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방법 - 큐레이터 송한나의 그림 사는 이야기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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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미술관 가기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작품을 유심히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정보를 제공받지 않고 온전히 작품만 관찰했을 때와 작가의 해석을 접하고 작품을 접할 때 다가오는 느낌은 다르다. 관람객은 우선 시각을 통해 그림을 접한다. 처음으로 다가오는 그림에 대한 분위기는 관람객에게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을지, 아니면 다른 장소로 이동할지를 결정한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디테일이다. 그림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얼핏 본 순간에 놓쳤던 깨알 같은 디테일을 본다. 물감의 질감이나 재료의 사용, 혹은 작가가 숨겨놓았을 단서 같은 것을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감상의 마지막 단계에 작가가 떠올랐다. 작품을 두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무언가를 행하는 작가. 작가의 앞에 위치했을 그 미완의 작품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작가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작가의 해석은 작품의 관람에 필요하지만, 때에 따라서 관람객의 몰입을 도울 수도, 방해할 수도 있다. 작가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된 작품은 작가의 세계를 반영한다. 그 세계로 다가가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작가의 해석을 접하는 것이다. 잘 다려놓은 셔츠처럼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문장은 깔끔하게 정돈된 채 읽어줄 관람객을 기다린다. 더불어 작가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 매체는 작품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작가의 목소리에서부터 비롯된 음의 높낮이와 악센트는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글로써 표현되기 어려웠던 포인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작가의 해석이 원치 않는 포획 틀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작가가 정해놓은 해석에 갇히고 나면 그 의도밖에 보이지 않게 되고, 작품으로부터 떠오를 수 있는 생각이 제한된다. 그렇기에 나는 작가의 해석을 가장 나중에 본다. 그러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을뿐더러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여 다시 작품을 접하기에도 용이하다.
「그림 사는 이야기」는 큐레이터 송한나가 작품과 만나고 작가와 이야기하며 예술이 삶에 스며드는 과정을 담았다. 작가와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 속 작품이 와닿는 순간을 기억하고 떠올린다. 송한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작품에 관련된 경험을 떠올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기대한다고 전한다.
미술이 어렵게만 느껴지고 특정 집단을 위주로 전개되는 것 같다면 이 책을 바탕으로 한 발짝 다가서는 것을 권하고 싶다. 지나치게 평범했던 작가가 어떻게 작품을 설계하고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지부터, 그림을 소장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는 팁까지.
나는 이 책에 표기된 많은 작품 중, 내 삶을 되돌아보게 했던 몇 점의 그림을 소개하고자 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시간 중에서 어느 한 장면을 반추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다.
비플: 5000일의 기록
비플의 〈5,000일의 기록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는 2007년 5월부터 2021년까지 매일 한 점의 작품을 그려 완성한 디지털 아트이다. 한 해 동안 매일 그림을 그려온 작가 ‘톰 주드’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이 작품은 이후 세계 미술 시장에서 주목을 받으며 NFT마켓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비플은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어떤 변수에도 제한받지 않고, 묵묵하게 그림을 그려나간다. 주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낸 작품들은 유머스럽고 독특하게 표현된다. 정치적인 풍자가 깃들은 그의 작품은 도널드 트럼프와 같이 당시 미국의 시대 상황을 묘사하는 유명 인물을 그려내기도 한다. 14년의 모든 작업을 합친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는 한화 약 851억 원에 낙찰되며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비플의 작품 〈5,000일의 기록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에서 나에게 와닿은 것은 꾸준하게 작품을 작업해 온 그의 끈기이다. 매일 어떤 것을 꾸준하게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는 말은 나에게 불변의 진리처럼 자리 잡아 왔다. 습관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66일이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들어왔으면서도, 신년을 맞이해 들여온 새 다이어리는 작심삼일로 끝나기도 했다. 매일 같은 행동을 변수 없이 진행하는 것이 어렵기만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최근에 자리 잡은 습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크로키를 그리는 것이다. 예전부터 마음속으로 그림 실력을 키우려는 다짐을 해왔지만, 매번 실천으로 옮기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쳤다. 그러나 풍선처럼 부풀어버린 겁을 먹은 마음에 자그만 구멍을 내보자. 하루에 5분만 투자해 뭐라도 완성해 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된 크로키가 이제 석 달을 넘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매일 그림을 그리며 90점의 크로키를 완성했다.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있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매끄러운 상승 곡선은 아니더라도 삐뚤빼뚤한 나만의 그래프를 그려 가보자.
이완: 고유의 시간
이완의 〈고유시〉는 2017년에 개최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된 이완은 글로벌 미술 시장에 벽면을 가득 채운 668개의 시계로 화답했다. 나타내는 시간이 전부 다른 시계들은 모두 고유의 이름을 가진다.
〈고유시〉는 전 세계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삶을 구성하는 데 소모되는 비용과 의견을 묻는 설문에서 비롯됐다. 이 데이터는 해당 국가의 GDP와 함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기반을 둔 공식에 대입되어 24시간을 살아가는 개인의 속도 값을 도출해 냈다. 각자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계들은 한 인간의 삶이 되어 전 세계인에게 시간의 본질을 되묻는다.
최근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일주일이 눈 깜빡할 새에 지나기도 하고,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는지 까먹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대학교 고학년과 취준생이라는 규격에 나를 맞추다 보니 사회가 정한 기준에 따라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느껴진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타인의 규정대로 내 시간이 휘둘리다 보면 중심을 잃기 쉽다. 눈앞의 것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최종적인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그럴 때면 나는 대체로 글을 썼다. 머릿속을 지배하던 형체 없는 생각에서 벗어나 글자의 자국을 남기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었고, 금세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곤 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본인이 체감하는 삶의 속도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상대적인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 함수는 나의 과거와 현재에만 의존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나’라는 사실 한가지 뿐이다. 모두의 시계가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심지어 내 주변과 너무 많이 차이가 나더라도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개인이다.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며 내 삶을 들여다보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이 목표하는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조유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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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구운양파아몬드
- 2024.07.22 22:5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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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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