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도, 밤이되고 말았습니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6.1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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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글을 써왔다고 자부하는데, 인생의 각 시기마다 글들의 본새는 다양했다.

 

그 중 고등학교 시절 내가 글을 썼던 창구는 바로 라디오 사연이었다. (주파수를 맞춰 듣는 라디오는 아니었고 요즘말로 '오디오쇼'라고 하는 것이었다.)

 

우물정자로 시작하는 번호는 일기쓸 시간도 아깝던 수험생활 중 유료일기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눈을 감아도 그치지 않는 생각에 잠들지 못할걸 알기에, 괜히 갖은 상념을 호스트에게 읽힐 만한 '사연'으로 다듬고 청취자들의 반응 이모저모까지 상상하다가 시끄러운 기상송으로 아침을 맞은게 한 두번이 아니다.

 

정말 괜찮게 썼다고 생각해서 두어번을 같은 걸 보내도 읽히지 않기도 했고, 비관을 담아보낸 사연이 작가님에 의해 희망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쪼록 그 당시의 사연들을 보면 그 때의 '나'를 타자화 하면서 자못 연민과 애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대게가 치명적인 감성에 젖어있어 낯뜨겁긴 하지만, 지금 봐도 틀린말은 아닌 것 같은 사연 하나를 가지고 왔다. 유치한 소재들을 지금의 시공간적 배경에 맞게 각색할 수도 있겠으나, 나름의 재미로 보존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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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살기가 벅찰 때면 나를 둘러싼 모든것에 울컥, 짜증이 솟는다.

 

떨어뜨린 연필 한자루 주워주는 친구가 가식을 떠는것마냥 보이고, 뚜렷한 용건없는 연락은 세상에서 제일 귀찮다.

 

마스크 속에 찡그린 표정은 잘 가려졌는데, 내 마음은 잘 가리지 못해 그들에게 건성으로 대꾸를 하고 나면 물 밀듯이 죄책감이 밀려온다.

 

'나는 세상을 삐뚤게만 바라보도록 태어난건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과 배려가 얼마나 행복한지 잘 아는 사람이었는데.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먼저 안부도 물을 줄 알고, 고마움에 대한 표현도 센스있게 건넬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지금 내가 이토록 마음이 불편한건 타인에 대한 염려는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나 하나 돌볼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서일 뿐이다. 이유없는 짜증은 꼭 '난 연료를 모두 소진하고 남은 찌꺼기로 간신히 달리고 있어요' 하는 신호일지 모른다.

 

타고 남은 찌꺼기로 달리고 있으니 온통 매캐하고 뿌옇게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우리가 서로에게 무감각해지고 있다는건, 자기자신을 채워줄 에너지가 모두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가진게 없는 상태에서 내가 나눌 수 있는건 공허, 그것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나 아닌 우리가 할 이런저런 고민으로 오늘도 밤을 맞이한다.

 

 

[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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