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8일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아트페스티벌 숲>을 즐겼다. 수림문화재단 설립 15주년과 설립자인 동교 김희수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상과 예술을 잇는다는 슬로건 아래 개최된 공연과 전시, 각종 워크숍이 어우러진 예술 축제였다.
아카이브 수림: 작은 빛으로
<아트페스티벌 숲>에는 두 개의 전시가 진행되었다. ‘아카이브 수림: 작은 빛으로’와 ‘작은 빛’ 전시였다. 먼저 내가 둘러본 건 ‘아카이브 수림: 작은 빛으로’였다. 수림문화재단을 설립한 김희수 선생의 생애를 톺아볼 수 있는 전시였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태어나 2012년 향년 88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치열하게 경험하고 공부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를 보다가 벽면에 새겨진 김희수 선생이 직접 하신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태양과 같은 찬란한 빛은 아니더라도 호롱불 같은 작은 빛으로 사회의 어두운 한구석을 밝히는 사람이 되자”
“세계는 넓고 크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동시에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자. 함께 좋은 꿈을 꾸자.”
재단의 설립자인 동교 김희수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느껴지는 말이었다. 작은 빛의 힘을 믿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배우는 사람. 말이 내뿜는 선한 기운을 머금고 본격적으로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작은 빛
다른 공간에서 펼쳐진 전시 ‘작은 빛’은 조형물, 그림, 낭독 공연, 영상 등이 모두 어우러진 전시였다. ‘작은 빛’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전시장의 은은한 조명이 마음에 들었다.
여러 작품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낭독 공연과 현우민의 영상이었다. 낭독자 뒤로 글자가 나오는 모니터가 있었는데, 낭독되는 말과 모니터에 나타나는 글이 달라 처음엔 ‘잘못 나온 게 아닐까’ 싶어 혼란스러웠다. 점차 그 불일치에 적응된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보는’ 언어에만 익숙한 상태였나 생각했다. 타인의 말을 열심히 집중해서 들은 게 언제였던가. 낭독자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공간 전체가 따뜻해진 느낌이었다.
낭독 공연 바로 옆에는 영상을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고 낯선 땅에서 삶을 가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였다. 일본에서 태어났다가 한국으로 이주하고, 다시 일본에서 사는 현우민이 그의 부모를 비롯해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였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영상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낭독 공연이 이뤄지는 공간 바로 옆에 있어서 낭독 소리에 묻혀 영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어 자막에 의지해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이 점이 ‘디아스포라’라는 영상의 테마와 잘 맞아서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드로잉 워크숍
‘작은 빛’ 전시를 보다가 사전 신청했던 드로잉 워크숍 시간이 되어 서둘러 워크숍 장소로 향했다. 워크숍을 마치고 다시 꼼꼼히 전시를 봤을 때 지희킴 작가의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2007년부터 작가 생활을 이어온 지희킴 작가는 자신의 그림 다섯 점을 먼저 보여주었다. 그중 한 점을 골라 그림에서 연상되는 자신의 기억을 표현하는 게 워크숍의 핵심 활동이었다.
여러 인상적인 그림 중 내가 고른 것은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보고 한순간 중학생 시절 스스로 집에서 머리를 자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용실 갈 돈이 없어 긴 머리를 참다 못해 호기롭게 스스로 자른 것이다. (패기는 좋았지만 결과물은 처참해서 그 뒤론 무조건 미용실을 가게 되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사춘기를 보낸 지난날의 내가 애잔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막상 그리고 나니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른 어린 나의 씩씩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래서 오랫동안 그림을 멀리했구나….’라고 생각할 만큼 참담한 그림 실력이 부끄러웠지만 용기 내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상황을 설명했다. 마냥 어둡게만 여겨졌던 10대 시절이 밝은 기운으로 덮인 느낌이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대부분 어린이였다. 동심이 묻어나는 기억에 흐뭇한 웃음이 나오는 한편 수준급의 그림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미술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시간이었다.
먹거리 부스
남은 시간은 먹거리 부스에서 스테이크 덮밥과 닭강정, 에이드까지 알차게 즐기며 1층 야외 옥상에서 진행된 공연을 구경했다. 연희집단 The 광대의 ‘당골포차’와 크로키키 브라더스의 ‘드로잉 서커스’ 공연이었다. 재미있는 입담으로 진행되는 상황극과 현장에서 바로바로 그리는 그림에 모두가 열렬하게 반응했다.
화창한 날씨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니 최근에 다녀온 강릉단오제가 떠올랐다. 지역 축제를 처음 가는 나로서는 힙함을 내세우는 서울의 페스티벌과는 다른 분위기의 전통 축제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강원도에 사는 친구에게 서울은 2030만을 위한 도시 같다는 말을 했었다. 모든 문화예술 인프라가 젊은 사람을 위해 있고, 노인과 아이가 배제된 도시 같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아트페스티벌 숲’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보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훨씬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곳곳에 아이들의 웃음이 가득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자’, ‘함께 좋은 꿈을 꾸자’라던 앞서 본 김희수 선생의 말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본인의 이름을 딴 아트센터에서 이렇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김희수 선생 본인도 흡족해할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가장 큰 순기능은 타자를 궁금해하고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혐오와 배제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그날의 풍경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예술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사회의 어두운 한구석을 밝히는 예술이 내뿜는 작은 빛을 느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