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업실의 의미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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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앨리스 먼로의 <작업실>로,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 수록된 단편 소설이다.
앨리스 먼로는 캐나다 출신의 여성 작가로, 캐나다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의 글을 <작업실>로 처음 접하였다. <작업실>은 자신의 작업실을 구하기 위한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이기에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 이 책을 가져오게 되었다.
1. 여성, 아내, 엄마 그리고 작가
중심인물은 눈치를 줄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없다. 중심인물은 여성이며 아내이자 엄마임과 동시에 글을 쓴다는 말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 작가이다. 본인의 공간이 없어 작업실을 찾고자 함을 결정했을 때 남편에게 그 사실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눈치를 본다.
이 소설은 여성 인물을 내세우지만 소설이 진행될 때마다 어떠한 선택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대부분 남성 인물들이다. 남편이 작업실 여부에 대해 승낙을 내려야만 작업실을 가질 수 있었고 맬리의 신경을 건드리는 걸 피해야만 맬리를 상대할 수 있었다.
중심인물은 이러한 모든 결정을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심인물이 내린 결정은 작업실의 위치를 고른 것과 맬리와 관련된 기억을 지워 없앨 때까지 작업실을 구하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2. 맬리
맬리는 중심인물의 공간에 유일하게 발을 들이는 인물이다. 그는 배려 받으려 하지만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처음 맬리와 상대했을 때 중심인물은 맬리를 통해 ‘승리감’을 느낀다. 본인이 맬리 위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승리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맬리는 중심인물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휘두르지 않지만 친절과 동정으로 가장해 작업실의 문을 두드린다. 화분, 차를 우리는 주전자. 팔각 휴지통, 거품고무 방석은 맬리가 폭력을 휘두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를 빌미로 맬리는 작업실을 드나들고 중심인물의 공간을 훼손하기에 이른다.
맬리가 중심인물에게 얻고자 했던 것은 작업실이나 원고가 아닌 ‘승리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중심인물을 통해 겪었을 ‘패배감’을 지우고 배려를 가장한 괴롭힘으로 본인이 중심인물보다 더 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중심인물을 괴롭혀 얻은 ‘승리감’을 얻지만 동시에 본인의 잘못 또한 깨닫는다. 하지만 맬리는 중심인물이 작업실을 나설 때까지 사과하지 않는다. 중심인물보다 본인이 위라는 전제와 결국 얻어낸 ‘승리감’ 때문이다. 중심인물이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맬리의 행동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잊는 것뿐이다.
3. 작업실
작업실은 중심인물의 공간이다. 집과 다르다. 원하는 시간에 들어가 이용하고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작업실인 셈이다. 중심인물의 집에 남는 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중심인물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여자는 곧 집이다. 떼려야 뗄 수 없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남자는 ‘집’을 일터로 생각할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다. 남자가 집에서 하는 행동은 하나의 일이 될 수 있지만 여자가 집에서 하는 행동은 ‘자연의 섭리’이자 아주 당연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이 소설 내에서 ‘집’이라는 공간이 여자와 남자의 대비를 극대화시켜주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하는 공간에서 가장 극대화되는 대비가 일어난다는 게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남자가 하는 행동에는 제약이 없지만 여자가 하는 행동에는 제약이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제약을 가장 당연시 여기는 이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 구성원이다. 중심인물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바꾸지 못한다는 게 소설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듯 싶어 기억에 남았다.
4. 일상
소설은 어떤 가정에서나 일어날 법한 보편적인 일상을 보여준다. 중심인물은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작가이지만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남편과 다르게 본인 직업의 일이 후순위로 밀려난다. 하지만 이걸 자각하는 사람은 집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중심인물만 느낀다.
가장 작지만 사소한 권리조차 중심인물은 행사할 수 없다.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 있는 권리는 중심인물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인물은 작업실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조차 얼마 안 가 떠나버린다.
소설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40대 여성의 욕망과 그녀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더욱더 인상 깊었던 소설이었다.
[김예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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