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오늘은 잘 모르겠어>, <눈앞에 없는 사람> 등으로 오랜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시인이자 사회학자, 심보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노벨문학상 수상 시인)라는 폴란드 고모님을 두었다고 농담 삼아 말하는 그는 그의 첫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속에 담긴 수많은 독백과 사유의 뜨거움을 농담처럼 독자들에게 건넨다. 그러나 글을 읽어나갈수록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점차 뿌리를 알 수 없는 힘이 더해져 아주 무거운 농담으로 변한다. 그가 치열하게, 고독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빚어낸 어느 한 풍경을 조금 들여다보기로 한다.
어떤 곳의 어떤 대화들
"그러나 집이 있다고 늘 대화가 가능한 건 아니다. (...) 대화 상대 또한 적어도 당신만큼의 대화적 자원과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집이라는 장소뿐만 아니라 그 장소에 담는 대화적 자원과 그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대화적 능력이다."
대화적 자원과 대화적 능력이라. 우리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타인과 대화할 때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이루어지는 모든 대화들에 특정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하는 것은 어색하게만 들린다. 아마도 면접, 상담, 상견례, 발표 등의 비일상적인 순간들을 떠올리고 나서야 어떤 대화들은 노력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비일상적인 순간들은 하나같이 집 밖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집안에서 나누는 대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족과 나누는 대화, 집에 초대한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반려동물과 몸짓으로 나누는 대화. 그 외에도 여러 예시가 있을 수 있지만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대화'의 외연이 어느 순간 더는 확장하지 않는다는 것.
친구 혹은 연인, 하물며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대화 도중에 신경이 쓰이는 지점들이 있다.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이 말을 꺼내면 좋을까', '이렇게 얘기했을 때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와 같은 생각.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치고 입 밖으로 발화되는 모든 의문과 걱정. 하지만 내가 최근 부모님과 대화할 때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던가?
아침에 눈을 뜨고 처음 대화를 나누는 사람. 밤이 되어 잠에 들기 전 하루의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사람. 편안함과 익숙함 속에서 너무도 당연해진 대화들. 그 시작과 끝. 어느 순간에 반드시 요구될 것이 분명한 대화적 자원이 고갈된 채 방치되고, 대화적 능력을 상실한 사람의 입모양은 공허하다.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의 부제는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늘어나는 보폭 때문에 너무 먼 시간을 건너뛰어 온 나의 옆에, 그날, 나와 함께 있어줄 부모님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앞으로도 많아질 것이다. 그 말들을 가능한 한 전부 전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를 대하는 마땅한 대화적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상상하는 대화의 능력이 어느 날엔가 우리가 함께 응망할 풍경을 더욱 환하게 만들 것임을 알기에.
우정과 애정의 독서
"나의 시선이 그 책에 나보다 먼저 도달해 있는 누군가의 투명한 시선과 마주했기 때문이며, 행간에 이미 은밀하게 배어 있는 누군가의 깊은 목소리와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내가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에서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 작성한 글을 읽을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꺼내든 어떤 책의 접혀진 귀퉁이를 봤을 때, 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책의 저자가 담아낸 의중 너머를 보게 될 때 나는 위의 문장을 떠올리고 공감한다.
분명 나와 같은 영화를 봤고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전혀 다른 시야를 통해 그 작품의 바탕으로부터 새로운 사유와 상상을 연역하는 타인들을 익명으로 만나는 일은 매번 즐겁고 야릇하다.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시선을 맞추며 같은 책을 읽어나간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대화가 된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것도, 글을 읽는 것도 대화가 된다. 글을 쓸 때마다 조금은 더 섬세한 대화적 능력이 필요하고 글을 읽을 때마다 조금은 더 풍부한 대화적 자원이 요구된다. 아는 만큼 이해하고, 아는 만큼 대화가 가능하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속에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나는 오늘도 또 다른 누군가와의 대화를 꿈꾸고 시도한다. 글이라는 저마다의 세계 속에서 어느 낯선 이가 내게 걸어오는 대화는 여전히 반갑다. 당신과의 대화 덕분에 오늘도 당신의 하루는 환하다.