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래의 인력 - 청혼

글 입력 2024.05.1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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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원경에 비친 우주로 시선을 옮겼어. 함대 천문학자들 중에는 바로 그 망원경 때문에 궤도연합군에 입대한 사람도 수두룩하대. 인류가 만든 것 중 최고의 망원경이라나. 그게 왜 지구가 아니고 이런 데 와 있는 거냐고? 적을 탐지하기 위해서였어. 여기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어 있으니까. (S.87)

 


우주에서 태어나 중력에 묶여 사는 사람들의 삶은 잘 알지 못하는 ‘나’가 지구에 살고 있는 ‘너’에게 쓴 편지. 근데, SF라기 보다는 너무나도 절절한 사랑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헤아릴 수 없어서 감각하기조차 쉽지 않은 시공간의 벽을 사이에 둔 너와 나. 내가 ‘나’였다면 과연 ‘너’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현실적인 이유로 사랑을 포기하지는 않았을까.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첫 장을 펼쳤을 때 든 의구심은 하나였다. 이 페이지들을 전부 이런 식으로 채운다고? 화자가 서간문의 형태로 서사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읽기 시작한 지 몇 시간 채 지나지 않아 완독하고 말았다.

 

작가는 ‘너’에게 설명하는 투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까지도 너무나도 쉽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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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내’가 ‘너’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읽다 보면 미래의 사랑은 이런 식일까 상상하게 되기도 한다. 그 넓은 우주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은 결국 함선 내부밖에 없다니. 알 수 없는 자연에 대해 막연한 신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물론, 그 넓은 곳에서 서로 의지하지는 못할망정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해대는 인물들을 보면 인간에 대한 경멸감도 슬그머니 느껴진다. 어떻게 편지 한 통에 이런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어마어마한 시간으로 치환되는 공간의 크기는 ‘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만 와닿는다. 읽기 시작했을 땐 다소 제목과 동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 모든 문장이 청혼을 향해 달려가는 서사였음을 깨달은 순간 간절한 사랑 이야기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중력에 묶인 삶은 아니었지만, 결국엔 누군가의 주위를 맴도는 이야기. 모든 시간이 결국엔 누군가에 대한 생각으로 끝나는 모습들.

 

 

반드시 돌아올 거야. 이상하지? 나 같은 우주 태생이 어딘가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이제 나도 고향이 생겼어. 네가 있는 그곳에. 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S.154)

 

 

사랑한다는 고백에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즉각적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미래에는 행운일 수도 있겠다. 정말 먼 훗날에는 서로에게 닿기 위해 빛의 속도로 한참을 가야 할 지도 모르니까. 지금 당장만 해도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에게 닿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넘게 날아가야 하는 사람도 수두룩할 텐데, 한참이 흐른 뒤에는 얼마나 많을까. 아무리 간절한 사랑을 하고 있다 해도 닿을 수 없는 날이 태반일 수도 있다. 분명 있을 수밖에 없다.


평생을 돌아갈 곳 없이 떠돌며 사는 와중에 사랑하는 이조차 보지 못하는 삶. 잔인하게 느껴지면서도 우주라는 배경적 특성 때문인지 상상하기 썩 쉽지 않다. 나중엔 정말 이런 사랑이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중력은 없어도 인력 引力/人力은 똑같이 작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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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배경과 서사를 두고, 그 속에 절절한 사랑을 써낸다. 두 번째로 접한 배명훈의 소설이었는데, 매번 과학과 이론에 기반한 토대 위에 닿지 못할 두 사람을 올려놓아 읽는 이가 애타게 만든다.

 

시공간을 비틀어야만 만나고, 빛의 속도로 한참을 달려야 손을 잡을 수 있고. 100시간도 더 넘게 기다려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고 알지 못하는 건물에서 한참을 헤매야 마주칠 수 있다. 기술과 발전 속에서도 항상 피어나는 사랑이라니, 인간이 하는 일은 결국엔 사랑이라 말하는 듯하다.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사랑을 말할까, 궁금하다.

  

 

사실 완전한 원은 아니고 결국 타원으로밖에는 못 움직이겠지만, 지상에 매여 있지 않은 천상의 피조물은 그렇게 둥근 궤적을 그리고 있어야 하거든. 행성이든 별이든 혹은 신이든. 그 생각을 하니까 어딘지 모르게 숙연해지는 거 있지. 신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일이라니. (S.83)

 

모두가 그 함선 모형 때문에 시작된 생각이었지. 그 받침대가 암시하는 것처럼, 우주 공간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위와 아래를 쓸데없이 가정하고 접근했다가는 전술 차원에서든 전략 차원에서든 반드시 사각死角이 생기고 말거든. 빤히 보고도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구조적인 맹점이 생길 거라는 이야기야. (S.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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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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