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잖아 해 뜨기 전 칠흑 같은 어둠 [공연]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관극 후기
글 입력 2024.05.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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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작품 줄거리와 관련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빈틈을 감추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타인이 나의 빈틈을 알아차리고 이를 감싸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감정이 요구될까.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한 가족이 서로에게 닿기 전 마주하는 수많은 빈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극중 오래전 아들 게이브를 잃은 엄마 다이애나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나탈리는 그런 가정과 학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끝내 예일대를 조기 입학하여 집을 떠나겠다고 다짐한다. 아빠 댄은 자신의 가족과 다이애나를 누구보다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세상이 정한 평범한 가족의 규격’에 맞추려고 애쓴다. 하지만 (사회에서 정한) 평범한 가족에 속하는 과정에는 생각보다 많은 변수가 놓여있다. 굿맨 패밀리는 각자 자신만의 자리에서 빈틈없이 불안하고 흔들린다.


"딱 맞는 짝

모서린 깎아내며 맞추면 돼

이 세상 다 먼지가 된다 해도

절대 우린 아프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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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맞지 않을 경우 모서리를 깎으면 된다고, 완벽하지 않고 불안정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존재가 바로 헨리다. 나탈리에게 있어 헨리는 새롭게 다가온 불완전함이다. 늘상 겉으로만 보이는 완벽만을 추구하던 댄과 자꾸 현실에서 벗어나려고만 하는 다이애나 곁에서 나탈리는 쉴 새 없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런 상황 속 나탈리는 자신처럼 흔들리는 헨리에게서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마치 거울은 보는 것처럼 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이가 나탈리에게는 필요했을 것이다.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 그 자체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이를 나탈리는 무의식중에 바라왔다.


게이브는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났으나 여전히 가족들의 머릿속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굿맨 패밀리의 꿈이자 두려움, 가장 끔찍한 악몽 등으로 소개한다. 게이브는 그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다 되어줄 수 있으며, 기억 그 이상의 존재나 다름없다. 이 장면에서 게이브 역의 배우가 무대 전체, 특히 가장 높은 3층 위 공간을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정신을 혼미하게끔 만든다. 무대 구조물은 다이애나의 머릿속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에 해당 장면은 게이브가 다이애나의 머릿속에서만큼은 분명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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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는 댄의 권유로 전기치료를 받게 된다. 기억 중 일부가 사라진다는 부작용이 있으나 이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은 매우 적기 때문에 그대로 수술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것은 뒤에 올 커다란 재앙의 시작이었다.

 

다이애나는 게이브와 관련된 기억뿐만 아니라 이전에 가족들과 나누었던 소중한 추억들마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외부로부터 잊어야 한다고 강요받은 기억과 잊지 말아야 할 기억까지 전부 잃어버린 다이애나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하다. 잊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상실한 다이애나와 반대로 댄과 나탈리는 깊은 곳에 애써 감춰두었던 기억까지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질수록 게이브는 다시 한번 더 그 가족들의 삶에 침투하기 위해 준비한다. 게이브는 가족들이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이 자신만을 잊은 채 다른 행복의 기억을 찾아가는 걸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게이브는 가족들이 자신을 ‘처분’했다고 표현하며, 자신은 머릿속에서 억지로 지운다고 하여 완전히 사라지는 존재가 아님을 명시한다.


다이애나가 게이브를 잊기 위해 전기 치료를 하고 다시 가족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녀는 딸인 나탈리와 마주하게 된다. 나는 두 사람이 만난 곳은 무의식 공간의 경계라고 볼 수 있다. 게이브만이 닿을 수 있는 공간인 3층은 완전한 무의식, 굿맨 패밀리의 집이자 이성적인 세계가 가장 자주 드러나는 1층이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이 장면에서 나탈리는 마약을 한 상태이고, 다이애나는 전기 치료를 받는 도중이었다. 두 사람은 현실 세계에서 진실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상태였기에 무의식의 경계인 공간에서나마 만나 진심을 털어놓게 되었고, 이 장면은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겪은 각자의 슬픔이 하나로 포개어진다.

 

나탈리는 자연스레 지금의 굿맨 패밀리를 빗대어 헨리와의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처음에는 완벽한 것처럼 보이나 결국에는 우리 앞에 비극이 닥칠 거라며 또다시 무너진다. 그때 헨리는 나탈리의 눈을 바라보며 네가 미치면 나도 같이 미칠 거라고 말을 해준다. 두 사람의 첫 만남처럼 어딘가 이상한 고백이지만, 서로의 진심만은 통했던 나탈리와 헨리는 그렇게 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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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불이 켜진 건 그곳에 사람이 사는 증거“

 

처음에는 층의 높이와 인물의 불안 정도가 비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말부, 댄과 게이브 단둘이 마주하는 장면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꼭대기에서 자신은 살아있다며 끊임없이 외쳐대던 게이브, 굿맨 가족의 불완전함으로 인한 절망은 작품 결말부에 이르렀을 때 가장 낮은 층에서 다시금 불쑥 나타난다. 모름지기 무거운 것은 높은 곳에서부터 가장 낮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극중 내내 게이브의 존재를 외면해 오던 댄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게이브와 마주하게 된다. 자신을 잊지 말라며 홀로 남은 아버지 댄을 끌어안고 있는 게이브의 모습은 너무나도 처절했다. 마치 심해 밑바닥에서 숨을 쉬기 위해 올라가려는 댄을 게이브가 끌어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의 죄책감이 잔뜩 뒤엉킨 그것은 오래도록 잔류하며 댄을 괴롭히지만, 그 고통의 시간은 나탈리가 무대 위에 등장하면서 마침내 사라진다. 집에 불이 켜져 있다는 건 그곳에 사람이 사는 증거이다. 그때 만약 집에 돌아온 나탈리가 불을 켜지 않았더라면, 가족들 중 한 명이 댄의 어둠을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피날레에서 굿맨 패밀리는 ’한 줄기의 빛‘을 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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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브를 밀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그는 더 선명해진다. 결국 굿맨 패밀리가 게이브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다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초반부에 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현재 상태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못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가 타인에게 큰 상처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끝내 그들은 가족을 이해한다.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굿맨 패밀리는 지금껏 거쳐왔던 모든 감정,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까지도 모조리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그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간다. 굿맨 패밀리에게 중요한 것은 더이상 ‘평범한, 절대 흔들리지 않는’ 가족이 아니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가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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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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