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카우보이의 세계로 [패션]

글 입력 2024.05.1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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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영화 속 주인공의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영웅본색의 주윤발처럼 검은색 트렌치코트에 성냥개비. 중경삼림의 임청하처럼 노란색 트렌치코트에 선글라스. 무간도의 양조위처럼 검정색 가죽 자켓을 포함한 올 블랙 스타일. 거기에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영화 OST와 함께라면, 낭만이 그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낭만은 원래 유치한 법이니까.


올해는 웨스턴 무드 스타일의 옷이 유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행이라면서 길거리에 웨스턴 웨어를 입은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오로지 나 혼자일 뿐이었다. 작년 겨울에는 웨스턴 스타일 특유의 곡선 모양의 절단선 ‘요크’가 들어간 베이지 색 바지와 아이보리 색 셔츠, 그리고 청자켓을 입고 나갔던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갑자기 카우보이 행색으로 나온 것을 보고 당황한 내 친구는 ‘모르는 척해도 돼?’ 라고 묻던 나름 웃긴 에피소드까지 있다. 아마 이런 스타일의 옷이 낯설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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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더스트, 2016)

 

 

그럴 만하다. 하지만 내가 카우보이의 옷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서부영화였다. 서부극 매니아는 많지 않다. 아마 황량한 허허벌판의 땅에서 말을 타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투박한 카우보이들을 보고 있자니 하품이 나올 것이다.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과 높은 빌딩들로 가득 찬 이 도시에서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 황무지와 말이라니. 말이 되나!


서부 개척 시대에 보물을 찾는 무법자, 현상금이 걸린 무법자를 쫓는 현상금 사냥꾼, 그리고 총싸움이 난무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정의가 결국 승리하는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다. 광활한 대지 위 말을 타고 있는 인간에게선 고독함이 느껴진다. 폭탄과 총을 수시로 꺼내며 잔인함을 보여주지만서도 옛날이야기 같아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무법자가 넘치는 세상 속 그들은 자유롭고, 노래하고, 제멋대로다.

 

 

카우보이의노래.jpg

(카우보이의 노래, 2018)

 

 

이 매력적인 이야기에 끼고 싶지만 나에게는 총도 없고 말도 없다. 대신에 웨스턴 웨어는 있다. 매력적인 서부 영화 주인공들과 함께 웨스턴 무드의 특징이 두드러진 몇 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옷의 재질은 다양하다. 데님, 스웨이드, 펠트, 가죽. 색은 주로 베이지, 청, 카키. 재질도 색도 중요하지만 옷에 있는 디테일이 웨스턴 무드의 핵심이다. 소매와 부츠에 달린 긴 술인 프린지는 원주민들의 전통 의상에서 유래했다. 말이 움직일 때마다 카우보이가 입은 프린지도 함께 흔들리며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준다.


그들은 말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실용적인 내구성 있는 옷을 입는다. 앞서 설명했던 요크는 특유의 V자 모양 박음질이 특징이다. 이 박음질은 어깨에 패치워크를 덧붙여 옷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데 사용된다. 서부 개척 시대에는 기차에 화물을 운송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어깨와 팔 부분을 강화해 활동성을 높인 것이다. 또 셔츠와 자켓 중간에 조끼를 입은 것도 볼 수가 있는데 이 역시 팔 부분에 자유를 주고, 여러 겹의 옷들로 체온조절을 하기 위함이다.


기능성을 고려해 세심하게 디자인했기 때문에 화려해 보이는 것 같지만, 그 속에 특유의 투박함이 있다. 꾸민 것 같지만 꾸민 것 같지 않다. 이는 마치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요소들이 공존하는 서부 이야기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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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분노의 추적자, 2012)

 

 

옷도 재미있지만 디테일을 주는 액세서리에 주목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웨스턴 벨트는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액세서리다. 무거운 총기를 소지해야 하는 벨트는 크고 두껍게 만들어졌다. 실용성을 잡으면 심미성도 잡아야 하는 서부 법칙에 따라, 벨트 장식에는 화려한 패턴을 새길 수도 있다. 이를 툴링이라고 하는데 가방, 신발, 조끼 등 다양하게 쓰인다. 주로 꽃, 잎과 곡선이 섞여 있는 패턴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인 코디에 어딘가 아쉬움이 남으면 웨스턴 벨트로 포인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가장 좋아한다. 무난한 벨트들만 보다가 생김새가 다 다른 웨스턴 벨트를 보면 벨트를 모으는 재미도 알게 된다.


웨스턴 장식으로는 터키석이 많이 사용된다. 터키석은 서부 개척 시대에 광물에서 채굴했던 상징적인 보석이다. 터키석 특유의 투박함이 웨스턴 스타일에 거친 느낌을 더해준다.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여전히 다 부담이라면 터키석이 들어가 있는 단추나 목걸이, 팔찌로도 기분내기 충분하다.


이제 서부영화 속 의상의 디테일들을 다시 눈여겨 보게 될 것이다. 프린지, 패치워크, 요크, 웨스턴 벨트, 터키석이 들어간 아이템. 우리는 이중 마음에 드는 하나만 선택해도 된다. 이제는 내구성으로 옷을 구매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긴 하지만, 스타일리쉬한 카우보이 패션은 현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레 사람에게도 관심이 가는 것 같다. 하루에도 무심코 몇십 명, 몇백 명의 수많은 사람을 스쳐 보낼 수도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흥미롭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더라도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이기 때문이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은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힙합을 좋아하는지, 모던한 옷들을 좋아하는지 보인다. 어떤 사람을 적대시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인데, 개인의 취향을 인지한 순간 찌푸린 표정의 사람들로 빽빽한 지옥철에도 나와 같은 익숙한 사람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은 스타일을 알고, 입고 싶은 옷이라면 퍼스널 컬러, 체형, 남의 시선에 상관없이 마음껏 입었으면 좋겠다. 길에서 다양한 영화 속 주인공들을 만나고 싶으니까.

 

 

석양의무법자.PNG

(석양의 무법자, 1966)

 

 

낭만은 멀리 있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때론 느와르 주인공이, 때론 청춘영화 속 주인공이, 때론 서부영화 속 카우보이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기분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취향 가득 담긴 깔쌈한 패션 아이템과 어울리는 음악이 있다면 말이다. 그래, 낭만은 유치한 법이다.

 

 

[이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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