이 났다.


그러다 한 번 그 친구에게 실수했다. 그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사달을 냈다. 자세한 경위는 적지 못하나 그 애는 자기를 겨우 그 정도로 보냐며, 우리가 쌓아온 시간이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니 자기도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를 떠났다. 원래도 다른 지역에 살아 우편으로 종이 편지를 주고받는 게 몇 년 동안 우리의 주 소통 수단이었는데, 그 애는 나 하나 도려내겠다고 편지는 당연히 고사하고 모든 자기 흔적에서 나를 없앴다. 그 애와 자주 만나던 동네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해가 바뀌고 나중에 건너 들었더니 그 동네는 원래 그 애가 살던 동네가 아니었고, 내 지역에서 그나마 제일 가까운 게 그 동네라 그곳에서 산다고 둘러댔더랜다. 도로 앗아가진 다정은 이렇게나 잔인하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편지봉투에 적혀 있던 주소에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스물한 살 이전까지 내 생일이 오는 걸 그렇게까지 좋아하고 기대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봄은 매번 나에게 유독 혹독한 계절이었는데, 내 생일은 봄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생일을 온전히 즐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애가 있었을 때는 미미하게 잘 웃었다. 서툴게 접힌 선물 포장지의 모서리를 매만지면, 그 애의 둥글고 저의 없는 웃음을 유형의 무언가로 만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 인사를 다시 할 수 있다면,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한 글자씩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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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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