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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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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3월이 되면,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면, 몸을 뒤척이게 된다. 새로운 무언가, 온 마음을 기울이고 시간을 쏟을 존재, 혹은 시간을 상상한다. 따뜻한 볕과 함께 찾아오는 계절들은 그렇게 나를 놀라게 한다.

 

추운 가을과 겨울을 지나 매번 찾아오면서도, 수없이 반복했음에도 그때마다 난생처음 느끼는 듯한 생경한 기분을 불러온다. 출발선에 서 신발 끈을 단단히 묶는 기분, 시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한다.

 

올해엔 봄이 불러온 그 알 수 없는 설렘을 한가득 느끼고 싶었다. 새롭게 자라나고, 피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 과정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몇 년 전 도전했던 텃밭을 다시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구청에서 모집하는 텃밭 공고를 놓치지 않기 위해 틈날 때마다 사이트를 들여다보았다. 겨울의 어느 날 기다리던 공고를 보고는 순서에 맞춰 신청을 하고, 나의 작은 텃밭이 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3년 전에도 텃밭이 있었지만 그건 나의 몫이 아니었다. 엄마가 신청했던 텃밭은 엄마와 이모들의 손으로 커갔다. 텃밭이 처음 운영되는 탓에 땅은 정비가 잘 되어있지 않았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으로 엄마를 따라나선 텃밭의 모습은 정말이지 강렬했다. 태풍이 쓸고 간 자리 잔뜩 뒤엉킨 깻잎들.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그 모습. 서로 엉키고 설킨 깻잎들과 사이사이 모습을 드러내는 처음 보는 벌레들. 그 이후 텃밭을 다신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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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해는 내가 먼저 텃밭을 다시 해보자고 조르게 되다니.

 

깻잎의 공포를 잊지 않은 엄마는 반대했지만, 이번엔 더 자주 가서 텃밭이 상하지 않게 돌봐주고 다른 작물들을 키워보자고 말했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평일에도 텃밭에 갈 수 있고, 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기에 그랬다.

 

텃밭이 문을 여는 날이 다가오니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첫날 버스를 타고 다다른 텃밭은 3년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깨끗하고 쾌적하게 정리되었고 어떤 작물을 어떻게 기르면 좋을지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자연을 이해하게 되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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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초보이기에 열심히 교육을 들었다. 봄에는 상추와 같은 쌈 채소를 기르고, 5월 어린이날 즈음이 되면 방울토마토 같은 열매가 나는 작물을 기르기 좋다고 했다. 어떻게 땅을 파고 구역을 나누고, 모종과 씨앗을 어느 정도 간격으로 심고, 물을 얼마나 주는지 열심히 강사님을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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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고개를 들었을 때 소담한 텃밭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작게 나뉜 구역들, 먼저 온 사람들은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가득 주고 있었다. 4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햇볕 아래, 도심 한가운데 낯선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기쁨이 피어났다. 우리도 우리의 자리를 찾고 구해온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작물을 처음 심은 후에는 자주 텃밭에 들려 물을 주는 게 좋다고 했다. 평일에 회사를 가기 전 들리기로 했지만, 갑작스레 바빠진 일에 텃밭을 찾지 못했다. 주말에 가서 물을 주었지만 일주일에 한번은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열심히 심어둔 상추가 상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지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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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걱정하는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이번 한번은 도와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원하게 비가 내렸다. 그렇구나,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면 이전엔 생각 없이 지나치던 비가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구나. 갑자기 내리는 비나 눈, 뜨거운 햇빛과 한가득 날리는 홀씨, 바람이 너무 큰 존재가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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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비 덕에 상추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이미 가득 자라 나를 반겼다. 처음 딴 상추는 생각만큼 부드럽지 않았다. 부들부들 연하기보다 자연을 그대로 머금었다는 듯 뻣뻣한 모습이었다. 이런 날씨에 이렇게 상추를 재배하면 이런 모습과 맛을 갖게 되는구나, 세상을 새롭게 배우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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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쉬는 날 아침이면 산책이라기엔 좀 멀리, 텃밭을 향한다.

 

기특하게 잘 자라는 작물들을 바라보고, 물을 가득 주고, 다른 사람들의 텃밭에 저마다 힘차게 자라는 모습을 구경한다. 이번에 새로 심은 방울토마토는 또 어떤 모양으로 자라날까? 얼마나 붉게 물들고, 얼마나 단맛을 띄게 될까?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텃밭 가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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