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해방자들'이 전하는 사랑과 치유의 힘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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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인생이 거대한 힘에 휩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려고 해도 결국 그 힘에 의해 방향이 정해지는 무력감. 이 거대한 힘이 반드시 세상의 단위일 필요는 없다. 하나의 나라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소설 [해방자들]은 이러한 무력함을 고스란히 전하는 작품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힘이 개인에게 남기는 상처, 그리고 그 상처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잠식해 나가는지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국가적 트라우마는 이 소설에서 중심 테마로 다뤄지는데, 역사 속 사건들이 인물들의 삶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들이 어떻게 그들의 존재를 무너뜨리는지를 작가는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인물들이 겪는 상처의 근원이 모두 '국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군부 독재로 인한 요한의 죽음, 로버트의 어머니 고일을 무너뜨린 일본의 식민 통치와 제주 4.3 사건, 그리고 한국 전쟁이 로버트의 신념에 남긴 깊은 상처들. 헨리에게는 서울 올림픽의 기억이, 후란에게는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이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세월호 뉴스를 보며 아무도 왜 구조하지 않는지 묻는 어린 하루. 이렇게 우리나라의 사건들은 인물들의 삶에 상처를 남기고, 그들은 서로 경계하며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데, 마치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이 사람들을 나누고 서로를 외부인으로 만들듯 말이다.
이러한 상처와 갈등의 묘사는 단순한 역사적 비극을 넘어, 국가라는 거대 조직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침투할 수 있는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책을 읽으며 우리 삶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무력감을 주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하고 투쟁해도, 역사와 국가의 큰 흐름 속에서는 미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때론 슬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해방자들]은 그 무력감 속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인물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상처받고, 서로를 경계하더라도 결국 사랑과 이해는 그들을 다시 하나로 만들어준다. 후란과 인숙이 세대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다가 결국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장면, 성호와 인숙이 후란의 죽음으로 인해 화해하는 장면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헨리와 제니가 신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음식을 나누며 소통하는 모습처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그로 인해 형성된 갈등은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때때로 국가나 사회적 사건들로 인해 나 자신을 잃거나 상처받곤 한다. 하지만 [해방자들]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결국 '사랑'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사랑만이 그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를 다시 하나로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아무리 커다란 역사적 비극이나 사회적 힘이 우리를 덮쳐도,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우리를 치유하는 것은 서로를 향한 사랑과 연대이다. [해방자들]은 그 점을 아름답게 보여주며,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함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주는 소설이다.
[오지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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